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리의 눈덩이 효과, 빚의 눈더미 효과
재테크에 관심있는 분들이라면 ‘복리효과’가 얼마나 무시무시한지를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불과 1%에 못미치는 수익률 차이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하염없이 커지게 되죠. 그래서 오늘날 많은 투자자들이 워렌 버핏이 복리효과를 좀더 세련되게 표현한 “눈덩이효과”를 누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장기적으로 배당을 지급하는 우량 블루칩이나 인컴펀드에 투자하여 총수익(주가 상승률+배당금)의 증가를 만끽하거나, ROE나 기업 실적이 꾸준히 증가하는 기업에 투자하여 높은 투자수익을 올릴 수 있는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해 신나게 눈덩이를 굴리는 일은 상상만해도 즐겁습니다.
하지만, 이런 눈덩이를 굴리면서 즐길 수 있는 기회는 그리 흔치 않습니다. 오히려 눈으로 뒤덮인 산을 오르고 있는데 불행히도 산사태가 일어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는 상황처럼, 주식이나 펀드 수익률 악화로 인해 밤에 제대로 잠자리에 들지 못할 때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20대초반 남성들에게 있어서 군입대 영장만큼이나 끔찍한 것은 없는 것처럼, 투자자들에게 있어서 투자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찍혀있는 계좌만큼 악몽인 것은 없지 않을까요? 물론 수익률이 악화된 원인에는 거시경제와 관련된 시장위험이나 개별 기업 고유의 위험 이 둘 중 하나가 가장 큰 원인일 수도 있겠지만, 그에 못지 않게 수익률을 갉아먹는 요소가 하나 더 있습니다.
“투자자들은 복리 수익의 마술뿐만 아니라, 복리 비용의 마술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인덱스 펀드의 창시자이자 뱅가드 그룹의 회장직을 역임했던 존 보글이 했던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복리 비용이 그 주범입니다. 마치 수익이 복리를 만나게 되면 ‘돈 좀 벌고 있구나’ 라는 기쁨과 함께 저녁에 치킨을 시켜먹는 회수가 기존의 주당 3회에서 5회로 늘어나게 되듯이, 비용이 복리를 만나게 되면 치킨을 시켜먹는 회수가 주당 3회에서 1회로 감소하게 되는 불상사(?)가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죠.
게다가 매매 비용이 증가하면 증가할수록 투자 수익률은 더욱 더 감소하곤 합니다. 물론 직접적으로 투자를 하는 경우, 자유의지를 이겨내긴 힘들기야 하겠지만 스스로 억제력을 발휘하여 과도한 매매를 자제함으로써 거래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펀드의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펀드매니저라는 ‘대리인’을 통해 간접 투자를 하는 것인데, 직접투자만큼이나 매매횟수를 통제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가령 올 1월 금융투자협회에서 나온 보고서에 의하면, 매매회전율이 높을수록 수익률은 평균 이하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관련기사: 매매회전율 900% 펀드..수익률은 평균 이하>
그렇다면 펀드 투자자들은 어떻게 해야 ”펀드의 잦은 매매회전율-> 거래 비용 증가-> 수익률 악화”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요? 오늘 소개하는 이코노미스트의 기사에서는 과도한 매매가 발생하는 원인을 파헤치고 그 실상을 분석하며 최종적으로 이를 극복할 해법을 제시합니다.
무엇보다 후반부에 제시하는 그 해법이 사뭇 참신합니다. 다소 생소한 ‘포지션 조정 회전율’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는데, 간단히 말해 동일한 섹터 내 비슷한 규모의 펀드 회전율과 상대비교하는 방식이라고 보시면 될듯합니다. 현재 이를 명시해주는 업체들이 없어 약간 복잡한 절차를 손수 거쳐서 계산해야 하겠지만, 단순히 가입하려는 펀드의 매매회전율만 보고 판단하는 것보다 좀 더 효과적이고 주도면밀한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래는 이코노미스트 기사의 번역본입니다.
뭔가 하려고 들지 말고, 그냥 가만히 있길.
펀드매니저들은 자주 거래하고 있다. 일반 투자자들은 이를 배우지 않아도 된다.
과잉행동이라고 하자, 가만히 있지 못하도록 만드는 유혹이라고 부르자. 기업의 CEO들은 단지 자신들이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다른 기업들을 인수하곤 한다. 이와 비슷하게,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있는 펀드매니저들은 매매를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이렇게 매매를 하는 것 빼고는 회사에 출근할 다른 이유가 없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매매들은 불가피하게 비용을 발생시킨다. 이 비용은 총 보수비용(=운용보수, 판매보수, 수탁보수, 사무보수 등 펀드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금융회사에 투자자가 지불하는 모든 비용을 합한 것) 비율의 일부로서 뮤추얼 펀드 매니저들이 가져가는 수수료를 말하는 게 아니다. 이른바 숨겨진 비용을 말하는 것인데, 가령 어떤 대형 펀드가 소형주를 매도할 때 매도물량이 매수물량보다 많아지므로 주가는 상당히 하락할 것이다.
