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추천한 책, 뉴욕 타임스 58주 베스트셀러, 지난 3년간 가장 많은 미국 독자를 사로잡은 책. 책 앞에 붙은 수식어는 차고 넘칠 지경이었지만, 독서 모임이 아니었다면 내가 이 책 『모스크바의 신사』를 직접 집어 드는 일은 어째 없었을 것 같다.
우선은 양장본 책이 너무 두꺼웠고(소설은 700페이지다), 에이모 토올스라는 저자의 이름은 생소했으며, 특히 미국 작가가 2016년에 러시아 혁명 이후 몰락한 구시대 귀족의 삶을 그렸다는 게 영 못 미덥기만 했다. 누가 이런 책을 골랐냐며 토요일 아침 미간을 찌푸린 채 책을 펼쳤다가…
그날 하루를 전부 들여 책을 완독했다. 몰입감이 남달라 책장 넘어가는 속도가 가히 무서울 지경이었다. 재밌는 소설을 읽게 만들어준 모임에 우선 감사. 인원이 많아 늘 대화라기보다 발표의 연속으로 끝나는 경향이 있음에도 내가 독서 모임을 매번 등록하는 이유다.
소설의 주인공인 알렉산드르 일리치 로스토프 백작은,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난 후인 1922년, 그간의 거처였던 모스크바의 메트로폴 호텔에 연금된다. 과거에 혁명의 기치를 드높인 시를 쓴 적이 있다는 이유로 그나마도 즉각 처분이 면해진 상황이다. 백작은 스위트룸을 빼앗기고 지닌 소지품 대부분을 몰수당한 채 호텔 구석의 다락방으로 쫓겨난다.
이 극적이고 암울한 변화에도 백작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특유의 여유로움과 유머, 그간 쌓아온 귀족으로서의 교양, 그리고 무엇보다도 새로운 변화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겸허함이 그를 지탱한다. 호텔 안에서 백작은 여전히 본인의 일상을 정성껏 설계하고,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여러 번의 상실 속에서도 살아갈 이유를 찾아낸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이 전 세계를 배경으로 한 인생을 살아간다. 그러나 과연 백작의 인생만큼 풍부하고 깊이 있는 삶을 그려나가는 이가 몇이나 될까 싶었다. (당장 내 삶만 돌아봐도 자신 있게 얘기할 수가 없으니!)
나나가 호텔에 있는 동안 벽은 안으로 좁혀 들어오지 않았다. 오히려 영역과 복잡성이 모두 확대되면서 밖으로 팽창했다. 니나가 이곳에 온 지 첫 주가 지났을 때 호텔은 두 구역의 삶을 포괄할 정도로 팽창했다. 첫 달이 지났을 때는 모스크바의 절반을 아우를 정도로 팽창했다. 만약 니나가 이 호텔에서 충분히 오래 지낸다면 호텔은 러시아 전체가 될 것이다.
백작의 풍부한 일상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면 단연 니나, 그리고 후에 나오는 니나의 딸 소피야일 것이다. 어린아이들 특유의 순수함과 호기심으로 니나는 호텔 속의 무궁무진한 공간과 시간, 사람을 발견해낸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건대 백작이 어린아이의 질문에 유머러스하게 답할 만큼의 너그러움이 없었더라면, 니나는 백작의 삶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을 것이다.
백작이 만나는 모든 사람과 사건이 그렇다. 백작은 어떤 사람에게서든, 또는 어떤 순간에서든 풍부한 매력을 발견해낸다. 이는 그가 한없이 귀족적이면서도 배타적이지 않기 때문이고, 참을성 있게 기다릴 수 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도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그 누구든 간에 그 사람에 관한 첫인상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줄 수 있겠는가? 첫인상이라는 것은 단지 하나의 화음이 우리에게 베토벤에 관해 말해줄 수 있는 것, 또는 하나의 붓 터치가 우리에게 보티첼리에 관해 말해줄 수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인간은 너무 변덕스럽고 너무 복잡하고 엄청나게 모순적이어서 우리가 숙고해야 할 뿐만 아니라 거듭 숙고해야 하는 존재다. 인간은 우리가 가능한 한 많은 상황에서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겪어보기 전에는 그 사람에 관한 견해를 보류하겠다는 확고한 결심이 필요한 존재인 것이다.
