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좋다는 사람, 일이 싫다는 사람 양쪽 다 많다. 이해가 된다. 일은 꿈이 있으면 행복해진다는 의견도 많다. 그것도 맞는 얘기다.
어느 젊은 식당 주인/프랜차이즈업자를 만난 적이 있다. 직원들이 행복하게 일하는 데 집중하지만, 직원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것은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했다. 더 나은 삶을 원한다면 다 내보내 준다고 했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사람을 최우선으로 원했고, 그것만 가지고 하루하루를 부지런히 살아가면 된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 얘기가 나름 충격이고 반전이었다.
인간으로서의 목적성이나 꿈이나 무엇도 필요 없다. 그저 하루의 생존에 진실한 사람이면 된다.
사회에 떠도는 이야기들과는 너무 묵직하게 반대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런 순간이, 그런 사람이 너무나 많았다. 미래가 있건 없건, 보상이 적건 많건, 그저 이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행복을 누리는 것 말이다. 어릴 적 할아버지들이 하실 법한 말씀이 아닌가. 그런데 무언가 잊은 듯이, 세상의 감춰진 면을 깨달은 듯 오랫동안 놀랐다.
이 사회가 일을 비하하고, 일을 피하고 싶은 것으로 만들고, 빨리 끝내고 싶은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은 아닐까. 물론 때로는 일이 재밌는 구간도 있고, 때로는 일이 지겹기만 한순간도 있을 것이다. 나이에 따라 위치에 따라 업무에 따라서도 순간순간 변할 것이다.
하지만 1년 내내 소작농을 지어야만 하는 사람을 상상할 때 우리는 대체로 1년 내내 땡볕에서 고통에 찬 육체노동에 허덕이는 장면을 상상하고 만다. 회사를 다니는 것도 빨리 주말이 오기를 기다리는 지옥도 같은 것으로 인식한다. 그렇지 않은 회사를 만들기 위해, 더 큰 꿈을 꾼다거나 더 진취적인 문화를 만들기 위해 기를 쓴다.
그런데 애초에 왜 그렇게만 바라봐야 했던 것일까. 나조차도 대다수의 일이 한없는 고통의 연속이라는 세계관을 가지고, 거기서 벗어나기 위한 더 큰 모험과 도전을 쫓기듯 해온 것 같다. 너무나 어두운 렌즈로 세상을 바라봤던 것은 아닐까. 삶이 근본적으로 고통이라는 관점이었던 걸까. ‘내 일을 사랑해’라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혜택이자 기적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고 노력해왔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더럽고 험난한 일이라도 휘파람을 불며 일하는 사람이 더 많다. 육체노동이 더욱 그렇다. 나도 식당 일을 조금 했는데 한여름 땀에 젖어 쓰레기봉투에 쓰레기를 조금이라도 더 구겨 넣는다고 씨름을 하고 음식물 쓰레기들을 정리하는 순간에도 때론 휘파람이 나왔고 즐겁기도 했다. 최저임금에도 동료들과 함께 더 일찍 출근하고 더 늦게 퇴근하고, 휴일에도 식당에 나왔다.
딱히 돈이 모이는 것도 아니고, 배우는 게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 자리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것 자체로도 영문을 모른 채 즐거운 하루가 가기도 했다. 몸도 지치고 마음도 공허했는지 모르지만, 무언가가 삶의 템포를 만들어주었고 그것은 고시원에서 뒹구는 것보다 훨씬 즐거운 일이었다.
피부병이 생기거나 구두가 안 맞아 발톱이 다 들리기도 했고 하루가 끝나갈 때면 다리가 후들거리곤 했다. 군대에서의 훈련이 그렇게 혹독하게 느껴지지 않은 것도 ‘그 전에 하던 일이 고되어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식당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그 템포에 중독되어서 사무직을 버티지 못하고 다시 돌아온다. 월급이 적어도, 몸이 고되어도 육체노동을 더 좋아한다.
물론 모든 육체노동이 그런 것은 아니다. 특정한 고됨이 일상화되면서 위로가 되는 일자리들이 존재한다. 최근에 격하게 공감한 말이 있는데, 일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비전도 열정도 무엇도 아니라는 것이다.
-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지
- 스스로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 그 일이 일종의 임팩트를 일으킬 수 있는지
무슨 일을 시작했든 위의 세 가지를 느끼며 살 수 있다면, 즉 자신이 제법 잘하는 일에서 적당한 권한을 가진다면 일은 재밌어질 수 있다. 평생 쓰레기를 줍는 사람도 스스로 창의적으로 통제력을 가지고 쓰레기를 치우며, 그것이 미치는 임팩트를 느끼며 살 수 있다면 어떤 직업만큼이나 경쾌하고 행복하게 살아간다. 잘 몰라서 하는 말이라고? 오히려 그런 분들을 수없이 뵈어오면서도 지나치게 그분들의 삶을 비관했던 것이 아닐까.
평생 배를 몰고, 평생 장인으로 살고, 평생 운전을 하고, 평생 작은 가게를 하면서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을 늘 봐왔다. 대단한 무언가를 꿈꾸거나 추구하지 않아도 좋다. 자신의 운명을 만나지 않아도 성장하지 않아도 좋다. 자신이 잘하는 일을 찾아가며 그 안에서 템포를 느껴가면 되는 것 아닌가 한다. 칼 뉴포트(Cal Newport)의 책 『그래서 그들은 당신을 무시할 수 없다: 왜 당신이 사랑하는 일을 찾는 데 기술이 열정을 능가하는가(So good they can’t ignore you: Why skills trump passion in the quest for work you love)』 내용이다.
물론 재테크를 전파하는 입장에서 이것만으로 자족하라고 말하기엔 무언가가 찔린다. 더 나은 삶을 꿈꾸는 것도 분명 필요하지… 필요하지만, 생각보다 행복이 멀리 있지 않다는 말도 새삼 자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