회사 근처에 폴 바셋이라는 커피숍이 있는데, 사람들이 무척 좋아한다. 커피를 안 좋아하는 나는 폴 바셋의 라테는 특별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엔 공감할 수 없지만 이곳의 밀크쉐이크는 매우 맛있다. 폴 바셋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1. ‘세계 최고의 커피를 먹는다’는 착각
여기 커피를 먹다보면 문득 ‘이곳 가게 이름이 왜 폴 바셋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뭐 대단하기에 자기 이름을 걸고 커피숍까지 내지?’ 그래서 검색해보면 Paul Bassett은 호주 출신의 2003년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이다.
그래 너가 최고의 바리스타였구나. 그럼 2004년 우승자는? 2010년 우승자는? 얘네들은 뭐하고 너만 머나먼 한국땅에 와서 커피장사를 하고 있니? 하는 의문이 들었다.
폴 바셋은 하나의 조건이 더 붙는다. ‘최연소 우승자’라는… 근데 그게 특별한가? 최연소 소믈리에가 골라주는 와인보다 나이 지긋한 사람이 골라주는게 더 신뢰가 가고 머리 하얀 할아버지가 주인인 와인밭이 생산지인 와인이 더 끌린다. 커피는 젊은 사람이 만드는게 더 좋나? 젊고 잘생기면 물론 더 좋긴 하겠다. 근데 폴 형은 어디에 있나? 퇴근했나?
폴 바셋은 2003년 우승 뒤 일본 사람과 손잡고 도쿄에 카페를 2006년 열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엔 2009년에 열었고, 전 세계적으로 한국과 일본 두 나라에만 런칭했다. 스타벅스 같은 글로벌 커피 체인은 아니란 뜻이다.
더 놀라운 사실이 있는데 ‘사람’ 폴 바셋은 ‘커피숍’ 폴 바셋 운영에 관여하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매장 운영과 바리스타 교육 커피 원료 공급까지 책임지지만 한국의 폴 바셋을 운영하는 것은 매일유업이다. 폴 바셋은 이름만 빌려주고 로열티를 받는다.
그는 2009년 폴 바셋을 런칭하고 2014년까지 다섯번 한국에 왔는데, 이런 그가 과연 매장의 바리스타를 지속적으로 교육시켰을까? 이래도 ‘폴 바셋’의 ‘폴 바셋’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세계 최고의 바리스타가 만들어준 커피. 그가 완벽하게 교육했을거라 생각되는 바리스타가 만들어준 커피. 한마디로 세계 최고의 커피를 마신다는 착각 속에 커피를 산다.
어찌됐든 폴 바셋은 고급 커피시장에서 세력을 넓혀가고 있고, 그들의 논리는 재밌다. 우리를 되돌아 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2. 과연 폴 바셋은 세계 최고의 바리스타인가?
우선 폴 바셋이 세계 최고의 바리스타라는데에 의문이 들었다. 그가 WBC에서 우승해서 최고의 바리스타라는 내용의 기사는 모두 매일유업이 제공한 홍보성 기사이기 때문이다.
폴 바셋이 우승한 World Barista Championship는 도대체 무엇인가? WBC는 2000년 인구 3만명 모나코에서 첫 대회를 열었다. 한번에 40여명 내외의 각국을 대표하는 바리스타가 참가하고 2라운드로 진행된다. 우선, 각국을 대표하는 바리스타가 출전해서 전세계적으로 벌이는 대회인가? 각국을 대표를 뽑을만한 바리스타 대회가 없거니와 바리스타가 무엇인지도 생소할 때였다.
다음으로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대회인가? 노르웨이에서 만든 대회 형식에 모나코에서 첫 대회를 시작한 만큼 유럽인이 주로 우승했다. 14회 대회 중 댄마크 4회, 노르웨이 2회, 영국이 2회 우승이다. 폴 바셋이 참가한 2003년엔 총 24명이 참가했는데, 첫번째 라운드에서 그는 6등을 했고, 파이널에서 1등을 해서 우승했다. 평가의 공신력도 의심스럽다. 사실 커피맛이란 주관적이지 않던가?
