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물화 될 수밖에 없는 배틀그라운드
이른바 ‘배틀로얄’ 콘셉트의 게임은 2017년을 전후해 유행하기 시작했다. 하나의 필드에 불특정 다수의 유저가 마구 치고받으면서 최후의 승자를 가리는 게임으로, 우리 대한민국에선 〈배틀그라운드〉가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케이스다.
나는 온라인 FPS 게임을 좋아하진 않지만(개못하니까) 배그 출시 당시에는 한동안 재밌게 즐긴 기억이 있다. 총 잘 쏘는 것과 오래 생존하는 건 비슷하면서도 약간 궤가 다르기 때문이다. 누가 그랬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거라고.
개인적으로는 생존 구역 정중앙 쪽 나무에서 쥐 죽은 것처럼 엎드려 있다가, 예닐곱 명 남았을 즈음 ‘슬슬 나가도 괜찮겠지’ 하고 튀어 나갔다가 삽시간에 잡혀 죽는 ‘매미 메타’를 자주 즐겼다. 누군가는 벌레 같은 플레이라고 비난했지만, 실제로 벌레 콘셉트의 플레이였기 때문에 그다지 상처는 되지 않았다.
다만 배그 역시 유저 실력의 상향 평준화를 피할 수 없었다. 악착같이 살아남아 강해지는 건 고사하고, 어느 정도 강해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게 돼버렸다. 게임을 하면서 얻는 희열이나 기쁨보다 스트레스가 더 커졌다. 왜 같은 게임을 하는데 나는 초식동물 아니 매미 역할을 해야 한단 말인가. 인류의 패악질 덕분에 매미도 멸종해가는 추세라던데 나 또한 별다를 바 없었다. 그렇게 배그, 그리고 배틀로얄 게임은 내 삶에서 아스라이 멀어져 사라졌다.
내게도 탱크 한 대가 있었다면…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아무렴 사람은 너무 약하다. 총은 무슨, 실제론 큐티클만 좀 뜯어져도 ‘으아아악’ 하고 비명횡사 직전까지 가는 것이 사람이다. 그런 마당에 뚝배기 하나 들고 전장을 뛰어다닌다는 건 얼마나 미련한 짓인가? 배그를 플레이하면서 ‘제길 나한테 탱크 한 대만 있었어도’ 같은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연약한 인간의 몸 대신 강인한 탱크가 돼 살아남는 게임이 만들어진 것이다… 바로 〈월드오브탱크〉의 배틀로얄 모드다. 우리 나약한 플레이어들은 이제야 비로소 탱크를 타고 전장에 나설 수 있게 된 셈이다. 물론 다른 플레이어들도 다 탱크이긴 한데 그런 건 딱히 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탱크인 게 중요하지.
플레이어가 탱크라는 것 이외에, 여타 배틀로얄 게임과 엄청난 차이는 없다. 적을 죽이면 전리품을 얻을 수 있고, 항공보급에선 좋은 아이템이 나오고, 지형지물을 잘 이용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해야 한다. 다만 탱크라고 해서 ‘닥치고 돌격’ 해서 다 깔아뭉개버리는 플레이는 불가능하다. 말했다시피 다른 플레이어도 탱크니까. 제법 짱구를 굴리면서 운용해야 한다. 왜 멍청한 사람들을 위한 게임은 나오지 않는 걸까?
너도 나도 죽창이 아닌, 너도 나도 탱크로 공평하게 싸우자
눈에 띄는 차이는 경험치 획득과 전차 업그레이드 시스템이다. 단순히 더 좋은 아이템을 수집할수록, 더 좋은 위치에 떨어질수록 유리해지는 〈배틀그라운드〉의 경우 운이 나쁘면 뭘 해도 안 될 공산이 큰 반면, 〈월드오브탱크〉는 획득한 경험치를 바탕으로 업그레이드를 선택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그저 운이 나빠서’ 불리해질 가능성은 다소 낮을 수밖에 없다. 배틀로얄이라는 콘셉트 특성상 ‘운빨좆망겜’이라는 타이틀을 아예 벗어나는 일은 불가능하겠지만, 비교적 관점에서 조금 더 공평한 게임이 되긴 한다.
‘탐지’가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도 사뭇 다르다. 〈배틀그라운드〉는 넓은 시야와 동체 시력으로 타 플레이어를 먼저 포착해야 한다. 멀리 있는 적을 똑바로 보려면 눈살이 찌푸려질 수밖에 없고, 눈도 나빠진다. 안 그래도 못생겨 먹은 얼굴에 더러운 표정까지 패시브가 된다. 화면을 가까이 보려다가 젊은 나이에 거북목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청년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놈의 배그 때문에 오늘날 학부모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월드오브탱크〉는 적 전차가 50미터 안으로 들어오면 자동으로 뻘건 표시가 뜬다. 탐지 영역은 강화를 통해 확장시킬 수 있다. 적녹색맹인 경우를 빼면 빨간색은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컬러다. 어디 보이지도 않는 적한테 쥐도 새도 없이 죽은 다음, 데스캠으로 터무니없이 죽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양 주먹 부들부들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최후의 승자는 못 돼도, 누가 됐든 대개 맞다이 흉내라도 내다가 죽을 수 있다는 점이 좋다.
현대인들의 삶은 고단하다. 1년 내내, 온종일 결과로만 평가받으며 살아간다. 좋은 결과 이면의 되먹지 못한 과정은 외면되고, 아무리 과정이 정정당당했다한들 결과가 구리면 쿠사리를 먹는다. 심지어 게임에서까지 이런 경향이 있다. ‘결과 지상주의’는 이미 대한민국의 정서 가장 깊은 곳까지 뿌리를 내린 모양이다.
그러나 〈월드오브탱크〉의 배틀로얄 모드를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누구나 최후의 1인은 될 수 없을지언정 힘이 닿는 데까지 멋지게 싸우는 것만큼은 가능하다고……. 내 어머니와 담임 선생님은 입을 모아 말씀하셨다. 최고가 되는 것은 아무래도 좋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겸허히 결과를 받아들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나는 수능을 마치고 대학에 들어가서, 정확히 1년 반 만에 자퇴서를 제출했지만 후회는 전혀 하지 않는다. 부디 여러분도 단 15분으로 영화 〈퓨리〉의 브래드 피트가 된 기분을 느껴보시길.
※ 해당 기사는 월드오브탱크의 후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