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되면 내가 누구보다 잘할 자신은 있는데, 뭐랄까 나한테는 욕심내면 안 될 ‘탐욕’으로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네가 (도전)하면 당연한 거 같고, 내가 하면 그냥 욕심을 부리는 것 같은 그런 거.”
“무슨 소리야, 됐어. 당장 내일인데 그렇게 위축돼 있으면 어떡해. 어서 자신감 회복부터 해.”
수화기 너머 들리는 친구 J의 목소리가 깊은 땅으로 꺼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지 않아, 넌 충분히 차고도 넘쳐, 네가 잘해서 거기까지 해낸 거야’라고 했으면 좋으련만, 당장 다음 날 J가 치를 거사를 앞두고 마음이 급해진 나는 ‘그럴 시간이 어딨느냐’는 본론부터 이야기하고 말았다. 그 찰나의 순간에도 후회가 막심했지만, 실전을 대비하자는 말로 겨우 대화를 이어갔다.
드문드문 정적이 흘렀다. 얼어붙은 입을 떼 보려고 눈을 몇 번이나 깜빡였는지 모르겠다. 자신감이라고 쓰인, 언제 터질지도 모르는 폭탄을 주고받는 아슬아슬한 느낌의 대화가 이어졌다. 전화를 끊고 나니 밤공기가 제법 무거워졌다. 선풍기가 고개를 돌리며 공기를 휘젓는다. 침대에 누워 있던 나는 다시 눈을 깜빡였다.
잠자리에 들 요량이었지만, 주섬주섬 일어나 산발인 머리를 정리하고 주방으로 향했다. 냉장고 안을 살폈다. 꽤 오랫동안 냉장고 한편을 차지했던 시들해지기 직전의 체리를 꺼냈다. 선물 받은 지 꽤 된 것인데 과육이 맛있을 때를 놓쳐버렸다. 후회는 금물. 체리의 꼭지를 떼고 반으로 갈랐다. 씨가 선명하게 박혀있지만 도려내야 했다. 시뻘건 과즙이 줄줄 흐른다.
때를 놓쳐 미안해. 하지만 더 달달해지면 좋겠어.
손질한 체리를 냄비에 넣고, 그보다 적은 양의 설탕을 넣었다. 레몬즙을 넣고 국자로 휘휘 젓기 시작했다. 시꺼먼 야밤에, 이 더위에, 그것도 불 앞에서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하는 거지? 그렇다고 냄비에 담긴 것들을 분리하여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계속해서 냄비 안을 저었다.
J와의 인연은 단발머리 중학생 시절로 거슬러 오른다
한반도의 평화를 외치며 마이클 잭슨이 두 번째로 내한했던 해였고, 이 때문에 ‘알랴뷰, 코리아’라고 하는 것이 우리 반 힙스터의 아침 인사였다. 쉬는 시간마다 쥐뿔 흉내조차 못 내는 MJ의 문워크로 교실 뒤는 발 디딜 틈조차 없었으며, 그의 기자회견을 소재 삼아 상황극을 만드는 것이 우리에겐 중간고사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당시엔 보이스투맨도 인기도 상당했다. 우리 반에선 나와 J, 그리고 몇몇 친구가 속한(?) ‘걸스투우먼’이 단연 최고였다. 그 당시 J는 유독 라디오 듣기를 좋아했고 PC 통신에 푹 빠져있었다. 어쩌다 같은 학원까지 가게 된 우리는 수업보다 음악을 더 즐겨 들었다. J가 추천해준 음악을 들으면서 그 길로 우리는 취향이 비슷해졌다. 지금까지 이어 온 나의 취향은 그녀가 추천하는 음악과 책, 영화로부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교에 가서는 보기만 해도 술 냄새 나는 ‘술첩’을 썼고, 홍상수의 영화를 좋아했다.
넌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아. 나는 솔직히 도전을 즐기지 않잖아. 그래서 널 보면 늘 대단하다고 느껴.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우선순위를 정하기 어렵다는 말도 안 되는 투정을 부리는 내게 J는 늘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는 그 말에 우쭐했던 적도 있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 너도 한번 해 봐’ 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낸 적은 없었다. 네 문장이 어느 작가와 닮은 것 같다, 네 단락이 어느 단편 소설의 도입부 같다면서 늘 분에 넘치는 칭찬으로 비행기에 태워주던 J였다. 생각해보면 고맙게도 J의 그 말은 그간 나의 도전을 더욱 부추겼던 것 같다.
수화기 너머로 ‘내가 지금 바라는 게 탐욕’이라는 말이 들려오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20년을 함께 하면서 나는 J에게 용기를 준 적이 있기나 했나. 네가 내게 준 만큼, 아니 어쩌면 더 채워주어야 하는데 생각해보니 나는 너를 태운 비행기를 날린 적이 없구나. 따뜻한 위로가 먼저여야 하는데, 왜 나는 겁에 잔뜩 질린 그에게 다급함을 준 거지. 위로의 때를 놓쳤다 싶었다.
국자를 고쳐 잡아 반대로 저었다. 여전히 수많은 생각이 체리와 설탕 속에 뒤엉켜 둥둥 떠다녔다. 마침내 설탕이 녹았고 체리는 흐물텅해졌다. 물처럼 흐르던 빨간 국물이 어느새 제법 찐덕해졌다. 추억 여행에서 갓 벗어난 나는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맛있는 때를 놓쳐 저세상으로 갈 뻔(?)한 체리를 살려낸 것 같아 나 자신이 기특했고, 황량한 바다 한가운데에서 방향을 찾는 기적의 노질을 한 것 같아 안심됐기 때문이다. 그사이 제법 많다 싶던 체리의 양이 반으로 확 줄어버렸다. 그만큼 나의 후회와 미안함과 우리의 간절함이 농축되어 있겠지. J를 만나는 날까지 이틀 동안 더 숙성해줘!