마지막으로 대회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상금이다. 대회의 크기를 가늠해볼 수 있는 주요한 지표인데 놀랍게도 상금이 없다. 대신 우승자가 가져가는 것은 명예와 에스프레소 머신, 여행권, 잡지 커버 모델이 될 기회이다.
알게 모르게 세계엔 수많은 바리스타 대회가 있다. 가장 많은 상금을 주는 세계대회의 상금은 1000만원으로 2013년 우리나라에서 열린 WBC와 이름도 비슷한 WSBC. 월드’슈퍼’바리스타 챔피언십이다. 폴 바셋이 우승한 WBC가 바리스타 대회 중 가장 공신력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대회 초창기인 2003년에 우승했고, 당시의 WBC는 ‘세계 최고’란 의문을 품기에 충분하다.
<WBC참고사이트>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 / 위키피디아 / 슬레이트의 기사
3. 소비자들은 왜 속는가?
세계 최고라는 타이틀과 폴 바셋의 너머에 있는 매일유업을 듣고 조금은 속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우리가 매일매일 마케팅에 의해 설득당하는 것들도 이것과 다르지 않다.
아이폰을 사면서 스티브 잡스의 영감과 아이디어가 아직도 묻어있는 것 같고, 에어조단을 사면서 전성기 때 코트 위를 날아다니던 마이클 조단을 느낀다. 스타벅스의 커피를 먹으면서 하워드 슐츠를 생각하진 않지만, 테슬라 전기차에선 엘런 머스크를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의도하고 연관지어 사는 물건들도 있지만, 우리가 모르고 소비하는 폴 바셋과 매일유업 같은 경우도 많다.
이탈리아 장인이 한땀한땀 만들었을 것 같은 루이비통, 펜디 등의 명품 가방은 한국 핸드백 업체 ‘시몬느’가 60% 이상을 공급하고 있다. 전세계 명품 핸드백 점유율 9%이다.
당신의 아이폰은 중국이 조립했고, 아베크롬비 티셔츠는 한세실업이 생산했으며, 폭스바겐 제타는 독일이 아닌 멕시코에서 생산하면서, 독일차의 철학이 들어있다고 말한다.
폴 바셋이 일년에 한번와서 교육한 바리스타들이 만들어도 그 커피에 세계 최고의 커피 철학이 들어있다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이탈리아 명품백은 몇 대째 내려오는 이탈리아 장인이 만들었길 바라고, 아베크롬비 티셔츠는 California의 해변을 담고있다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몰랐을 때는 몰랐다고 쳐도, 사람들은 그 이면의 실상을 알고서도 행동을 바꾸지 않는다. 이 모든것이 왜 소비자들에게 통하는 것일까?
4. 다빈치가 스케치만 해도 다빈치의 그림인가?
누가 만들었든 맛있기만 하면 된다, 누가 불렀든 듣기 좋기만 하면 된다. 누가 만들었든 좋은 품질이면 된다. 뭐 맘만 먹으면 이면을 무시할 수 있다.
폴 바셋은 맛있기에 나 역시도 그냥 맛있으면 상관없다. 하지만 그 이유 때문에 프리미엄을 부여했다면? 누가 그렸는지가 매우 중요한 미술품 시장으로 가보자. 나에게 천억원이 있어서 소더비 경매에 나온 다빈치 그림을 샀는데, 사실은 그가 그린게 아니라 그의 제자가 반 이상을 그린 그림이라면? 이래도 프리미엄을 줄 것인가?
유명한 화가가 그렸는지 그의 제자가 그렸는지에 따라 가격차이는 엄청나다. ‘아름다운 왕녀’라 이름 붙여진 그림은 조수가 그렸다고 알려졌을 때 2200만원이었으나 다빈치의 작품으로 재평가 되어 감정가가 1850억원까지 뛰었다. 8400배의 차이다.
