캪틴큐, 돈 없고 취하고 싶을 때 마시는 거 아니냐?
이런! 전설을 상대할 때는 무릇 예의를 갖춰야 한다. 캪틴큐(캡틴큐라고 부르면 멋이 나지 않는다). 곱게 마시고 걸어 돌아간 사람을 보지 못했다는 음주계의 시라소니. 만만하게 보고 마셨다가 안주 대신 술집 바닥을 핥았다는 근검절약형 양주. 주사가 없이 자는 사람도 악을 쓰게 만든다는 락스타 음료. 그럼에도 이걸 마시고 저승사자와 진로 상담해봤다는 소리는 없는 나름 지킬 건 지키는 양주가 아니던가.
지난 「국산 위스키 100년사」에서 잠깐 언급이 된 것만으로도 ‘캪틴큐’에 대한 리뷰 요청이 많이 들어왔다(따지자면 럼이라고 해서 본편에는 다루지 않았다). 마시즘 역시 캪틴큐를 익히 들어 알고 있었고, 캪틴큐 로고가 박힌 옷도 있지만, 캪틴큐는 없다. 시대가 지나서 단종이 되어버린 옛날 양주. 도대체 무엇이 이 저렴한 양주에 추억을 끓게 만드는 것일까?
청춘에게도 취할 권리를: 양주의 로망 캪틴큐
바다를 건너 외국에서 들어온 술을 모두 ‘양주’라고 퉁쳐서 부르던 시대가 있었다. 70년대에 후발주자로 주류업계에 뛰어든 롯데주조는 세분화된 술의 이름을 앞세워 자리를 잡아갔다. 1978년에 나온 보드카 ‘하야비치’로 성공적인 데뷔를 했고, 1980년 1월 19일에는 럼(Rum, 럼주라고 잘못 부르기도 한다)을 국내 최초로 판매하기로 한다. 바로 캪틴큐의 탄생이다.
럼은 사탕수수를 원료로 만든 증류주다. 라벨에 그려져 있는 애꾸눈 선장님을 보면 알겠지만 선원들의 술로 유명하다. 주로 몸이 고된 노동을 하던 선원들을 달래준 값싸고 빨리 취하는 술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물보다 많이 마셨다는 게 함정이지만… 어찌 되었건 그런 유서 깊은 럼이 한국에서 생산이 되었다.
당시에도 양주는 있었다. 하지만 럼, 위스키를 비롯한 양주들은 주로 술집을 통해 소비가 되었는데. 가격이 하나같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기분 좋다고 열심히 마시고 눈을 뜨면 월급이 사라지고, 좋을 일이 사라졌던 시대다.
하지만 캪틴큐는 5배나 낮은 주세율, 그리고 그보다 더 저렴한 가격으로 어필했다. 효과는 뛰어났다. 출시 5개월 만에 경쟁사의 위스키 및 기타 재제주의 실적을 뛰어넘었고. 출시 1년 만에 1,000만 병을 판매 돌파했다. 특히 주머니가 가벼운 청춘들이 많이 사서 마셨고, 술 게임 아이엠 그라운드 자기소개하기에 영구결번처럼 캪틴큐라는 닉네임을 남겼다고.
캪틴큐 VS 나폴레온, 대중 양주의 시대를 열다
1980년대는 재미있는 술들의 탄생이 많았다. 럼에서는 캪틴큐, 보드카에서는 하야비치, 위스키 하면 ‘베리나인’, 그리고 브랜디가 들어간 ‘나폴레온(나폴레옹이라고 부르면 멋이 나지 않는다)’이 있었다. 다 원액 조금 넣고 흉내 낸 거 아니냐고 묻는다면 미안. 사실 놀이든 창작이든 양조던 시작은 어설프게 따라 하는 게 아닐까? 물론 캪틴큐가 나중에는 럼 원액이 없이 향만으로 럼 맛을 코스프레했다는 사실은 두고두고 놀림거리이자 술안주가 되었다.
캪틴큐와 나폴레온은 대중 양주(라고 쓰고 저가 양주라고 읽는다) 시대를 연다. 구분하자면 캪틴큐는 거친 남자 스타일의 광고(하지만 캪틴큐 앞에서는 모두 알콜쪼랩일뿐이다)를 했고, 포도가 베이스인 브랜디 나폴레온은 여성들도 마실 수 있는 적극 술로 어필했다. 물론 섞어마시는 것은 절대 금지다.
문제는 1991년이 되면서 주류 수입이 개방되었던 것이다. 위스키와 브랜디의 세율이 떨어지자 가격이 (조금은) 저렴해졌다. 그 사이 국민들은 어느 정도 소득 수준이 높아졌다. 이러한 바람을 타고 유명 위스키, 브랜디들이 국내에 진입했다. 마치 그동안 조기축구 같던 시장에 해외 용병들이 들어왔다고 해야 할까? 캪틴큐와 나폴레온은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양주에서 저렴이 이미지로 전락한다.
