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Guardian의 「A new survey shows what really interests ‘pro-lifers’: controlling women」을 번역한 글입니다.
낙태 찬반 논쟁에서 반대론자(pro-life)를 자처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임신 중절을 불법화해야 한다는 쪽과 지금처럼 법의 테두리 안에 두자고 주장하는 쪽 간의 결정적인 차이는 ‘어디서부터를 생명으로 볼 것인가’라고 합니다. 반대론자들의 주장은 수정되는 순간부터죠.
‘프로-라이프’라는 명명과 함께, 낙태에 대한 반대는 곧 인간의 소중한 생명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어필합니다. 하지만 새로 나온 설문 조사의 결과는 다릅니다. 낙태 반대론자 진영이 근본적으로 여성 혐오적이라는 점을 보여주죠.
여성단체 슈퍼메이저리티(Supermajorit)와 여론조사기관 페리언뎀(PerryUndem)이 실시한 이번 조사는 낙태에 대한 의견에 따라 응답자를 분류한 뒤 그 외 일반적인 성 평등에 대한 질문 10개에 대한 답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결과 모든 항목에서 낙태 반대론자들은 찬성론자들에 비해 성 평등에 눈에 띄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죠.
여성보다는 남성이 더 나은 정치 지도자감이다? 낙태 반대론자의 절반 이상은 여기에 동의했습니다. 미국 내 권력의 자리에 남성과 여성이 동일한 숫자로 올라가야 한다? 여기에 동의한 낙태 반대론자는 절반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찬성론자의 80%가 동의한 것과는 사뭇 대조되는 부분입니다.
낙태 반대론자들은 미투 운동에도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권력의 자리에 여성이 올라가는 것이 성 평등과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피임 수단에 대한 접근권이 여권 신장에 영향을 미친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성들이 사회에서 어떤 대우를 받는지는 2020년 대선에서 주요 이슈가 아니라는 의견입니다.
즉 이들은 성차별이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며, 여성의 권리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갖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낙태 반대론자들은 자기 자신의 성차별적 사고를 부정하는 ‘디나이얼 성차별주의자’입니다. 성별이 여성인 반대론자들이라고 예외가 아닙니다.
2016년 미국 대선이 끝난 후, 백인 정치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트럼프의 백인 남성 지지층이 ‘경제적 불안감’에 의해 움직였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진보 계열 언론이 말하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아니다. 자유무역협정과 중국의 경제적 지배, 노조의 몰락, 사회적 안전망의 약화와 정체된 임금 때문에 타격을 받은 양식 있는 시민들이다.
이런 식의 주장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왜 노조를 탄압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찢어버리고 최저임금 상향조정에 반대하면서 기업의 세금을 깎아주자는 정당에 표를 던졌는지는 설명이 되지 않지만요.
그다음에는 사회과학자들이 나타나서, 이들은 사실 경제적 불안감이 아니라 ‘문화적 소외’에 대한 공포 때문에 트럼프에게 표를 주었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백인 크리스천 남성들(과 그들의 부인들)은 자신들의 문화, 정치, 경제적인 지배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다른 집단들의 등장을 위협으로 인식한다는 설명이었죠.
에둘러 설명하지만 이는 곧 이들이 인종차별주의자이자 성차별주의자인데, 트럼프가 자신들의 문화적 우위를 지켜줄 사람으로 보았다는 얘기가 됩니다. 트럼프의 지속적인 인종차별적 발언과 노동자 계층보다 부유층에 어필하는 정책은 이와 같은 결론을 뒷받침합니다. 그의 지지층은 경제적 불안감과 상관없이 계속해서 그를 응원하죠.
미국의 낙태 반대 운동은 이런 식의 정치적 가스라이팅 기법을 고안해 냈습니다. 지금까지도 높은 자리에 여성의 진출을 허용하지 않는, 명백히 여성 혐오적인 체제인 가톨릭교회는 낙태 반대의 오랜 전통을 자랑합니다. 생각보다 오랜 전통은 아닌 것이, 150년 전까지만 해도 임신 초기에는 낙태를 허용하는 입장이었다고 하죠.