위의 경우는 조수가 그렸다고 알려진 그림이 다빈치가 전부 그린 그림으로 판명난 경우이다. 그럼 다빈치가 ‘조금’만 그림에 관여했다면?
다빈치의 제자인 잠피에트리노가 그린것으로 알려진 막달라 마리아 그림은 다빈치가 밑그림을 그리고 공동작업을 했을수도 있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그가 스케치를 했다면 그 그림은 모나리자에도 비견될만한 수준이라는 평까지 나오고 있다.
그럼 유명 화가가 얼마정도 참여해야 그의 작품으로 인정할 것인가? 이는 폴 바셋이 만들어주지 않는 커피를 세계 최고라 생각할 것인가와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난 시대로 가보자.
5. 르네상스 시대: 수공업자에서 예술가로
요즘 같이 화가의 예술성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시대는 없었다. 과거에도 예술성에 높은 가치를 부여했을까? 변화를 추적해 보자.
르네상스 초기의 화가들은 예술성을 전혀 인정받지 못했고, 예술가보다 수공업자나 기능공에 가까웠다. 주문자는 교황청이나 부자들이었고, 계약서에 명시된 대로 화가는 작업해야 했다. 총 비용의 대부분이 재료비였고, 화가에게는 20%정도만이 돌아갔다. 주문자가 원하는대로 만들지 못하면 계약을 파기하고 재료비 한푼 안주는 경우도 있었다.
특이한 점은 ‘화가가 직접 그려야 한다’는 조항이다. 주문자 입장에서 작품의 품질을 보증하기 위해서였지만, 한편으로 다른 화가나, 조수에게 하청이 빈번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변화는 15세기에 들어서면서 나타나는데, 수도원의 장식과 흑사병으로부터 구원을 위한 종교적인 수요가 늘어났고, 주문자들의 요구 이상으로 만족시키는 화가들이 등장하면서, 이들에게 주문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수요의 증가와 예술성의 인정으로 인해 새로운 변화가 나타난다.
6. 브랜드의 탄생
공동 작업방식은 르네상스 시대에 항상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혼자 그려야 한다’는 조항을 굳이 만들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달라진 것은 시장이었다. 과거에 언제든 곧이곧대로 부릴 수 있던 화가를 이제는 나 뿐만 아니라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작업 규모도 성당 전체의 벽화 등으로 확장됐다. 화가 혼자 생산해낼 수 없는 수준으로 수요가 늘어나자 결국 주문자들은 ‘화가 혼자서 그려야 한다’는 조항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화가가 관여한 작품이라면 전체 작업을 혼자 해내지 않아도 그 화가의 작품으로 인정했고, 이제는 ‘누구의 손’이 아닌 ‘누구의 머리’에서 나왔는지가 중요해졌다. 결과적으로 누구의 공방에서 만들었는가를 보고 이를 믿기 시작했다.
화가의 예술성의 가치를 인정해주었기에 총 비용에서도 화가의 몫은 50%까지 늘어났고, 공방에서 화가의 역할은 창작에 집중되고, 실제 작업은 조수들에게 위임했다.
당신도 스티브잡스가 아이폰 공장라인을 설계하기보다는 다음 제품을 혁신하는 데에 시간을 쏟길 원하지 않는가?
르네상스 시대 주문자들이 화가에게 원한 것도 그런 것이었다. 그림 색칠을 한번 더 하기보단 예술성을 높이는 데에 에너지를 쏟기를 원했다. 그가 관여한 것만으로도 그의 작품이라고 인정해주는 것. 현대적 개념의 브랜드의 탄생이라고 볼 수 있다.
7. 브랜드 시대의 비즈니스 기회
여기 르네상스 시대 미술계를 주름잡던 세 명의 거장이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다.