소설은 러시아 혁명 이후 몰락한 구시대 귀족의 삶을 다루지만, 첨예하게 대립하는 권력이라든가 급변했던 역사의 흐름에 대해 다루지는 않는다. 다만 조용히 사파리를 관찰하는 카메라처럼 백작의 32년 인생을 조심스레 따라다닐 뿐이다.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기 전까지는 그 어떤 극적인 사건도 숨 막히는 긴장감도 없지만 백작의 삶은 그 자체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그가 삶에 대해 가진 확고한 철학이나 타인을 대하는 태도에서, 우리는 우리가 늘 이상적으로 여기고 갈망하는 것, 그러나 결코 얻기 쉽지 않은 단면들을 엿보기 때문이다.
백작은 자신의 성격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절제력을 발휘하여, 부모로서의 충고를 두 가지 간단명료한 요소로 제한하였다. 첫째는 ‘인간이 자신의 환경을 지배하지 못하면 그 환경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가장 현명한 지혜는 늘 긍정적인 자세를 잃지 않는 것’이라는 몽테뉴의 격언이었다.
40년에 걸친 본인의 인생을 통해 백작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은 결국 그가 자신의 딸 소피야에게 충고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환경에 귀속되든 지배당하기보단 지배할 것, 그것도 긍정적인 자세로. 백작의 인생을 전부 따라가고 나서야 책의 제목이 왜 모스크바의 귀족도 아니고 모스크바의 사나이도 아닌 모스크바의 신사여야만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친절하고 기품 있는 귀족적인 사람. 신사라는 수식어에 로스토프 백작만큼 잘 어울리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에 다다르기 전까지 배경은 메트로폴 호텔로 제한되어 있었지만, 백작의 인생에는 조금도 답답함이 없었다.
한정된 공간과 관계 속에서도 백작이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배척하기보다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는 순간의 사건이나 감정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모든 것을 온화하고 겸허한 자세로 받아들였다. 설령 그것이 인생 전체를 뿌리 끝부터 뒤흔드는 고난이라고 해도.
아버지는 우리 인생은 불확실성에 의해 움직여 나아가는데, 그러한 불확실성은 우리의 인생행로에 지장을 주거나 나아가 위협적인 경우도 많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가 관대한 마음을 잃지 않고 보존한다면 우리에게 극히 명료한 순간이 찾아들 거라고 했다.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일이 갑자기 하나의 필수과정이었음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순간이 찾아든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삶으로 꿈꿔온 대담하고 새로운 삶의 문턱에 서 있을 때조차도 그렇다는 것이었다.
언제나 자기 자신을 믿는 것. 어떤 상황에서도 특유의 재치와 긍지를 잃지 않되, 거만해지지도 않는 것. 어떤 방이든, 사람이든, 순간이든 간에 그것만이 가진 고유한 무늬를 발견해내고 기뻐할 수 있는 것. 설령 눈앞이 깜깜한 암흑이더라도 한 걸음 더 내디뎌보는 것. 이 더없이 귀족적인 신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삶의 태도는 모두 배울 만한 가치가 있다.
백작과 만나는 내내, 예전에 좋아서 적어두었던 릴케의 시가 떠올랐다.
인생이란 꼭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그냥 내버려 두면 축제가 될 터이니
길을 걸어가는 아이가
바람이 불 때마다 날려오는 꽃잎들의
선물을 받아들이듯이
하루하루가 네게 그렇게 되도록 하라꽃잎들을 모아 간직해두는 일 따위에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제 머리카락 속으로 기꺼이 날아들어 온
꽃잎들을 아이는 살며시 떼어내고
사랑스러운 젊은 시절을 향해
더욱 새로운 꽃잎을 달라 두 손을 내민다
원문: 소화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