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가 진부하다고 생각될 무렵 손쉽게 찾을 수 있는 대안으로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을 진행하는 게 유행이었습니다. 의류, 식음료, 리테일, 항공 등 B2C 산업 전방위적으로 컬래버레이션은 지난 몇 년간 마케팅과 콘텐츠 전략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H&M이 하이엔드 브랜드와 1년에 몇 차례 컬래버레이션 상품을 내놓는 등 대중적인 이미지의 브랜드가 하이엔드 감성을 받아들인다거나 카카오, 라인 등 캐릭터 상품이 다른 소비재와 결합하여 없던 이미지를 부여받는 것이 컬래버레이션 효과로 증명되었습니다. 특히 패션은 펜디와 휠라, 슈프림과 루이뷔통 등 젊고 키치한 아이덴티티로의 전환을 위해 많은 컬래버레이션이 이뤄졌습니다.
이렇게 컬래버레이션이 소비자의 높은 호응을 받는 것 같아 보이니 아예 주된 전략이 되어버린 브랜드도 볼 수 있습니다. 연간 컬래버레이션을 몇 개씩 하는가 하면, 전혀 연상할 수 없는 콘텐츠끼리 결합해서 신선하긴 한데 ‘그래서?’라는 생각이 드는 결합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 만난 어떤 분은 아예 디자인 전략을 구상하지 않고 어떻게 컬래버레이션을 잘할 것인지만 생각하는 디렉터도 있었습니다. 사실 충격이었죠.
하지만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컬래버레이션도 연속된 브랜드 아이덴티티 변화 전략 안에서 하지 않는 것이라면 일회성이 되고 소비자들에게도 피로하며 더 이상 이슈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죠. 단순히 새로운 것, 더 다양한 콘텐츠, 이번에 나온 영화와 결합하는 수준으로는 브랜딩은커녕 원래 구축한 브랜딩을 사라지게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컬래버레이션 사례로 많이 아는 H&M은 회사 설립 이후 주목할만한 수준의 재고액으로 힘든 시기를 보냅니다. 발주한 상품의 판매가 받쳐주지 않기에 재고는 부담으로 돌아오면서 글로벌 SPA 리더에 맞지 않는 실적을 보입니다. 당장 매장을 가면 알 수 있죠. 그동안 진행한 하이엔드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은 일회성 이슈만 되었을 뿐이지 브랜드 디자인 방향을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늘 장사진을 이루며 한정판을 사기 위해 기다린 고객들이 H&M에서 많은 수량으로 발주한 상품을 사기 위해 기다리는 일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좋은 것과 안 좋은 것을 명확히 구분하는 기준이 되었을 뿐이죠. 한두 번의 성공적인 컬래버레이션 이면에는 실패한 컬래버레이션이 있고 마케팅 비용과 막대한 재고 비용은 기업의 재무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컬래버레이션은 브랜딩 전략 안에서 움직여야 합니다
펜디와 휠라의 컬래버레이션이 호평받은 이유는 펜디의 방향성과 맞았기 때문입니다. 더 젊은 고객이 구매하는 브랜드로 회사 포트폴리오 안에서 타깃 고객을 이동할 필요를 느꼈고, 갑자기 상품 디자인을 젊게 바꾼다고 단기간에 타깃 고객에게 각인되지 않을 것이기에 먼저 이런 제안을 해서 이슈가 될 상품을 만들었습니다. 때마침 ‘로고 플레이’의 유행에 잘 맞는 브랜드를 찾은 셈이죠.
펜디는 젊은 고객이 매장을 방문하기 어려운 브랜드였지만 몇 년 전부터 시작된 더 젊은 상품으로의 변화는 컬래버레이션으로 정점을 찍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펜디 광고에 모델을 또 바꾸는 것보다 훨씬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펜디의 이후 디자인 변화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예측 가능합니다.
전략이 없는 컬래버레이션은 다양한 신선함을 찾습니다. 애니메이션과 섞어보기도 하고 회사 로고와 부딪혀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컬래버레이션하는 상품 외 더 많은 브랜드 상품 디자인에 어떤 변화를 주겠다는 전략이 없이는, 운이 좋아 성공한 이벤트일 뿐입니다. 컬래버레이션 콘텐츠는 방향성이며 타깃 고객에게 주는 시그널이기 때문이죠.
컬래버레이션에 너무 많은 의미와 노력을 들이는 것은 어쩌면 방향성을 잃어버린, 살아남기 위한 몸짓에 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 콘텐츠의 전략이 먼저 있고, 그 위에 컬래버레이션이 있는 것이니까요.
원문: Peter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