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업체에서 조건들을 간단히 얘기해주긴 했는데, 전부 다 설명해 주진 않았어요. 더 낮은 금리에 빌렸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더 올라갔죠”
“금리가 올라가는지 모른다고요?”
“네”
“빚이 점점 늘고 있다는 사실은 알았나요?”
“월 납입금이 올라가고 있다는 것만 알았어요.”
─마조리 켈리, 『그들은 왜 회사의 주인이 되었나』, 제현주 옮김.
무모하게 돈을 빌려준 은행
이 책의 저자가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이전에 모기지 대출을 받았다가 끝내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14년 동안 살았던 집을 압류당하게 된 마이클─헬렌 부부와 나눈 대화 내용의 일부입니다. 대화 내용을 보면 자기가 대출받은 걸 감당하지 못해 집을 압류당한 셈이니 실질적인 책임은 그들 부부에게 있는 것이지, 사회구조나 금융회사의 책임은 아닌 것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부가 부동산투기 목적으로 담보대출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저 가족들과 한 집에서 오래오래 머물며 살려는 목적으로 받았다는 사실과 5년 동안 모기지를 다섯 번이나 갈아탔다는 내막이 있었다면 이야기는 좀 달라지지 않을까요?
위의 대화에서 보듯 이들 부부는 금융 쪽에 관련된 지식이 전무했던 것도 문제이긴 합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은 문제는 이들이 찾아갔던 대출업체나 은행들에서도 대출과 관련해서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이 책의 저자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던집니다.
“어떻게 이들에게 제대로 조언한 은행이 하나도 없었단 말인가? 이들이 무모하게 돈을 빌렸던 게 분명하다면, 은행은 무모하게 돈을 빌려줬던 것이다.”
금융이해력의 증진이 필요하다
서브프라임발 금융위기가 터져서 전 세계를 강타한 지 8년이 지났습니다. 위기의 원인은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나열할 수 있습니다. 저금리 기조 장기화, 과다부채, 글로벌 무역 불균형, 월가의 탐욕, 정부규제 완화, 비이성적인 과열 등등… 어찌 보면 근본적인 원인은 80년대 시작했던 신자유주의 하나로 귀결될 수 있습니다.
위기의 원인을 하나 더 추가하자면 사람들이 제대로 알지 못한 채(혹은 이해하지 못한 채) 모기지 대출을 받았다는 것도 해당될 듯합니다. 물론 선의의 피해자와 탐욕에 이끌려 위기를 자초한 피해자(?)들을 구분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만약 티저 금리가 무엇인지, 그리고 대출 약관에 어떠한 내용이 담겨있는지 자세히 알았었더라면, 무분별한 모기지 대출이 만연해지거나 비합리적인 수준까지 집값이 상승할 가능성은 작지 않았을까요?
그렇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리는 이코노미스트 기사가 바로 ‘금융 이해력’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기사에서 볼 수 있듯이, 현재 많은 나라들에서 국민들의 금융이해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기사에서 전하는 대표적인 시도 4가지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 가장 단순하고 확실해 보이는 해법으로, 금융이해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금융 교육을 제공한다.
- 현재 직접적으로 금융문제와 더욱 관련이 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금융 교육을 제공한다.
- 금융 교육을 의무화시킨다.
- 대다수 소비자들은 돈과 관련된 결정을 직접 내리는 것을 원치 않으니, 전문가들의 손에 맡긴다.
전부다 그럴듯한 이야기로 들립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 2, 3번은 문제점이 내포되어 있으며, 실효성도 부족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4번은? 이코노미스트지는 이 방법이 그나마 긍정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뉘앙스를 비치면서, 퇴직연금플랜에 가입할 때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설정한 디폴트 옵션(미리 정해놓은 초기값)이 종업원들에게 가장 인기 있다는 사례를 언급합니다. 마치 기업들이 설계자가 되어 선택자(종업원)들로 하여금 최상의 선택을 자동적으로 유도하게 끔 만드는 것. 바로 행동경제학의 대가 리차드 탈러가 제시한 ‘넛지’라는 개념이죠.
그렇다면 이코노미스트지 말마따나 금융이해력을 높이고자 하는 시도나 관련 프로그램들을 아예 없애버리고 오로지 설계자들에게 의존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까요?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다고 합니다. 금융 교육, 다시 말해 교육은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서 겪게 되는 다양한 문제들을 대처하는 방법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세대가 흐를수록 교육의 그러한 목적이 퇴색되고 오로지 좋은 대학에만 가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것이 안타깝긴 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성인들 역시 금융교육을 받거나 관련 서적들을 읽으면서 금융이해력을 높이는 것이 좋은 듯합니다. 가령 펀드, 주식, 퇴직연금 등 금융상품 전문가(설계자)가 공공의 이익이나 고객의 이익이 아닌 자신의 이익을 위한 ‘나쁜 넛지’를 실행하면, 위의 일화에서 등장한 부부처럼 그 내용을 제대로 모르고 있는 사람들은 당하기 쉬우니까요.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선 생소하지만 케인즈의 단기이론을 장기화한 『자본축적론』의 저자이자, ‘근린궁핍화 이론’을 창시해낸 영국의 여성 경제학자 조안 로빈슨이 남긴 명언과 함께 글을 마치겠습니다. 여기서 ‘경제’라는 단어를 ‘금융’으로 바꾸면 오늘 이야기의 주제와 일맥상통하다고 생각합니다.
“경제학을 배우려는 목적은 경제 문제와 관련되어 정해진 해답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경제학자들에게 속지 않는 데에 있다.”
※ Economist의 “Teacher, leave them kids alone”를 번역한 글입니다.
금융교육은 예전부터 실망스러운 결과를 남겼다.