그래도 마실 사람은 마시지 않았겠냐고? 그렇다.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정말 문제는 이 저렴한 캪틴큐와 나폴레온을 가지고 비싼 수입양주로 속여 파는 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망한 줄 알았는데 잘 팔렸던 캪틴큐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이유
캪틴큐와 나폴레온 등의 대중 양주들은 2000년대쯤이면 마셨다는 흔적을 찾기가 어렵다. 하지만 소리 없이 많이 팔렸다. 캪틴큐의 단종 결정이 내려지기 전년도인 2014년에도 5억 1,000만 원어치나 판매되었다고 한다. 나폴레온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중들은 의심하기 시작했다. 마트에서도 본 적이 없고, 술집에서도 본 적이 없는 옛날 양주가 아직도 이렇게 팔린다고.
그맘때쯤 대대적인 단속이 시작되었다. 유흥주점에 가짜 양주를 파는 제조업자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언론에 보도된 단속 현장에서는 비슷한 맛은 내지만 가격은 훨씬 저렴한 캪틴큐와 나폴레온이 나오곤 했다. 이들 음료에 에탄올과 물을 섞어 빈 양주병에 주입했고 다시 헐값에 유흥주점에 판매하는 것이다.
문제는 적당히 알딸딸해진 마시는 사람 입장에서 이게 캪틴큐인지, 위스키인지, 해골물인지 알 방법이 없다는 것. 때문에 주당들 사이에서는 가짜 양주 구별법이 나오고. 위조방지 마개(키퍼)가 있는지, 병뚜껑이 열려 있는지, 혹은 물을 섞어서 향을 확인하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냥 집에서 마시면 그럴 일은 없을 텐데.
결국 캪틴큐는 2015년, 출시한 지 35년 만에 생산중단을 선고받는다. 여기에는 약간의 억울함도 있을 수 있다. 가짜 양주 문제들은 현재에도 종종 등장하지만 보통 술을 섞어서 만든다기보다는 손님들이 마시고 남은 술들을 채워 넣는 수법이 훨씬 많다. 또한 문제가 되었던 해(2007년)의 캪틴큐, 나폴레온의 판매량을 더해도 전체 위스키 판매량의 1.4%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캪틴큐가 사라지자 아쉬워한 이들도 있었다. 알고 보니 제빵을 할 때 달걀 비린내를 잡는데 럼이 사용되는데 수입되는 럼 대신 싸고 구하기 쉬운 캪틴큐가 이용되었다는 것. 그리고 우리 주변의 마켓에서 보지 못했을 뿐 국내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특히 선원) 사이에서 캪틴큐의 판매량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롯데주류 입장에서는 고품질의 주류에 집중하기 위해 캪틴큐의 생산 중단 결정을 내렸다.
오 마이 캪틴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그립다니
역사 속에 묻힌 캪틴큐를 끌어올린 것은 아마도 인터넷의 한 후기 게시물이었다. ‘다음날 숙취가 없는 술’에 우리의 캪틴큐가 뽑힌 것이다. 거기에 ‘왜냐하면 다다음날 일어나기 때문’이라는 글이 달리자, 캪틴큐를 아는 사람들의 공감과 증언이 이어졌다.
캪틴큐를 마시고 눈을 한번 깜빡였는데 거리로 순간 이동 하는 능력을 발휘했다는 이야기부터, 이것을 마시면 기억력의 절반이 사라진다는 타노스식 후기. 손가락을 안주로 착각하게 만든다는 공포 영화스러운 후기도 함께했다.
이제는 볼 수 없는 캪틴큐. 물론 맛으로 따지면 모자란 부분이 많겠지만, 그만큼이나 어설펐던 우리의 과거 모습 같다. 멋모르고 많이 마셨다가 후회해버린 하지만 흥겨움이 있었던 시기로 캪틴큐라는 이름은 우리를 추억의 바다로 데려온다.
원문: 마시즘
참고문헌
- 양주 캪틴큐 시판 롯데주조 개발, 매일경제, 1980.1.19
- 저급양주 왜 잘 팔릴까? 김성회, 매일경제, 2004.5.13
- 가짜 양주 제조·유통 3명 영장, 2006.8.30, 김광수, 2006.8.30
- [술 이야기] 가짜 위스키 판별법, 김지산, 머니투데이, 2007.8.13
-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가짜 양주 구별법, 이태희, 한겨레21, 2008.10.24
- 80년대 가난한 청춘의 양주, 이젠 외국인 선원·이주 노동자의 술, 중앙선데이, 2011.2.6
- [단독] 年 판매량이 20만 병, 캡틴큐의 ‘미스터리’, 김기환, 세계일보, 2015.8.24
- [만파식적] 캡틴큐의 추억, 정상범, 서울경제, 2015.9.23
- [경제 talk톡] 가짜 양주업자들, 캡틴큐 싹쓸이?, 김기환, 세계일보, 2015.9.30
- <오후여담>‘캡틴큐 퇴장’의 逆風, 박학용, 문화일보, 2015.10.2
- 짝퉁과의 전쟁 진화하는 위스키 위조방지 기술, 송지유, 민동훈, 머니투데이, 2016.7.28
- 손님이 남긴 술로 가짜 양주 118병 만들어 판 주점 종업원, 김선호, 연합뉴스, 2018.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