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존경하는 건설일용직 노동자 지인이 있다.
인생 굴곡이 평탄하지 않은 분이다. 서울대 정치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지만, 50줄에 접어든 나이에 건설판 잡부로 살아간다. 한때 인생의 밑바닥에서 깊은 절망에 빠지기도 했지만, 이제는 주변에 밝은 에너지를 전파하는 페북 스타로 변신했다.
일용직 노동자로서 이분의 지론은 ‘살 만한 개천’이다. 비정규직도, 건설 일용직도 열패감을 느끼지 않는 세상을 바란다. 한국 중산층의 이기적 행태에 대한 문제의식도 분명하다. 상위 1%를 비판하며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는, 상위 10%(혹은 20%)에 대한 이유 있는 반감이다. 언젠가 이분께 물었다.
선생님의 위치가 지금과 같지 않았다면, 선생님의 숱한 고학력 지인들처럼 선생님도 상위 10%에 머물렀다면, 지금의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2. ‘청년유니온’이란 노동조합이 있다.
오래전 두어 차례 모임에 나간 적이 있다. 당시 조합 선거에서 새로 선출된 대표가 대략 이런 홍보문을 내걸었다.
학교 졸업하면 목에 사원증을 걸고 다니는 회사원이 될 줄 알았죠. 하지만 취업난의 시대에 부질없는 꿈이었어요. 힘겨운 청년들을 위한 ‘청년유니온’이 필요합니다.
당시 속으로 생각했다. 만약 저분이 고층빌딩 사이로 폼 나게 사원증을 휘날리는 도시 직장인이 되었다면 ‘청년 유니온’에서 활동할 일은 없었겠구나.
3. 나는 ‘루저’다.
대학교 1학년 중퇴자로서 공부 경쟁에서 낙오했다. 낙오의 귀결을 알면서도 피하지 못했다. 과거 도시로 상경한 많은 저학력 부모 세대가 그러했듯, 내 부모님도 ‘무’에서 시작했고 얼마나 큰 고생을 했는지 어릴 때부터 지켜봤다. 그것은 무언의 압력이며 공포이기도 했다.
공부를 잘해야 부모님처럼, 나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생을 하지 않겠구나….
IMF로 인한 집안의 풍비박산은 모자란 실패자들의 흔한 변명이다. ‘능력자’들은 어떤 역경도 이겨낸다. 결과적으로 나는 ‘능력’이 모자랐고, 공부와 소득 경쟁에서 탈락했다. 히키코모리를 거쳐 공장 생활을 시작했다. 온갖 이름의 비정규직 신분으로 직장에 다니면서 그전과는 다른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계급적 문제의식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성실히 일하는 것만으로는 ‘평범한’ 삶을 살 수 없다.
누군가의 온당한 몫이 다른 누군가에게 간다. 그 누군가엔 소위 ‘귀족노조’나 (상위 10~20%) 중산층도 들어 있다.
내가 공부 경쟁의 승리자가 되어 정규직 사원증을 목에 걸고 빌딩 사이를 거닐었다면, 이런 문제의식을 갖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확률적으로는 분명 아래 계급의 생각과 멀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송곳〉의 ‘구고신’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당신들은 안 그럴 거라고 장담하지 마.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연대 실패의 대가
내 계급적 문제의식은 과거 ‘공부 경쟁’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졌다. 내가 다니던 서울 모퉁이의 일반고에선 ‘대학을 갈 사람’과 ‘가지 않을 사람’이 암묵적으로 분리돼 있었다.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당시에도 나는 후자의 친구들이 순탄한 삶을 살기는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내 성적이 대단치는 않았으나, 그래도 그들보다는 나아서 다행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그들을 밟고 올라서는 게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어린 나는 ‘다른 풍경’에 살고자 공부 경쟁에 임했다. 건강을 축내는 육체노동으로 간신히 집 한 칸을 마련했던, 부모님처럼 사는 것이 두려웠다. ‘가지 않을’ 친구들 또는 나보다 성적이 떨어지는 친구들이 내 부모님처럼 살아갈 확률이 높다는 것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어도 분명히 알았다.
여가 없는 공장 생활을 하던 어느 날, ‘그 벌’을 받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아니 남이 어렵게 살 확률이 높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내 성적만, 내 등수만 중요시했던 ‘그 자세’가 문제의 근원이었다. 그런 삶의 태도 때문에 후과를 치른다는 생각이 갈수록 또렷해졌다. 비록 미성년의 학생이었지만, 낙오자들이 어떻게 될지 인지하면서도 나만 살아남으려 아등바등했던 것은 대가를 치르기에 충분한 과오였다. 나는 후에 이것을 ‘연대 실패의 대가’라고 명명했다.
