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조직에서 나보다 서열이 높은 사람보다는 낮은 사람이 더 많을 정도의 짬이 되면서, 돌이켜보면 꽤 오랜 세월 동안 다양한 리더를 겪었다. 그러면서 살다 보니 정말 많은 면을 본보기 삼고 싶을 정도로 멋진 팀장도 만났다. 그를 통해 나도 언젠가는 좋은 팀장이 되려면 절대 잊고 싶지 않은 세 가지를 꼽아보려고 한다.
1. 언제나 믿고, 귀 기울여줄 여유
예전 팀장과 지금의 팀장은 둘 다 유능하다고 손꼽히는 사내 고성과자들이었다. 연차도 업무 경험도 폭도 비슷하고, 같은 리더 밑에서 고만고만하게 팀장까지 커온 케이스라 누가 봐도 둘은 비교군이었다. 하지만 아랫것들의 선호는 너무도 명확하게 한쪽으로 쏠렸는데, 나는 가장 큰 차이가 “인간적인 여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았다.
한 사람은 늘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항상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빼앗길까 전전긍긍하고, 하나라도 더 뺏어오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팀원들이 알아서 잘할 거라 믿음이 안 가는지 시도 때도 없이 몰아 대고 닦달하고, 아주 사소하기 짝이 없는 것까지 다 일일이 보고를 받기를 원했다. 결국 늘 본인이 제일 바쁘고, 조금이라도 예상 궤도에 벗어나는 게 있으면 안 그래도 늘 팽팽하던 그 긴장감이 수시로 폭발하고, 더 세세한 것까지 컨트롤하려 들고, 그러니 더 여유가 없는 것의 무한 루프였다.
반면 다른 한쪽은 마찬가지로 일이 항상 많지만, 동시에 여유도 항상 많았다. 어떤 사소한 개인적인 일도 진심으로 관심을 가져주었다. 언제나 “바쁘세요…?” 하며 조심스레 뭔가를 논의하러 들어가면 단 한 번을 바쁘다고 대답한 적이 없다. 항상 같이 고민해주는 여유가 있었고, 사소한 것은 보고하지 않고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바로 결재하고 넘어갔다. 예전에는 보고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하러는 가지만, 말 한 번 붙이기가 늘 숨이 턱턱 막히는데, 막상 가면 지금 바쁘대서 다시 돌아가는 일도 다반사였다. 반면 지금은 딱히 보고를 요구하지 않는데도, 소소한 진행 상황도 내가 “자발적으로” 공유하고 같이 논의하고 싶게 된다.
2. 팀원 수준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일을 실제로 해결해줄 수 있는 능력
이것은 노하우나 전문 분야에서의 지식이 될 수도 있고, 사내 네트워크, 혹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일 수도 있다. 내가 일이 생기거나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제일 먼저 팀장한테 달려가는 이유는, 나중에 들통나면 깨질까 봐도 아니고, 맨날 징징거리면서 친분을 쌓기 위해서도 아니다. 도저히 내 수준에서 답이 안 보이는 해결책이 팀장한테 가면 바로 나올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카드는 시도 때도 없이 써먹으면 절대로 안 된다. 나 역시 이러저러한 충분히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였고 다각도로 생각하고 알아보았으나, 이런 면에서 도저히 어려운 상황인데 혹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의견을 솔직하게 구하는 것이다. 팀장은 아무래도 나보다 훠얼씬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해 온 사람이기 때문에 종합적인 시각으로 내가 보지 못한 것을 짚어준다거나, 내가 존재조차 알지 못하던 솔루션을 제안한다거나, 본인 네트워크 힘을 발휘하여 전화 한 통으로 난관을 쉽게 해결해 주기도 한다.
나는 과연 팀장이 되었을 때 저 정도의 지식과, 안목과, 네트워크를 가지고 팀원들의 문제를 척척 해결해 줄 수 있을까? 매번 감탄할 수밖에 없다. 팀장은 질책하거나 평가질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팀의 일이 잘 돌아가게끔 구성원을 도와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를 통해 배웠다.
3. 일에는 완벽함을 추구하지만, 노고는 분명히 인정할 줄 아는 마음씨
보통 일의 완벽함을 추구하는 사람 눈에는 늘 미진한 것만 보인다. 그래서 뭐 하나를 하더라도 아주 사소한 실수나 불편, 오류 등이 행여 눈에 띄면 참지 못하고 비난을 쏟아내는 스타일이 소위 ‘잘나간다’는 리더 중에 상당히 많다. 하지만 그가 간과한 게 있다. 일부 조금 부족하기는 했지만 그렇게까지 만들어내기까지 들어간 건 무수한 피와 땀과 노력이다. 그것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부족한 리소스나 말도 안 되게 촉박한 일정, 지원 부서의 실수나 비협조 등등 이루 변명할 수조차 없는 수많은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을 것이다.
자신의 완벽한 성과에 집착할 때는 하더라도, 분명히 고생한 것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노고를 치하하는 것은 절대 빼먹어서는 안 될 일이다. 나의 롤모델 팀장의 경우, 팀원들의 실수로 본인이 엄청나게 깨지고 왔을 때도 보통 대다수 윗사람이 하듯이 그 감정적인 분풀이를 밑으로 눈덩이 굴리듯이 굴려 내리는 것이 아니라, 먼저 이렇게 말하고 침착하게 상황을 공유하곤 했다.
결국 완벽하게 챙기지 못한 나의 탓이 제일 크다.
그리고 욕을 먹건, 혼이 났건 어쨌든 큰일이 끝나면, 그 노고를 별도로 치하하는 자리를 꼭 가졌다. 소위 잘나가는, 높은 자리에 올라갔다는 사람들도 그런 울분과 서러움의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 그 자리까지 올라갔을진대, 대다수는 이미 그 시절이 깡그리 없었던 양 뒷단의 피땀 어린 노고가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마치며
그간 7명의 팀장 밑에서 일을 해봤고, 내가 봐온 바로는 대기업 팀장의 자리까지 오른 사람이라면 늘 그럴만한 이유가 다 있었다. 저마다 특기와 장점이 다르고, 그만큼 배울 점의 모양새도 다 달랐다. 대체로 나는 팀장들과 잘 맞았고, 그들의 좋은 점만을 최대한 흡수하고자 지금도 노력한다. 그래도 분명히 그들 간에는 차이가 있는 부분들이 있고, 나는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간에 비교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어떤 유형에 더 가깝고 싶을까? 정말 닮고 싶은 롤모델이 실존한다는 것은 복 받은 일이다. 그리고 너무 이른 시기부터 멋모르고 어설픈 리더 시늉을 하면서 누군가에게 상처만 가득 주기 전에 이런 배움의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는 것이 참으로 좋다.
PS. 추가로 내가 어떻게 이런 리더와 일하는 기회를 만들었는지 후속편도 적어 보았다. 관심이 있다면 참고해도 좋을 것이다.
원문: 투명물고기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