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여성 축구 팬 사하르 호다야리가 분신자살을 했다. 이란 여성은 축구 경기장에 입장이 불가하다고 한다.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그러나 이란 여성 사하르 호다야리는 자신이 좋아하는 축구팀의 경기를 봐야만 했다. 팀 상징색인 푸른색 옷을 입고. 경찰에 체포된 호디야리는 분신자살을 했다.
톨게이트 여성 노동자들이 상의 탈의를 하고 시위했다. 톨게이트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라는 대법원판결이 나왔다. 그러나 도로공사는 대법원판결을 무시하고 직접 고용을 거부한다. 직접 고용을 바라면 청소직으로 전환할 것을 강요한다. 청소직이 싫다면 자회사에 만족하라는 얘기다. 도로공사 본사를 점거한 여성 노동자들에 강제 해산이 집행되었다. 강제 해산을 막기 위해 상의를 탈의하고 저항해본다.
오래전 역사
1972년 주길자가 여성 최초로 노조지부장에 당선된다. 동일방직 지부 조합원 1,400명 중 1,200명이 여성이었다. 그동안 소수의 남성 직원이 어용노조를 만들었다. 결국 최초의 노조지부장 주길자 당선 이후 민주노조로 변신했다.
그러나 1976년 노조지부장이 경찰에 연행된 틈을 타 어용 대의원 24명만을 모아 어용 지부장을 선출한다. Baek Il 선생의 페이스북 글에서 인용하면,
그러자 수백 명의 여성 조합원들은 즉각 농성에 돌입, 회사 측의 비열한 처사에 항의했다. 사흘째 농성이 계속되던 25일에는 농성조합원을 해산시키기 위해 경찰이 투입되기에 이르렀다. 경찰은 한발 한발 포위망을 좁히며 다가섰다. 경찰은 “주동자만 내놓으세요. 주동자만 내놓으면 여러분들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라며 노동자들을 회유했다.
노동자들은 “주동자가 따로 없다. 우리 모두가 주동자다”라며 맞섰다. 회사 간부들은 경찰에게 손가락으로 누구누구가 조합 간부이며 주동자라고 연행 대상자를 찍어주었다. 그때 누군가가 급박하게 소리쳤다. “옷을 벗자! 옷을 벗은 여자 몸에는 경찰이 손을 못 댄다!” 참으로 장엄한 광경이 벌어졌다.
20대 초반이 대부분인 여성 노동자들이 수많은 경찰과 회사 간부들 앞에서 스스로 작업복을 벗어 던진 것이다. 여성 노동자들은 이렇게 작업복을 벗어 던지고 알몸으로 저항했으나 경찰은 곤봉과 주먹을 휘두르며 여성 노동자들을 무차별 연행했다. 40여 명이 기절하고 14명이 부상당했으며 두 사람이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아비규환의 생지옥으로 변했다.
이후 1978년 동일방직은 그 유명한 똥물 사건을 겪는다.
페친 김형민 선생이 기록한 박준성 선생님 강의를 옮기면,
투표하러 사무실에 모여들던 여성 노동자들 앞에 버티고 선 것은 회사 측에 매수된 남자 조합원 행동대원들이었다. 그들은 가죽 장갑을 끼고 뭔가를 움켜쥐고 있었다. 비위도 좋지, 그건 똥물이었다.
이 똥물에 튀겨 죽일 찌질한 남자 새끼들은 여성 조합원들에게 달려들어 똥물을 뿌릴 뿐만 아니라 옷을 들치어 그 속에 집어넣고 강제로 입을 벌리고 쏟아붓기도 했다. 부모를 죽인 원수도 아니고, 재산을 통째로 들어먹은 사기꾼도 아닌 직장 동료들에게 그렇게 한 것이다.
사진 속 여공의 표정을 들여다본다. 여덟 팔자로 다물린 입은 금세라도 흐느낌으로 미어터질 것 같고, 똑바로 앞을 응시하지 않는 눈은 부끄러움과 분노가 범벅이 된 빛을 쏘아 낸다. 부르쥔 주먹이 덜덜 떨리고 있음은 누가 봐도 짐작할 수 있는 일, 저들의 푸른 작업복에 뭉텅이로 박힌 저 똥물은 1978년 대한민국 역사에 들이 부어진 오물로서 오늘도 싯누렇게 빛난다. 입에 똥물을 머금고 양치질을 하는 듯한 욕지기로 양심을 건드린다.
아주 오래전 역사
고다이바(Godiva)는 가혹하게 세금을 걷는 폭군 영주의 어린 아내였다. 가난한 농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고다이바는 폭정을 멈추고 세금을 내릴 것을 남편인 영주에게 수차례 요청했다. 남편은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의 요청이라고 여기고 조롱하기에 이른다.
정말 저 농민들이 불쌍하면 옷을 벗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아봐라.
고다이바는 옷을 벗고 마을을 돌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덧문을 닫고 옷을 벗은 고다이바를 보지 않기로 결의했다.
고다이바라는 이름을 들으면 (초콜릿을 제외하고) 바로 저 콜리어의 그림이 떠오른다. 그런데 나는 개인적으로 저 유명한 콜리어 그림은 좋아하지 않는다. 고다이바가 저렇게 섹시하고 수줍은 소녀 이미지여야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차라리 누르트의 고다이바 그림이 더 멋지지 않을까? 당당한 고다이바의 나체가 더욱 인상 깊다.
예전 고다이바의 마을 사람들은 모두 창문을 닫고 나체의 고다이바를 보지 않는 것으로 고다이바의 ‘명예’를 지켜줬다. 물론 그 당시 시각으로는 아름다운 행동일 수 있다. 그러나 이제 21세기의 고다이바를 위해서는 당당히 창문을 열고 박수와 환호성을 보내주었으면 한다. 누르트의 고다이바는 환호와 박수에 화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저 사진들을 한 번 더 보고, 환호하고, 기억했으면 한다. 사하르 호다야리, 톨게이트 노동자분들. 동일방직 노동자분들.
고다이바의 시위가 폭정을 막았듯이, 호다야리의 분신이 이란 여성 축구 팬들이 축구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승리로 연결되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톨게이트 노동자분들이 이미 쟁취한 대법원 결정이 시행되기를 바란다. 퀸의 노래 〈don’t stop me now〉의 가사와 같이 이들 모두가 바라는 꿈이 고다이바처럼 질주할 수 있기를 바란다.
I’m a racing car, passing by like Lady Godiva. […]
Don’t stop me now.
원문: 이상민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