J의 얼굴을 보자마자 수줍은 체리 콩포트를 내밀었다. 달달한 백 마디 위로를 이 한 병에 잔뜩 담았다고 으스댔다. J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아, 맞다. 그거 잼 아니야, 콩포트야! 그거 맛있게 먹으려면 집에 가는 길에 통식빵이랑 생크림을 사. 꼭 잘리지 않은 통식빵이어야 해. 그리고는 삼 센티 두께로 잘라서 달걀물 입히고 버터를 두른 팬에 적당히 구워. 아아, 아니다. 귀찮을 테니까 달걀물이고 뭐고 그냥 데워. 그리고 생크림을 바르고, 그 위에 콩포트를 끼얹어. 바르는 느낌 말고, 끼얹는다는 느낌으로. 세상을 다 가진 맛이 뭔 줄 알아? 바로 그거야!
애프터서비스인 나만의 특제 신신당부도 잊지 않았다.
더 달달하게, 때를 놓친 과일 활용법
- 먹을 시기를 놓친 과일이면 뭐든 가능하다.
- 과일과 씨를 분리·제거한다. 이즈음 해서 섭취 방식이나 과육 상태에 따라 콩포트로 갈지, 잼으로 갈지 결정해야 한다. 잼이라면 과일:설탕 비율을 1:1로, 콩포트라면 1:0.5(과일의 당도에 따라 이보다 덜 넣어도 ok)로 넣는다.
- 얕은 불에 서서히 졸인다. 잼이라면 으깨고 뭉개는 느낌으로 저어주고, 콩포트는 최대한 과육의 형태가 망가지지 않게 슬슬 저어준다.
- 이때 펙틴 성분의 레몬즙을 넣어주면 점성이 높아지고 선명한 색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 잼이라면 걸쭉해지고 단단해질 때까지, 콩포트는 설탕이 다 녹고 묽어진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그냥 끄고 싶을 때 꺼도 무방) 불을 꺼 준다.
- 나의 달달한 마음이 농축된 콩포트(혹은 잼 혹은 절임 등등)는 나눌수록 더 커지는 법.
- 반은 나를 위해, 반은 위로가 필요한 누군가를 위해 나누어 담는다.
- 끓이는 것이고 뭐고 다 됐고, 귀찮다면 물론 그냥 먹어도 된다. 아뿔싸 때를 놓쳐도 열매는 그 자체로 귀하고 맛있으니까 말이다.
- 불 앞에 서는 게 싫다면 그냥 설탕에 절여놓아도 괜찮다.
- 과육의 맛과 향이 살아있는 콩포트의 활용은 잼보다 더 다양하다.
- 요거트에 섞어 먹기도 하고, 탄산수에 타 마시면 이 뜨거운 여름, 마치 얼음대륙에 선 맛이랄까.
- 친구에게 신신당부한 대로 빵 위에 생크림을 바르고 끼얹는다(?)는 느낌으로 얹어 먹으면 기가 막힌다.
설탕이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1500–1600년대부터 잼을 만들었다고 하니 생각보다 역사가 오래된 저장 방식이다. 이보다 훨씬 앞선 700–800년대는 설탕을 대신해 꿀에 절이는 방식도 유행했다고 한다.
역사가 긴 만큼 최초 탄생 비화는 역시나 의견이 분분하지만 공통의 목적은 부패 방지와 장기 보관이라고 한다. 만드는 방법, 과일의 종류, 숙성 방식 등에 따라 콩포트, 청, 처트니, 마멀레이드 등 다양한 형태의 당과 과일의 컬래버레이션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참고로 과일잼 레시피북을 낸 의외의 인물이 있는데, 그는 다름 아닌 노스트라다무스. 과일이 잼이 된다는 걸 예언했을까. 그 정도로 예나 지금이나 오래도록 이 귀한 과일의 맛을 유지하고 보관하는 것이 꽤나 중요한 일이었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
때를 놓쳤다고 해서 모든 게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달달한 위로 한마디를 하지 못했다고 해서 내가 너를 위로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를 떠올리며 설탕과 과육 범벅을 젓는 시간은 더없이 소중하다. 때를 놓쳐도 더 오랫동안, 더 진하게, 그리고 찐덕하게 즐길 수 있다.
주변에 위로해주고 싶은 지인이 있다면, 잼이나 콩포트 선물을 적극 추천한다.
마치며
사실 이 글은 지금쯤 한창이어야 할(?) ‘끝물’ 과일 활용법에 대해 써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글을 쓰는 지금도 폭염으로 인한 과일·채솟값 폭등이라는 기사가 쏟아져 나옵니다. ‘열매’라는 단어가 유독 귀하게 느껴지기는 처음입니다. 귀하다 했지만, 생각보다 덜 했나 봅니다. 부족하지 않고 넉넉하게 쌓아두고 먹었다면 어쩌면 영영 귀한 줄 모르고 살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러다 올해도 갑작스럽게 ‘끝물’ 과일을 만나게 되겠지요. 끝물 과일의 맛과 상태가 좋지 않아도 외면하지 않는 것이, 올해 폭염으로 큰 피해를 본 농부님들의 아픔을 나누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더위와 씨름하는 농부님들께 무한한 감사를 전합니다. 내 친구 J에게도.
원문: 오가닉씨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