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스포츠 팀이 있다. 90년대에 매우 잘 나가던 팀인데 연고지 운도 좋아 하필이면 가장 큰 도시를 홈으로 두기도 했으며, 스타일이 확실한 경기를 하면서 팬도 많았고 씀씀이도 넉넉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와 잘 나가던 팀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프런트는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팀을 시원하게 말아먹기 시작했다. 레전드 선수를 트레이드 하면서 받아온 선수들은 시원치 않았고, 유망주는 뽑는 족족 망했다. 빅마켓 팀이기에 어떻게든 팀을 살려보려고 거액을 쥐어주면서 선수들을 영입했지만, 영입하는 족족 리그 먹튀의 역사를 새로 쓰는데 그쳤다. 명장이라고 소문난 감독들을 데려왔지만 팀 스타일과 맞지 않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흑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하필이면 저 두 팀을 응원하는 팬들이 너무나도 많은데, 그 팬들의 열정은 다른 팀 팬들에게 극성 팬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다. 매일같이 욕하면서 보고, 한심한 팀 다시는 안 본다고 다짐을 해도 또 다음 경기가 다가오면 굳게 먹었던 마음은 녹아 내린다.
이쯤 되면 저 팀이 어느 팀을 말하는지 누구나 다 알 수 있을 거다. 그런데 말이죠… 그 팀이 하나 더 있다고 합니다.
LG 못지 않은 뉴욕닉스의 몰락
국내에서도 NBA의 인기가 좋았던 시절, 뉴욕 닉스 하면 떠오르는 것은 ‘끈끈함’과 ‘근성’이었다. 마이클 조던이 이끌던 시카고 불스에게 결국에는 무릎을 꿇는 역할을 담당했었지만, 끈적거리는 수비를 바탕으로 시합이 종료되는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고 물고 늘어져 하얗게 불태우는 정열이 함께 하던 팀이었다. 농구는 다른 종목에 비해 이변이 상대적으로 덜 나오는 종목이지만 뉴욕 닉스는 8번 시드로 파이널에 진출한 기적을 만들어냈을 정도로 정말 대단했던 팀이었다.
한국야구의 르네상스 시절이라 불리우기도 했던 90년대 초반, LG 트윈스 하면 ‘신바람야구’였다. 김재현, 서용빈, 유지현의 신인 3인방, 이상훈, 김용수 등의 스타들과 함께 전성기를 구가했다. 전성기가 지난 시점에서 전력이 떨어진 상태에서도 포스트시즌에서 기적을 만들어내며 한국시리즈에도 진출하기도 했다.
스콧 레이든 단장은 팀의 체질개선을 주장하면서 뉴욕의 심장이었던 패트릭 유잉을 트레이드 한다. 슬램덩크에서 채치수의 모델로 나온 그 패트릭 유잉이 맞다. 부상과 노쇠화로 인해 더 이상 전성기의 기량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패트릭 유잉은 닉스 그 자체나 다름 없는 선수였다.
그래. 프로스포츠는 비즈니스니까 트레이드는 할 수 있다 치자. 그러나 문제는 결과적으로 유잉을 보내고 받아 온 6명의 선수와 1라운드 픽 두 장으로 얻어낸 것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마이클 조던에게 매일같이 지는 모습이 안쓰러워 닉스 팬이 되었다는 30대 직장인 최 모씨는 유잉이 트레이드 되었을 때 받았던 충격은 지금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프런트의 이해할 수 없는 무브는 저게 시작이었다. 이미 전성기가 지난 선수를 데려오기 위해 1라운드 픽으로 지명한 신인(네네)와 팀의 주축 선수였던 마커스 캠비를 내어줬지만 그렇게 데려온 안토니오 맥다이스는 바로 부상으로 시즌아웃 되었다.
2003 시즌이 끝나고 LG는 이순철을 새 감독으로 선임했다. 그리고 나서 90년대 전성기를 이끌었던 유지현은 은퇴, 이상훈은 SK 와이번스로, 김재현은 고관절 부상 각서로 인해 분노해 SK 와이번스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당시 SK를 상대로 보상선수 지명에서도 SK의 유망주를 데려오는 게 아니라, 상대의 포지션 뎁스를 약화시키겠다는 이유로 안재만을 데려오는 등 납득하기 쉽지 않은 무브들이 이어졌다.
