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하는데…
최근 2주 사이에 하루에 최소 20번씩은 한 말입니다.
유독 그런 때가 있습니다. 우선순위와 경중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여러 가지 일들이 겹치는 때 말입니다. 제게는 5월이 그런 달이었습니다. 회사 업무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벌여놓은 일까지… 허덕거리며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회사에서는 원래 계획되어 있던 업무, 급하게 치고 들어오는 중요한 업무, 새롭게 시작하는 업무로 숨을 헐떡입니다. 어떤 날은 전화만 받다가 하루가 다 지난 것 같아 휴대폰에 남아있는 통화기록을 세어보니 40통 정도가 되더군요. 근무시간 8시간, 총 480분 중 40통이면 12분에 한 번꼴로 통화한 셈입니다. 유선전화와 이메일, 메신저로 진행한 업무까지 합하면 종일 누군가의 요청사항을 듣고, 대응하고, 동시에 누군가에게 요청하며 하루를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결론은 어디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A 업무를 하면, 급하게 해야 하지만 놓친 B 업무가 생각나고, B 업무를 위해 폴더를 여는 중에 C 업무와 관련한 전화를 받고, 그 일에 대응하다 보면 원래 하던 A 업무도 잊어버리고, 급하게 해야만 했던 B 업무는 여전히 하지 못한 채로 남아있게 됩니다. 외부 미팅이나 지방 출장이라도 있는 날이면 이런 상황은 더욱 심해집니다.
업무를 위해 꼭 해야만 하는 결재 서류를 만드는 일, 문서 보고자료, 찬찬히 고민해서 진행해야 하는 크고 작은 기획 업무들은 모두가 퇴근하고 난 이후의 시간으로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업무를 하면서도 “아 이거이거 해야 하는데”라고 말하면서도 몸은 저거저거를 하는 상황이 됩니다. 머리카락을 한 올 뽑아 허공에 날려 똑같은 나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수도 없이 듭니다.
회사 밖은 어떨까요? 아침 수영부터 시작해 독서 모임 2개, 주 1회 글쓰기, 영어 스터디, 기타 관심 분야 단기 강좌까지. 어쩌다 보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취미생활이 늘어나게 됩니다. 모임에 참여하는 시간을 내는 것뿐 아니라 모임을 위해 준비와 과제를 하는 시간까지 더하면 24시간이 모자라고, 덩달아 잠도 모자랍니다.
지난주만 해도 중요한 행사 준비 및 진행, 차주 행사 준비, 세종시 미팅 2번, 출근 전 독서 모임, 한 달에 한 번 있는 독서 모임 그리고 발제, 주말엔 관심 분야 강의 수강 2건까지… 게다가 남편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운전 연습 겸 파주도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주 1회 글쓰기를 하려고 이렇게 글을 씁니다. 글을 쓰고 난 이후에는 못다 한 일들을 하겠죠. 그리고 또다시 월요일이 올 것입니다.
바쁜 일상을 티 내려고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바빠서 정신이 없어”라고 이야기하면 지혜롭고 규모 있게 시간을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셈이 되기도 할 테니까요. 분명 동시에 더 많은 일을 잘 해내는 사람들이 있고, 저 또한 제게 주어진 일들을 만족스럽게 잘 해내고 싶기에 이렇게 글로 옮겨보며 대안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연구를 통해 우리는 직장과 가정에서의 삶의 만족도를 끌어올리는 유일한 방법은 행복과 의미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여러 활동에 참여하는 것임을 알게 됐다.
- 피터 F. 드러커, 『피터 드러커의 최고의 질문』
초등학교 과학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 봅시다.
그때 배웠던 ‘직렬연결’과 ‘병렬연결’을 떠올려봅니다.
직렬연결은 전구 여러 개를 한 줄로 연결하는 것을 말합니다. 크리스마스트리에 거는 줄 전구가 직렬연결의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구 하나에서 전류의 흐름이 막히면 나머지 전구에도 불이 켜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전체 에너지를 각 전구가 균등하게 나눠 가집니다.
