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회사에 다닐 줄 정말 몰랐다
이제는 많은 게 달라졌다. 잘릴 때까지 회사에 다녀야 하는 이유를 100가지는 댈 수 있다. 처자식, 어머니, 반려견 꼬미, 전세자금 대출, 카카오뱅크 대출, 일반 대출, 마이너스 통장, 보험 대출, 생활비, 교육비, 카드값, 각종 세금 등. 이렇게 나열하니 다 돈 때문이다. 정말 서글픈 인생. 여하튼 회사가 좋아서가 절대 아니라는 말이다(비밀). 현실이 고달파서지.
늘 뻐근한 다리를 들고 언제나 뻣뻣한 뒷목을 부여잡고 지하철에 오른다. 연일 계속되는 동남아 날씨 덕에 역까지 걸어가면 온몸의 땀구멍이 활짝 열린다. 괴로운 나날들.
넉넉하게 하루 3시간 정도 출퇴근 시간이 소요된다. 종점과는 거리가 있어 늘 사람은 많고 자리는 없다. 지하철에 오르면 자동으로 노약자석 위에 가방을 던지고 중간 출입문에 기댄다. 여름에는 성능 약한 에어컨 때문에 땀이 은근슬쩍 흐르기도 하고, 늦어서 뛰는 날에는 도착할 때까지 땀이 샘솟는다.
생면부지 사람과 땀에 젖은 몸이 딱 붙어 출근할 때면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지? 무슨 죄지?’라는 푸념도 빼놓지 않는다. 요즘 정말 소박한 소망이 있다. ‘앉아서만 출근해도 하루가 정말 행복할 텐데’다. 이렇게 소박한 사람이 되어 간다.
출근길 밝은 표정의 직장인을 만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바삐 움직이는 직장인의 모습이 활기차 보일 때도 있지만, 대부분 피곤함에 찌든 모습이다. 나도 다른 사람 눈에는 그리 보이겠지.
출근길에는 참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열심히 화장하는 직장인, 술 냄새를 자랑하는 사람, 하늘 향해 입 벌린 직장인, 늠름하게 코 고는 사람 등 정말 각양각색의 기인을 볼 수 있다. 사람 구경이 신기하고 재미있을 때도 있다. 하지만 힘들다는 생각에 주변을 신경 쓸 겨를이 없을 때가 더 많다. 특히 나처럼 출퇴근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들은 더더욱 심할 거다.
오늘은 누구나 손뼉 치며 공감할 수 있는 직장인 출근길의 비애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이유는 단 하나다. 나처럼 힘든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며 위로받고 싶으니까. 그리고 서울로 당장 이사 갈 수도 없으니까.
모두의 출근 시간, 모두의 비애
입사 후 8년 동안 통근버스를 이용해 출근 시간 만원 버스, 만원 지하철의 무시무시함을 잘 몰랐다. 이사 한 이후 2014년부터 통근 버스를 끊었다. 그때부터 BMW(Bus, Metro, Walking)를 이용했다. 언제나 꽉 들어찬 전철, 자리는 고사하고 제대로 서 있을 수만 있어도 땡큐다. 허리는 끊어질 거 같고, 다리는 굳어져 가는 것만 같다. 가뜩이나 아담한 키가 점점 더 줄어드는 기분에 기분이 상하기도 한다.
취업 포털 잡코리아와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이 전국 직장인 1,301명에게 출퇴근 시간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경기 지역 직장인이 134.2분(2시간 14분), 인천 100분(1시간 40분), 서울 95.8분(1시간 36분) 순이었다.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 직장인의 출퇴근 평균 소요 시간은 115분(1시간 55분). 나의 출퇴근 시간은 넉넉하게 평균을 웃돈다. 많이 서글프다.
지난해 국가교통 DB에서 발표한 통계자료를 보면 출퇴근 시간이 1시간인 수도권 통근자의 행복 상실의 가치는 월 94만 원으로 분석됐다. 출퇴근 시간 왕복 50분 이상일 경우 삶의 질이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퇴근 시간이 단축될수록 삶의 질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매해 발표된다. 하지만 여전히 수도권 직장인의 출퇴근 시간은 OECD국가의 평균 출퇴근 시간(28분)을 웃돌고 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라는 사실이 아주 조금 위안을 주기도 한다. 나는 왕복 세 시간이니까.
긴 시간 동안 한 자리에 서서 출근할 때는 관절이 끊어질 것 같다. 운동화를 신지도 못하는 현실. 하이힐은 더 힘들겠지만. 급정거가 많은 버스를 이용할 때는 온몸에 힘이 들어가 근육은 뭉치고 피곤함은 가중된다. 한여름 에어컨이 시원찮은 전철에서는 잘 익은 땀방울이 쉼 없이 온몸을 타고 여행을 한다. 주저앉고 싶을 때도 많다. 하지만 견뎌야 한다. 나는 대한민국의 직장인이고, 직장인은 대부분 이런 일상을 견뎌내고 사니까.