인터넷에서 유명한 위의 글을 작성한 주인공인 20대 LG 트윈스 팬 조 모씨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김재현이 팀과 우선협상 결렬된 소식을 듣고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설마 다른 팀으로 가겠어? 하는 마음에 계속 컴퓨터를 붙잡고 잠도 못 자고 노심초사 하는 상황에서 아침 6시 몇 분에 저 소식을 접했는데 어윤태, 유성민을 죽이러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뿐 아니었다. 용병이라고 뽑는 선수들은 매니 아이바(스프링캠프에서 공 19개 던지고 계약금만 먹고 튄 그 선수), 아마루이 텔레마코 등 용병 잔혹사의 역사를 새로 쓰는 선수들이었고 2006년, 마침내 8위를 기록하게 되고 이순철 감독과 함께 한 3년이 끝나게 되었다.
LG와 뉴욕의 막장 운영 대전
택도 없는 무브는 계속되었다. 스콧 레이든 단장을 해임하고 새로 임명된 아이재이아 토마스는 선수 시절에는 좋은 쪽으로 전설이었지만, 단장이 되어서는 안 좋은 쪽으로 전설이 되었다.(국내 농구 팬사이트에선 ‘아이재앙’이라고 부른다.) 뉴욕에서 태어난 덕에 뉴욕 닉스의 팬이 된 20대 직장인 이 모씨는 아이재이아 토마스에 대해 한 마디 해달라고 하니 답장으로 딱 한 글자를 보내줬다. ‘ㅗ’
이 분이 이루신 업적(?)은 너무나도 위대하고 끝이 없을 정도라 차마 모두 기술하기 힘들 정도다. 요약하자면 데려오는 선수마다 이해하기 힘든 영입을 했으며 미래의 드래프트 픽을 대거 넘겨주면서 팀의 미래를 없애버렸다. 명감독 래리 브라운 감독을 데려왔지만 단장-감독-선수들 사이에서 불화가 생기면서 래리 브라운 감독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팀을 떠났다. 아이재이아 토마스는 그 뒤를 이어 닉스의 감독이 되었지만 결과는 재앙이었다.
이순철의 시대가 끝나고 LG는 김재박을 감독으로 영입했고 FA 시장에서는 박명환을 지르는 등 새로운 팀을 만들려 시도했지만 결과는 모두가 아는 그 결과가 나왔다. 한국프로야구 역사에서 LG 트윈스보다 더 긴 시간 동안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데 실패한 팀은 없다.
2003년부터 2012년까지 LG 트윈스의 순위는 6668587667. 그 사이 LG 트윈스를 거쳐 간 감독은 다섯 명이나 된다. 95년부터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엘린이로 자라난 여대생 최 모씨는 90년대에는 ‘LG가 잘 하는 게 당연한 줄 알았다.’ 라고 한다. 그랬던 팀이 암흑기에 접어들자 ‘내가 한 잘못도 아닌데 좋아하는 팀이 거지같아서 매일 괄시당하고 웃음거리 되고 조롱 당할 때 내가 왜 개엘지 때문에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나?’ 라면서 LG팬을 그만 두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고.
두 팀의 깜짝 반전, 그리고… 아니, 역시…
스콧 레이든 – 아이재이아 토마스라는 역대급(?) 단장 덕에 현재도 없고 미래도 없는 팀이 되어버렸던 닉스는 도니 월시를 단장으로 임명하면서 반전을 이뤄냈다.
도니 월시는 도저히 처리가 불가능해 보였던 연봉 먹는 맷돌들을 처분하는데 성공했고 마침내 10-11시즌, 카멜로 앤써니, 아마레 스타더마이어, 천시 빌럽스를 영입하면서 10년 만에 5할 승률을 달성하는데 성공하고, 7년 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그 다음 시즌에는 린새니티 돌풍이 있었고, 그 다음 시즌에는 93~94시즌 이후 최초로 디비전 타이틀을 획득하면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2013년, 마침내 LG 트윈스는 비밀번호에서 탈출했다. 신발암야구가 아닌 신바람야구를 재현했는데 여름만 되면 DTD를 하던 팀이 오히려 7월에 7위에서 2위로 치고 올라왔으며, 마침내 8월 20일, 5016일 만에 1위에 오르는 감동이자 쪽팔림(…)을 선사했고 10월엔 16년 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결국, 뉴욕 닉스는 최근 들어 눈이 썩는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과거 닉스의 끈끈한 농구는 온데간데 없고 수비수들은 자동문이 되어 며칠 전에는 LA 레이커스(현재의 레이커스는 여러분이 아는 그 강팀 레이커스가 아니고 꼴지 경쟁을 하고 있다.)를 상대로 한 쿼터에 ‘51점’을 내주기도 하면서 팬들의 암을 유발하고 있다.
평행이론대로 흐른다면, LG 트윈스의 올 시즌 전망은 어둡다. 그러나 평행이론은 어디까지나 재미로 보는 것이지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내가 LG 트윈스의 팬은 아니지만, 적어도 아래 공약의 팬은 되기에, 두 팀의 평행이론은 여기까지만 지속되길 바란다.
편집: 리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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