반면 복음주의자들이 낙태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지대한 관심사였던 인종 분리라는 사안에서 여론이 뒤집히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이슈가 필요했던 것이죠. 당시 인종 문제와 함께 여성의 사회적 역할도 빠르게 변화했습니다. 경구 피임약의 등장으로 여성은 전에 없던 자유와 기회를 누리게 되었고, 여성도 드디어 임신과 상관없이 쾌락을 위한 성관계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임신을 유예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이후에 생겨난 임신을 중단할 수 있는 권리는 여성들이 더 이상 로맨스와 야망 사이에서 한 가지만을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로맨스에 있어서도 더 까다롭게 누구와 결혼할지, 또는 결혼을 할지 말지를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할 수 있게 되었죠.
이런 현상은 아버지를 가장으로 한 핵가족을 이상으로 미는 우파 기독교 프로젝트를 크게 훼손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낙태에 반대하는 우파의 주장에는 과거 ‘전통적인 가정을 지켜야 한다’와 같이 젠더면에서 보수적인 근거들이 포함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달라진 세상에서 이러한 주장은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빈틈을 메꾸기 위해 새롭게 등장한 단어가 바로 ‘생명’입니다. 아주 편리한 주장이었죠. 임신한 여성을 지우고, 태아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반대론자들은 이후 쭉 ‘생명을 지키는 것’이 ‘여성의 권리를 반대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주장해왔습니다.
물론 이들의 주장과 상관없이, 관계가 없을 수가 없죠. 낙태권을 주장하는 이들은 이른바 ‘프로 라이프’ 진영이 아이가 태어난 이후의 아이의 ‘삶’에는 관심이 없다는 점을 수십 년 간 지적해왔습니다. 낙태 반대론자들이 실제로 빈곤층 아동에 대한 지원이나, 빈곤층의 임산부들에 대한 의료 지원에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또한 가장 효율적인 낙태 방지법인 피임법 및 성교육에도 반대합니다. 이들은 여전히 국경에서 부모와 어린아이를 강제로 떼어내 감옥 같은 시설에 수용하는 정권을 지지합니다. ‘프로 라이프’에 들어가는 ‘라이프’라는 단어가 무색해지는 행태죠.
이번 설문조사는 낙태 반대론이 여성 혐오와 어떻게 엮여 있는지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입니다. ‘프로 라이프’ 응답자의 4분의 3 이상이 ‘여성들은 너무 쉽게 기분이 상한다’고 답했습니다. 70% 이상이 여성들은 별 뜻 없는 행동이나 말을 성차별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고 답했죠. 낙태권 찬성론자의 82%가 선출직에 여성이 더 많아지면 미국이 더 좋은 나라가 될 것이라고 답한 데 반해, 같은 문항에 동의한 반대론자는 34%에 그쳤습니다.
낙태 반대론은 ‘생명’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프로 라이프’ 진영은 낙태권이 여성의 자유 및 여권 신장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합니다. 여성이 언제 아이를 가질지, 또 아이를 가질지 말지에 대한 결정을 스스로 내릴 수 없다면, 그래서 성관계를 맺는 것이 곧 강제로 엄마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면, 여성은 스스로의 미래를 그려나갈 수 없습니다.
임신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은 빈곤에서, 가학적인 관계에서 탈출하기가 더욱 어렵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압니다. 아이들에게도 피해가 돌아갑니다. 여성의 생명권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해지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신체 및 재생산과 관계된 권리를 여성들로부터 박탈하는 것은 아주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낙태 반대론자들의 목표는 분명해 보입니다. 그들은 여성이 이 사회의 동등한 주체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많은 데이터가 쏟아져 나온 덕분에 트럼프 지지자들이 ‘경제적 불안감’ 때문에 움직였다는 주장은 이제 조금 잦아들기 시작했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주장을 하는 쪽을 조롱하기 위해 언급되는 경우가 많아졌죠. 낙태에 반대한다면서 ‘생명’을 외치는 사람들에게도 마땅한 조롱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원문: 뉴스페퍼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