Feb 16th 2013 | From the print edition
문제 하나를 내겠다. 당신이 연간 2% 이자를 지급하는 예금 상품에 100달러를 넣었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그 돈을 그대로 묻어 둔다면, 5년 뒤 당신은 얼마나 모으게 될 것인가?
① 102달러 이상, ② 102달러, ③ 102달러 미만.
이코노미스트 독자들에게는 다소 쉬운 문제로 보일 것이다. (편집자 주: 답은 ①) 그러나 한 연구조사에 의하면, 50대 이상 응답자 중 절반만이 정답을 맞혔다. 이렇듯 만약에 대다수 사람들이 수학적인 문제를 대처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라면, 모기지 대출 서류와 보험 계약서상에 작은 글자로 표기된 세부 조항들을 이해하는 것이 이들에게 어렵다고 해도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은 명확해 보인다. 그저 더 많은 금융 교육을 제공하면 된다. 최근 영국 정부는 금융이해력을 높이는 과정을 국립고등학교 커리큘럼에 추가했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통해 사람들을 금융적으로 정통 있게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 클리블랜드 연준 은행에서 발간한 조사 보고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었다.
“불행하게도, 금융 교육 프로그램이 수강자들의 금융 이해력을 향상시켜주고 보다 현명한 금융 행동을 이끈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
특히 개인적인 돈 문제를 해결하기에 앞서, 학교에서 금융 과목을 들은 학생들이 그러한 사례에 해당된다. 금융 이해력 향상을 위한 청소년 경제단체 Jump$tart Coalition에서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개인 금융이나 자산관리 과정을 이수한 미국 학생들이 이수하지 않은 학생들보다 금융 이해력이 낮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미드웨스턴 주에서 좀 더 세부적으로 시행한 조사에서도 오히려 금융 과목을 이수하지 않은 학생들이 수수료를 물지 않으려고 매달 빠짐없이 신용카드 대금을 납부할 가능성이 더 컸다.
이점을 고려해보면, 현재 직접적으로 금융문제와 더욱 관련이 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 해법일 듯하다. 클리블랜드 연준 연구원들이 내린 결론이 그거였다. 해당 연구원들은 주택을 구입하려고 하거나 신용카드 대금과 씨름하고 있는 특정 개인들에 맞추는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것을 권고했다. 연금제도의 혜택에 대한 교육을 받은 종업원들이 퇴직연금에 가입하고, 가입할 당시에 더 많은 돈을 납부할 가능성이 크다는 증거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접근 방법조차 문제점이 있다. 금융에 대해 배우려는 소비자들의 열의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일례로 신용카드 대출금을 납부하느라 애를 먹고 있는 대출자들에게 무료 온라인 금융 이해력 강좌를 제공했을 때, 0.4%만이 해당 웹사이트에 접속했으며 0.3%만이 강좌를 들었다. 아마도 금융 교육을 받기로 택했던 이들은 애초부터 금융에 대해 관심이 있거나 상대적으로 박식한 사람들일 것이다.
금융 교육을 소비자들이 의무적으로 듣게 만드는 것도 하나의 대안일 수도 있겠지만 비용상 부담이 클 것이다. 그리고 누가 여기에 돈을 내고 듣겠는가? 정부야 물론 정부지출에 관한 권리를 가지고 있긴 하다. 금융기관들은 후원형태로 참여할지도 모르지만, 이들이 해주는 최종적인 조언이 과연 사람들에게 완전히 객관적일까?
로스엔젤레스 로욜라 로스쿨의 로렌 윌리스와 같은 비평가들이 역설한 또 다른 문제점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많은 금융 문제들이 신용카드 대금을 납부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결정하는 일 이상으로 훨씬 복잡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은퇴에 대비해 어느 정도의 재산을 따로 비축해두어야 할까? 주식, 채권, 기타 금융자산들을 가지고 만들 수 있는 최적의 포트폴리오 조합은 무엇일까?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은 개개인마다 다를 뿐만 아니라, 오로지 시간이 지나고 나서 돌이켜 생각해봐야만 자신의 판단이 옳았는지를 알 수 있다. 15년 전에는 주식 비중이 높은 연금 포트폴리오가 더 좋은 성과를 내기 마련이니 일반인들은 그저 이런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는 연금펀드에 적당히 납부만 하면 된다는 것이 전통적인 지혜였었다. 이는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이 대다수 소비자들은 자기가 직접 돈과 관련된 결정을 내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 문제가 스스로 처리하기엔 너무 복잡하다는 것을 깨달았거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결과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소비자들은 전문가들의 손에 결정을 맡기도록 내버려두거나 가족이나 친척의 경험에 의존해서 판단한다.
그래서인지 종업원들이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연금플랜을 제공하는 기업들의 경우, 초기값으로 설정한 디폴트 옵션이 지금까지 종업원들에게 가장 인기 있다. 정부 역시 이를 참고하여 가능한 한 안전하고 덜 비싼 옵션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금융 교육을 받는 것을 포기해야만 하나?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교육의 목적은 아이들이 자신의 삶에서 직면하게 되는 여러 도전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준비시키는 것이다. 금융 관련 문제들을 처리하는 것도 이러한 도전 과제 중 하나이다. 이에 더해 강좌를 보다 짜임새 있게 구성하면 더욱 성공적인 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
가령 교실에 들어가 수다만 떠는 강사들을 금융적으로 테마를 살린 비디오 게임으로 대체하는 것이 학생들에게 교육 참여도와 집중력을 높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다. 아 맞다. 이런 교육들 중 어느 것도 학생들이 기본적인 수학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옛 속담에서 말하듯이, 이 세상에는 10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2진법을 이해하는 사람들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원문: Got to Be Re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