나약해지는 나에게 한마디 던진다.
너만 그런 거 아니야. 호들갑 떨지 마! 이렇게 살다 보면 어느새 월급이 나오잖아.
그래도 밀려드는 서글픔과 초라함을 감출 길은 없다.
이 나이에 전력 질주라니
통근 버스를 타기 위해, 혹은 전철이나 버스 시간을 맞추기 위해 아침부터 전력 질주하는 직장인이 많다. 또는 전철이 연착되거나 버스가 막혀 내리자마자 회사까지 전력 질주하기도 한다. 태풍이나 폭설로 도로에 발이 묶일 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발만 동동 구른다. 이럴 땐 정상 참작이 되기도 한다. 다행.
1분이라도 늦을까 봐 전력 질주를 하는 경우에는 온종일 다리가 후들후들하고 정신이 혼미하기까지 하다. 요즘은 전자 시스템(카드키)이나 지문으로 출퇴근을 체크하는 회사가 많다. 1분 지각하고 사유서를 쓰며 분노를 느껴본 적 있는 나 같은 사람은 칼 루이스처럼 달릴 수밖에 없다.
10여 년 전에는 이랬다.
XX 씨 나 좀 늦을 거 같은데, 내 컴퓨터 켜고 다이어리 좀 펼쳐놔.
요즘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선배의 말이 통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매우 놀랍다. 정말 회사도 팀장님도 몰랐을까. 이제 와서 그것이 알고 싶다.
지각도 지각이지만 상사보다 늦게 출근하면 눈치 보일 때가 있다. 상습 지각자들은 더욱 빨리 달릴 수밖에 없다. 8시 혹은 9시가 가까워지면 도심 속 건물 주변에서 전력 질주하는 육상부 출신 직장인이 많이 보이는 이유다.
오늘도 열심히 달린 직장인! 가끔은 5분만 일찍 나와서 느긋하게 걸어서 출근해 보자. 가끔은 보는 사람도 힘들다. 어렵다면 그냥 매일매일 열심히 달리자! 쉴 새 없이 달리다 보면 어느새 월급 결승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가뭄에 콩, 축복? 재앙?
장마철에 비를 쫄딱 맞고 전철에 올랐다. 내리기 15분 전쯤 자리가 나서 지친 몸을 그대로 던졌다. 포근함에 잠이 들었다 ‘화들짝!’ 깨어보니 내려야 할 역의 문이 열려있었다. 급하게 뛰어내리느라 선반에 올려놓은 가방을 외면했다. 못 찾았다. 미안해. 회식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출근할 때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자리가 나면 나도 모르게 ‘아싸’를 외친다. 물론 속으로.
앉자마자 꿀잠을 청하는 경우가 많은데, 너무 깊게 잠에 빠져든 나머지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친 경험, 가뭄에 콩 난 자리에서 떡실신이 되어 지각한 경험, 혹은 졸다 깨서 비몽사몽간 내려야 할 정거장보다 먼저 내린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거다. 아침에 앉아 있는 직장인 중 반은 잠을 청하는데, 세상모르고 꿀잠 자는 모습을 보면 ‘종점까지 가는 거 아니야?’라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기도 한다. 물론 오감보다 육감이 더 발달한 우리 직장인. 귀신같이 잘도 내린다.
여성 직장인은 자리에 앉아야 화장을 하기가 편할 텐데, 급한 나머지 서 있는 상태에서 열심히 화장할 때도 있다. 오늘 아침 콩나물시루 속에 서서 열심히 눈썹을 그리는 직딩 동지를 보니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전날 아무리 힘든 술과의 전투를 치렀어도 다음 날 힘든 티 내면 안 되는 우리는 직장인인걸. 그래도 내일모레면 월급날이잖아. 힘내요. 우리.
회사가 가까워서 도보로 출퇴근하거나 전철이나 버스를 고작 5분, 10분 타는 이들은 이 고통과 슬픔과 서러움을 모른다. 하루의 시작부터 전쟁을 치르는 내 동지들. 그나마 마냥 기분 좋은 퇴근 시간을 위안 삼아 하루를 버틴다. 오늘 아침도 콩나물시루에서 녹초가 된 혹은 칼 루이스 저리 가라 전력 질주한 우리 직딩, “오늘도 정말 매우 수고했어요!”
오늘은 일찍 집에 가서 7–9시간 꿀잠 강추. 성인 26–64세 수면 권장 시간이 7–9시간이란다. 그래야 치매 걸릴 확률이 낮아진다고 하니, 출근길의 피로, 상사 스트레스, 업무 스트레스, 회식의 고충을 잠으로 털어 봅시다. 밤에는 TV나 유튜브보다는 잠이 보약이니까.
원문: 이드id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