이와는 다르게 여러 개의 전구를 두 개 이상으로 갈라 나란히 연결하는 것을 병렬연결이라고 합니다. 보통 집에서 방의 불을 켜거나 꺼도 거실의 불이 함께 켜지거나 꺼지지 않는 것이 그 예입니다. 그리고 병렬연결을 할 경우 전구의 밝기는 전구 한 개를 사용할 때와 비슷합니다.
먼저, 삶의 영역을 병렬로 연결해야 합니다.
삶이 직렬일 경우
- 각 영역에 걸리는 전압이 달라집니다. 여기에 또 다른 영역이 추가되면 각 영역에 걸리는 전압이 낮아집니다.
- 모든 영역에 일정한 전류가 흐르기 때문에 각 영역에 ‘일정’하고 ‘적당한’ 전류를 흐르게 할 수 없습니다.
- 직렬로 연결할 경우 중간에 하나의 영역이라도 연결이 끊어지면 다른 영역들도 힘을 잃게 됩니다.
삶을 병렬로 연결한다면
- 각 영역에 걸리는 전압이 일정합니다.
- 각 영역에 저항값을 조정해서 ‘일정’하고 ‘적당한’ 전류를 흐르게 할 수 있습니다.
- 하나의 영역의 연결을 끊어도 다른 영역의 일을 진행하는 데에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 각각의 영역에 스위치를 연결해서 사용 가능합니다.
- 많은 영역의 일을 연결할수록 많은 전류가 흐르고, 자칫 최대 허용 전류 이상의 전류가 흐를 가능성이 있습니다.
삶을 병렬로 연결했다면, 각각의 삶의 영역에 스위치를 달아봅시다. 그 스위치는 작은 영역 단위로 달아두어도 좋습니다. 일과 생활의 영역뿐 아니라, 일의 영역 중에서도 프로젝트 단위로 달아놓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뇌는 한 번에 하나의 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우리 앞에 산적한 여러 영역의 일에 모두 스위치를 켜놓으면 최대 허용 전류 이상의 전류가 흘러 케이블이 다 타버리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다음은 스타트업 전문 미디어인 벤처스퀘어에 게재되었던 “멀티태스킹을 하지 말아야 할 12가지 이유” 중 몇 가지를 편집한 내용입니다. 여기에 스위치를 적절히 켜고 꺼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멀티태스킹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
- 사람의 뇌는 한 가지 작업을 할 때 또 다른 작업을 하기 위한 공간이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여러 작업을 전환하는 과정에서 생산성도 떨어진다.
- 멀티태스킹은 결과적으로 작업 속도를 더디게 한다.
- 몇 가지 작업을 전환하면서 일을 하다 보면 생산성이 40% 떨어지고 실수 확률도 높아진다.
- 뇌가 항상 긴장 상태에 빠져 스트레스에 쉽게 쌓인다.
- 주의력이 떨어진다.
- 단기 기억 능력이 떨어진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작업 중이다가 이전 작업으로 돌아가면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생각해내는 게 어려워진다.
- 대인관계가 손상된다.
- OHIO를 할 수 없다. OHIO(Only Handle It Once)란 ‘일단 손에 들어온 일은 즉시 처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나씩 작업을 끝내는 OHIO가 한 번에 2개 이상 작업하는 멀티태스킹보다 결과적으로 작업 시간을 줄인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작업 속도도 느려지고, 크고 작은 실수도 잦아집니다. 스트레스는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작업 중이다가 이전 작업으로 돌아가면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생각해내는 것이 어려워진다는 부분은 격하게 공감합니다.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떠오르는 to do에 대한 생각이 불쑥불쑥 떠올라 퇴근 후 남편과 하는 대화에도 집중하기가 어렵습니다. 늘 산만해 보이는 제 모습을 남편도 아쉬워합니다. 자려고 누우면 아직 처리하지 못한 온갖 일이 떠오릅니다. 몸은 피곤한데 쉽게 잠들지 못합니다. 함께 일하는 동료는 머리를 감으려 고개를 숙이면 그렇게 해야 할 일이 떠오른다고 합니다.