최근 파이낸셜 애널리스트 저널(FAJ)에서 나온 논문(이하 FAJ논문)에서는 이와 같은 숨겨진 비용이 평균적으로 펀드 계약서에서 명시하는 운용보수 및 판매보수보다 높으며, 수익률에도 꽤나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해당 논문을 작성한 세 명의 교수들은 미국에서 1995년부터 2006년 사이에 존재했던 1,758개 주식형 뮤추얼 펀드들의 성과를 조사했다. 이들은 펀드 내 포트폴리오의 보유기간 변화를 살펴본 뒤, 거기에 편입된 주식들의 매수-매도 호가 스프레드를 확인하였으며, 펀드들의 거래가 주가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하여 거래비용을 추정했다.
이렇게 포트폴리오의 회전율 통계에만 의존하여 거래비용을 추정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소형주들은 다국적 기업 같은 대형주들보다 유동성이 적기 때문에, 중소형주 섹터가 거래비용(숨겨진 비용)이 훨씬 크다. 해당 논문에서는 중소형주과 대형주 펀드 사이의 총보수비용차이가 0.10%에 불과할 뿐이라고 밝혔다(전자는 1.39%, 후자는 1.07%). 그런데 주가에 미치는 영향까지 감안하면, 누적 거래비용의 차이는 연간 2% 이상으로 확대됨으로써 결과적으로 훨씬 더 큰 차이가 났다(3.17% VS 0.84%)
높은 거래비용이 펀드매니저들의 예리하고 빈틈없는 매매 의사 결정으로 인해 발생된 것이라면 그리 큰 문젯거리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말하는 것들은 그런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다. 이 교수들이 추정해낸 거래 비용과 해당 펀드들의 수익률을 비교해봤을 때, 그 결과 거래 비용이 가장 높은 펀드가 수익률이 제일 낮았다. 거래비용 상위 20%와 하위 20% 사이의 수익률 격차는 연간 1.78%가 나왔다.
과도한 매매가 수익률에 타격을 입힌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펀드 매니저들은 매매를 자제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보다 액티브하게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1950년 뮤추얼 펀드의 평균 회전율은 15%였는데 반해, 2011년에는 약 100% 였다. 이와 대조적으로 다른 학계의 연구를 살펴보니, 개인투자자들이 액티브 펀드 매니저들의 잦은 매매에서 발생한 결과를 반면교사 삼아 투자에 반영하고 있는 듯 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가 있었다.
이 연구에서는 2004년부터 2012년까지 약 1,160만 명의 인도 투자자들이 기록한 투자성과를 조사했다. 조사결과, 주식계좌를 오랫동안 가지고 있는 투자자들, 다시 말해 가장 경험 많은 투자자들이 꾸준히 자신들의 투자 성과를 개선했다는 점을 발견했다.
일례로, 그들은 “가치주”를 보유하길 원했으며, “수익이 난 종목은 팔고, 손실이 난 종목은 그대로 가져가자”식의 투자는 꺼려했다. 또한 경험 많은 투자자들일수록 빈번히 매매할 가능성이 더 적었다. 적극적이고 활발한 매매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막중한 투자 손실을 입었던 개인 투자자들이 이를 교훈 삼아 자신들의 투자방식을 수정하여 매매횟수를 줄인 듯하다.
그렇다면 왜 전문 펀드 매니저들은 자신들의 나쁜 습관을 고집하는 것일까? 한가지 이유는 부진한 성과를 내는 펀드매니저들이 해고를 당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후에 새로 들어온 매니저가 기존의 펀드 포트폴리오를 자신의 취향대로 재조정하다 보니, 거래 비용이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부진한 운용실적이 높은 회전율을 일으킬 공산이 있다.
두 번째 이유는 대부분 개인 투자자들이 주식투자를 취미로서 하고 있는 반면에, 전문가들에게 있어서 주식투자란 직업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자신들의 투자 능력에 더욱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통제의 착각(=적극적으로 운용하면, 투자성과가 더욱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인해 고통을 받을 수도 있다.
세 번째 해명은 단순히 펀드매니저들이 펀드를 신중히 관리할 이유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거래에서 나오는 총 비용이 외부적으로는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객들은 펀드매니저들의 과도한 매매로 인해 부진한 성과가 초래됐다는 사실을 펀드에 가입하고 나서야 깨달을 것이다. “아뿔싸!” 하기엔 뒤늦은 깨달음인 셈이다.
앞서 언급한 FAJ의 논문 저자들이 이야기한 거래비용과 관련된 정보의 부족을 일반투자자들이 극복하는 방법이 하나 있는데, “포지션 조정 회전율”을 계산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1) 자신이 가입하고자 하는 펀드의 평균잔고를 파악한 뒤, 대형주/중소형주와 같은 각 섹터 내 펀드들의 평균 잔고와 비교한 뒤에 (2) 섹터 내에서 평균 잔고 규모가 비슷한 펀드들끼리의 포트폴리오 회전율을 비교하면 된다.
아니나 다를까. 상대적으로 큰 포지션을 가지고 있어 주가를 밀어 올리거나 끌어내릴 위력이 막강하고, 동시에 빈번한 매매를 하는 펀드들 일수록 부진한 성과를 내는 경향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금융 자문가에서 프라이빗 뱅커에 이르기까지 개인 투자자들과 상담하는 전문 금융컨설턴트들은 “포지션 조정 회전율”을 주시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규제당국들은 이런 계산법이 더욱 더 널리 보급될 수 있는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원문: Got to be r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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