다빈치는 공방의 조수에 머무르다가 이를 탈피해서도 후원자를 찾아다녔고, 미켈란젤로는 스스로 모든 일을 해결하려 했으며, 라파엘로는 공방에서 조수를 고용해 작품을 찍어냈다. 다빈치는 미켈란젤로보다 23살 많았고, 라파엘로는 미켈란젤로보다 8살이 어렸다. 제일 어린 라파엘로는 시대에 가장 빠르게 적응했다. 작품의 예술성에 대한 평가는 우열을 가릴 수 없으나 그들이 살아있을 때 사회로부터 받았던 보상은 예술적 천재성과는 관계가 없었다.
다빈치는 40대 후반이 되서야 본인의 이름으로 주문을 받았고, 30~40대까지 베로키오의 공방에서 공동작업을 하는 조수에 불과했다. 그는 작품 수가 아니라 작업한 시간대로 돈을 받는 ‘순수 후원’ 방식으로 생활했다. 그렇기에 그의 삶은 주문자에게 좌우됐고, 17개의 작품 대부분은 미완성이다. 당연히 생활도 어려웠고, 말년에도 후원자를 찾아다니기 바빴다.
미켈란젤로는 작품이 완성될 때마다 돈을 받는 ‘주문 제작’ 방식을 고집했기에 생활은 풍족했다. 그는 일찍이 메디치가와 친분을 쌓으며 교황청에서 많은 주문을 받았는데, 대부분을 스스로 혹은 적은 수의 조수를 두고 완성시키려 했기에 평생 감당하기 어려운 양의 주문에 괴로워했다.
라파엘로는 준수한 외모와 친화력을 바탕으로 메디치가, 교황청과 친분을 과시하며 엄청난 양의 주문을 받았다. 실제 제작은 50여명의 실력있는 조수가 했고, 그는 아이디어를 내고 그림을 마무리했다. 나머지 시간엔 사교 활동을 통해 작품 수주했고, 결과적으로 가장 풍족한 생활을 했다.
8. 우리가 사는 것은 무엇인가?
한정된 ‘프리스티지’를 다수의 ‘매스티지’가 소비하고 싶을 때 소비자는 많은 것을 용인한다. 유명 예술가들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그들의 몸값도 늘어났다. 이들에게 주문이 몰리면서 그림 가격을 상승시켰는데, 주문자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그들의 작품을 얻는 것이 작품을 못 받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이었다.
소비자들이 폴 바셋의 커피에 프리미엄을 주는 이유도 똑같다. 세계적인 바리스타가 직접 만든 커피는 매우 비쌀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대신에 그가 교육했다는 바리스타 역시 세계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 편하지 않은가?
우리는 사실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속길 원할 때가 있다. 자신을 속이고서라도 만족시키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내가 먹는 것이 세계 최고의 커피’라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그 생각을 만족시켜주는 이유가 된다면 무엇이든 상관없다.
바리스타가 최고여도 되고, 커피 원두가 상위 1%의 원두여도 되고, 유명인이 방문한 커피숍이어도 되고, 세계적인 커피체인의 1호점이어도 된다.
라파엘로는 일찍이 사람들이 사는 것의 실체를 파악했다. 사람들이 원한 것은 그림 자체뿐만 아니라 라파엘로 자신의 명성과 예술성이었다. 그는 그 모두를 만족시키는 방법을 고안했고, 뛰어난 그의 조수들은 주문자를 만족시켰다. ‘커피숍’ 폴 바셋의 바리스타들도 맛있는 커피로 사람들에게 ‘세계 최고 커피’라는 명제를 수용시켰다.
결국 우리가 사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렇게 우리의 욕망에 프리미엄을 지불한다. 더 정확히는 세계적인 바리스타의 커피를 직접 먹지 못하는 것처럼 위로받지 못한 욕망에 대한 위안의 프리미엄이다.
출처: AbsoluteZUNO, Absolute Capitalist / 편집: 리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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