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중적으로 가장 큰 인기와 지지를 얻는 두 사람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백종원과 강형욱일 것이다. 이들은 특화된 재능과 능력, 또한 근면성실하며 올곧은 태도로 사람들에게 큰 호감을 얻는다. 흥미로운 점은 두 사람 모두 일종의 ‘훈육자’라는 점이다. 그들은 훈계하고, 혼을 내고, 올곧은 태도를 강조하며, 사람을 교육시킨다.
사실 이렇게 일방적인 훈육자와 같은 존재들이 대중적으로 폭발적인 호응을 얻는 일은 그리 흔치 않았다. 많은 이가 진심으로 그들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이런 현상은 젊은 세대들이 대부분의 기성세대를 ‘꼰대’라 지칭하며, 그들의 조언이나 훈계, 참견 등에 진절머리를 치는 것과 정확히 대조된다.
얼마 전부터는 기성세대의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장광설을 ‘라떼는 말이야’로 비꼬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과거 자신의 기준으로 현재의 세대를 재단하고, 평가하며, 규정하려는 말들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그런 와중에 기성세대이자, 훈계와 조언으로 무장한 두 인물이 커다란 호감을 얻는다는 건 아무래도 아이러니한 측면이 있다.
이는 어쩌면 지금의 시대가 어른들의 비합리적인 참견을 극도로 거절하면서도, 간절히 ‘진정한 어른’을 원한다는 걸 의미할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불확실한 시대 속에서, 자신을 이끌어주고, 교육시켜주고, 길을 제시해줄 누군가를 바란다. 그러나 그런 현명함과 실력, 인격을 갖춘 사람을 만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어딘가 문제가 있다. 능력이나 실력을 갖춘 이들은 공감 능력이나 인격이 부족하다. 그들은 자기 자랑과 허세, 오만에 사로잡혀 있다.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이 있지만, 그들은 나의 문제를 진정으로 통찰하지 못하며, 내게 길을 제시해줄 만큼의 힘이 없다.
그러나 TV 속에 존재하는 그 어느 인물들은 나의 그런 결핍을 정확하게 채워줄 것만 같다. 그들은 올바른 인격, 도덕적인 품격, 분야에서 독보적인 실력, 사람을 이끌어줄 수 있는 교육방식을 아는 완벽한 존재처럼 보인다.
물론 TV 속에서 완벽한 사람일지라도 실제로 만나면 실망할 경우 또한 적지 않다. 알고 보니 그는 일종의 수업료처럼 어마어마한 출연료나 광고료 등을 받고, 그에 따른 정도의 수고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교환관계가 성립하지 않는 나에게 현실적으로 그런 도움을 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들은 멀리 있기에 이상적이고, 나의 결핍을 완벽히 채워줄 것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우리 시대는 점점 더 불가능한 것을 바라고 이상화하는지도 모르겠다. 셀럽들은 인격에 아주 작은 흠만 있어도, 순식간에 추락하곤 한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당연히 ‘흠’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러한 흠으로 무시해도 좋을 만한 존재들이 된다.
세상에 나의 인생을 완벽하게 이끌어줄 만한 사람 같은 건 없지만, 누군가는 그러한 일을 해줄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그들은 컨설팅료이든, 상담료이든, 그 밖의 어떤 명목으로든 돈을 쓸어 담는다. 그만큼 이 시대가 불확실성, 불안, 결핍, 나아가 온갖 폭력으로 가득 차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타인의 모범이 될 만한 모습들이 TV 속에 비치고, 호응을 얻는 게 그 자체로 나쁜 일이라 볼 수는 없다. 나 또한 화제가 되는 사람들로부터 존경할 만한 점이나 배울만한 점이 있다고 늘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런 열광은 우리들이 지닌 결정적인 결핍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결핍은 결코 유명인 몇 명으로 채워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분명한 진실이다.
우리는 현명함의 결핍, 지도의 상실, 어른의 부재라는 시대 속에 산다. 이런 시대를 헤쳐나가기는 정말이지 쉽지 않다. 그럴수록 가까운 곳에서부터 어떤 마음들을 모아야 한다. 먼 이상은 우리를 구원하지 않는다. 언제나 우리의 손을 잡아주고, 한 걸음을 나아가게 하는 건 가까이에 있는 작은 현명함들일 것이다.
원문: 문화평론가 정지우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