‘연대 실패의 대가’는 아래쪽에 있는 사람일수록, 펜대를 굴리는 공부형 머리가 부족한 사람일수록, 부모가 ‘흙수저’일수록 더 크고 잔인하게 휘몰아친다. 원초적으로 공정할 수 없는 경쟁의 장에서 ‘연대 실패의 대가’가 불거지지만 어쨌든 누구나 힘겨운 입시와 취업 전쟁 등을 거치기에, 또 사람의 시야는 자기 울타리 안에 갇히기 쉬운 것이기에, ‘연대 실패의 대가’로부터 빗겨난 이들은 자신을 둘러싼 풍경의 바깥을 헤아리기 어렵다. 한국식 ‘각자도생’ 구조가 타파되기 어려운 커다란 이유다.
‘조국 정국’을 지켜보다 새삼 ‘연대 실패의 대가’가 떠올랐다. 이번 사태로 조국 후보자와 그 가족이 겪은 고통은, 아래쪽 사람들이 겪는 그것과 형태는 달랐어도, 명백한 연대 실패의 대가였다.
남이야 개천을 기든 어떠하든 각고의 ‘각자도생’으로 일단 내 안전지대를 확보하고 본다.
조국과 그 가족은 이러한 한국의 보편적 삶의 양식에서 딱히 벗어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이 조국 후보자의 과거 발언과 부조화를 이루었고, 이를 빌미로 보통 개천 쪽에서 선택적으로 일어나는 ‘연대 실패의 대가’가 이번에는 ‘강남좌파’ 조국 가족을 집어삼켰다.
조 후보자는 자신의 가족이 누렸던 혜택과 사회 불평등에 둔감했던 것은 큰 실책이었다며 (내가 보기엔 그로서는 최선의) 사과를 했다. ‘각자도생’의 낙오자들에게 어떤 상처를 주었는지 부분적으로나마 감지한 것으로 여겨졌다. 조 후보자는 사과와 함께 아이들까지 부당하게 허위사실로 공격하지는 말아 달라고 부탁의 말을 전했다.
문 대통령의 아들 문준용 씨가 조 후보자의 딸을 걱정하는 페북 글도 상당한 화제가 됐다. 준용 씨는 후보자의 자식까지 검증해야 한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식의 실력과 노력마저 폄훼되는 것은 심각한 부작용이라고 지적했다. 조 후보자의 딸은 그동안의 자기 인생이 부정당하는 고통을 겪을 것이라며 염려했다.
십분 공감이 가는 말이다. 동시에 문준용 씨가 한국형 사회구조의 부작용에 둔하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준용 씨는 조 후보자의 딸이 최선을 다해 살아왔고, 충분히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음에도 사람들이 부모만을 거론할 뿐 딸의 노력을 말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한국이란 곳은 최선을 다해 훌륭한 성과를 내는 것 자체가,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타인을 밟는 악행으로 변질하기 쉬운 사회다.
대학 입시를 예로 든다면, 입시 이후 펼쳐지는 ‘무수한 삶들’의 간극이 지나치게 커서 최선을 다해 시험을 치르고 좋은 결과를 얻는 것만으로도 남에게 커다란 피해를 끼치게 된다. ‘연대 실패’의 사회구조란 그처럼 비정한 것이며, 개천에 사는 이들은 가장 혹독하게 그 비정함을 겪어왔다.
조 후보자 딸의 노력과 성과를 무시하는 것은 그 자체로 크게 비판받을 일이다. 동시에 ‘악의 없는 노력’이 어떻게 남에게 비수로 날아가 꽂히는지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 역시 앞으로는 호된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성공을 향한 나의 노력이 주변에 어떤 폐해를 불러오는지 한국인들은 너무 둔감했었고, 그런 무신경함이 누적되어 오늘날의 ‘연대 없는’ 헬조선이 구축되었다.
조 후보자나 그 가족의 고통이 ‘연대 실패의 대가’로 널리 이해될 때, 앞으로 이런 불상사를 방비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다수의 개천 사람들이 ‘연대 실패의 대가’로 고통받는 일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조국 정국’의 귀결이 이렇게 흘러가길 바라지만, 하이에나의 본색을 미친 듯이 드러내는 언론만 보아도, 여기에 조국보다 한참 못한 보수 야당까지 생각하면 너무 큰 기대가 아닌가 싶다. 여러모로 뒷맛이 나쁘고 (언론과 보수 야당을 제외하면) 딱히 얻을 게 없어 보이는 조국 파동이다.
사족
일전에 조국 후보자가 사퇴하기를 바란다는 의견을 남겼다. 하지만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니, 사퇴보다는 장관직을 맡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다. 임명 찬성 여론이 급격히 상승해 반대와 오차 범위로 좁혀졌다는 뉴스가 나왔는데, 나도 찬성으로 돌아선 사람 중에 하나다. 모쪼록 이번 사태를 교훈 삼아 분별없는 정의감 발언은 자제하고, 법무장관으로서 좋은 역할을 해주었으면 한다.
원문: 장제우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