- “○○해야 하는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것도,
- 업무 생각으로 잠 들지 못하는 것도,
- 남편과 대화하는 도중에도 내가 해야 할 일 생각들이 불쑥불쑥 떠오르는 것도,
- 지금 이 순간에도 손가락은 자판을 두드리지만 내일 아침 9시 전까지 해야 하는 일을 떠올리는 것도,
스위치를 제대로 켜고 끄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일할 때는 생활 스위치는 끄고 일 스위치를 켜고, 퇴근할 때는 일 스위치는 완전히 끄고. 이렇게 스위치를 제대로 켜고 끄는 방법이 있을까요?
1. 어떤 스위치를 켤지 ‘선택’하세요.
어떤 스위치를 켜고 어떤 스위치를 끌 것인지는 결국 ‘선택’의 문제입니다. 눈앞에 산적한 일들을 처리하는 것을 넘어서서 내가 무슨 일을 하기로 ‘선택’할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현재 내가 켜야 할 스위치와 꺼야 할 스위치를 냉정하게 구분해 봅시다. A 스위치를 켜기로 선택했다면 다른 스위치는 철저히 끌 수 있어야 합니다. 불쑥불쑥 떠오르는 생각을 냉정하게 외면하세요. 의지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2. 상황을 통제해보세요.
2주에 한 번씩 출근 전에 하는 독서 모임이 있습니다. ‘비행기 모드 광화문’이라는 독서 모임인데, 외부와의 모든 것이 단절된 비행기 안에서 경험할 수 있는 비행기 모드의 비활성화, 차단, 단절 속 자유로움을 일상 속에서도 느껴보고자 하는 취지에서 진행하는 모임입니다. 2주에 한 번씩 약 10명의 인원이 아침 7시에 일정한 장소 모여 책을 읽고 각자의 일터로 출근합니다.
그런데 이번 주 모임 날에는 제가 PM으로 진행하는 중요한 행사 일정이 잡혀 있었습니다. 행사 준비로 전날엔 자정까지 일하고 퇴근했죠. 여러 일을 챙겨야 하는 긴장감과 함께 머릿속이 복잡했습니다. 이 상태로 독서 모임에 가서 책을 잘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제가 모임 운영자가 아니었다면 참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 비행기 모드로 책을 읽는 상황 속에 나를 던졌고, 책을 읽는 한 시간이 분주했던 일상에 잠시 제동을 걸어주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일할 때는 1시간이 눈 깜짝할 새 지나갔는데 책을 읽는 출근 전 1시간이 생각보다 길고 풍성하게 다가오더군요.
3. 한 번에 켜놓는 스위치의 수를 정해놓으세요.
여러 일이 동시에 진행되고, 마음이 급할 때는 동시에 여러 개의 스위치를 켜놓는 게 불가피합니다. 다만 내가 허용할 수 있는 범위까지 한 번에 켜놓을 스위치의 수를 정해놓는 것도 방법입니다. 한 개의 스위치를 켤 때는 반드시 다른 한 개의 스위치를 끄는 습관도 만들어보세요.
4. 끄는 것에 더욱 신경 쓰세요.
스위치를 켜는 것보다 끄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는 욕심에 스위치를 켜기 쉽습니다. 그러나 내 선택에 의해, 혹은 내가 통제한 상황으로 인해 여력이 부족해서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생각보다 과감하게 스위치를 꺼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주말에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취미활동을 하고자 합니다. 해야 할 일도 많지만 주말에만 할 수 있는 이 취미활동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내 몸과 마음은 이미 취미활동을 하러 가지만, 두고 온 해야 할 일이 눈에 밟힙니다. 두고 온 일에 스위치를 켜놓으면 어차피 하지 못할 해야 할 일 때문에 제대로 즐기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그 일을 지금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죠. 내 선택을 받지 못한 일은 과감하게 스위치를 끄세요.
5. 계속 켜지 않는 스위치를 점검하세요.
오랜 시간 동안 손이 가지 않는 스위치가 있다면 전구를 빼버리는 것도 방법입니다. 어찌 되었든 에너지와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우선순위에 계속 밀리거나 현재 내가 켜야 할 전구 수가 너무 많다고 판단될 때는 과감하게 없애버리는 태도도 필요합니다.
삶의 스위치가 잘 작동할 수 있도록
나사를 조이고, 기름칠해봅니다. 일과 생활의 스위치를 잘 켜고 끄면서 워라밸 잡으시길 응원합니다.
원문: 낭만직딩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