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직장생활에 대한 칼럼을 봤습니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죠.
직장생활에서 착하다는 말은 칭찬이 아닙니다.
그 글에서 말하는 착한 사람들은 대략 이러했습니다.
- 할 말이 있을 때 참고, 나서야 할 때 기다리며 남에게 싫은 소리 못 하는 성격
- 다들 놀 때도 자기 일은 물론, 남이 부탁한 일까지도 열심히 처리하며
- 아차 하면 남에게 이용도 당하는 사람
이 글은 착하다는 말을 듣는 사람들이 유능한 사람들에 비해 1. 성과보다 관계와 입장을 먼저 고려한다는 점, 2.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자기 의견을 관철시키는 걸 주저한다는 점으로 인해 불리한 스탠스에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 글은 이런 점들이 착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불리한 점으로 작용하는지 정확히 서술하지는 않습니다만, 아마도 ‘회사에서 인정받기 힘들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회사에서 ‘착한 사람’ 말고 ‘유능한 사람’이 되라고 말합니다. 심지어는 “어떻게 보면, 착하다는 평을 듣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대신 욕먹고, 총대 메는 악역을 하도록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까지 말합니다.
이 글에는 착한 사람들=’유능한 사람들과는 구분되는 인간 유형의 한 가지’라는 자의적 해석이 전제되어 있어 보입니다. 아마도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착하지만 답답한 직장동료’로부터 영감을 받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 글의 요지는 사실 전혀 새롭지 않습니다. ‘착하다’라는 말이 ‘잘한다'(칭찬)는 의미가 아니라는 걸, 모든 직장인은 압니다. 어찌 보면 상식적이고 상투적인 이야기이기에 잠시 공감이 되기도 했습니다만, 가만히 있는 착한 사람들에게 선빵을 날리고 모든 직장인이 이미 아는 얘기를 하나의 가이드인 것처럼 얘기하며, ‘유능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글이 어딘가 좀 불편했습니다.
그 글은 ‘착한 직원’이라는 단어에 편견을 불어넣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능한 사람은 할 말 다 하고, 지적이고, 스마트하고, 인정받으며, 때론 악역을 자처해서라도 조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인 반면, 착한 사람은 착할 뿐 성과가 없다는 말로 해석하도록 종용합니다. 먹고살기 팍팍한 직장인들을 속박하는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구제해주지는 못할망정, 편견 어린 생각을 진리로 삼으라고 말하는 꼴입니다. 비단 이것은 그 글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수많은 조직이 범하는 잘못입니다.
‘우리 조직이 인정하는 착한 사람을 재정의하고’, ‘착한 사람이 곧 유능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조직문화와 기회를 제공’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소리 내어 착한 사람을 비웃는 분위기만큼은 만들지 않아야 하는데 말이죠. 착한 사람을 눈치 주는 세상에서, 그들을 변호하기 위해 이 글을 씁니다.
예시 하나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여기 세 명의 직원이 있습니다.
1. 입사하자마자 일 폭탄을 맞은 기획자 Y
Y는 회사에 입사하자마자 프로젝트 두 개에 동시 투입되었습니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하나가 끝나면 또 다른 하나에 투입되고, 대체 투입이 연이어져 반년 정도 여기저기 프로젝트에 끌려다니는 신세가 됐습니다. 프로젝트 하나를 할 때마다 영혼이 탈곡된 Y의 어깨는 축 처져 올라올 줄을 모릅니다.
2. 개발이 전문인데 마케팅까지 요구받는 개발자 S
S네 회사 대표님은 개발자가 마케팅 툴을 익히길 요구했습니다. 사이트를 개발하니 사이트 방문 데이터 분석까지 배우는 것이 개인의 성장과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이유에서요. 단호하게 거절하기는 어려워 매번 이 요구 앞에서 S는 땀을 흘리곤 합니다.
3.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일하는 마케터 H
H는 회사의 잘못된 방향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고, 심지어는 팀장 대행을 맡아 회사의 마케팅을 이끌어갑니다. 언제든 자신의 의견을 주저 없이 이야기하는 당돌함에 대표님의 예쁨도 받습니다. 매출 회의에서 모든 직원은 H만 쳐다보네요.
여러분은 이 세 가지 직원의 유형 중에 어디에 속하시나요? 또 누가 가장 유능한 것으로 보이시나요? 아마도 ‘착한 사람 무능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3번, H를 유능한 사람으로 보시겠네요. 자기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Y와 S는 ‘참 착하기는 한데…’라는 생각은 들지만 유능해 보이지는 않으실 수도 있겠습니다.
여기에 서술한 Y, S, H는 모두 실존 인물인데요. 실제로 H는 회사에서 직원들 모두가 ‘똘똘하고’ ‘일 잘하는’ 사람으로 인정했고, 유능한 사람의 대우를 받았습니다. 착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지는 못했지만, 확실히 모두가 유능하다고 인정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럼 실제로 Y, S는 착하기만 하고 정말 H와 같은 유능한 사람들에 비해서 불리한 입장에 있었을까요?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H는 본인의 유능한 스탠스를 유지하기 위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 방전되었고, 여러 갈등 상황 속에서 지쳐서 결국 퇴사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착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기만 했던 Y, S는 어떻게 지낼까요? Y의 경우, Y가 채우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여러 가지 프로젝트의 빈틈을 채우는 역할을 해냈고, 동료들의 신뢰와 지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많이 지쳐있었지만 그가 누구보다 최선을 다했음을 주변 동료들이 알고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S의 경우, ‘저는 구글 애널리틱스 같은 마케팅 분석 업무는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적극적 의사 표현을 하지는 않았으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분명해 그 일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니, 차츰 부담스러운 요구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Y는 동료에게 믿음직스러운 직원으로서, S는 본인의 업무에 더 뛰어난 역량을 가진 직원으로서 ‘자기만의 유능함’으로 조직에 기여하였습니다.
아마도 H와 S, Y가 모두 한 회사 사람이라면 H의 유능한 외면에 가려져 S와 Y는 조용한 직원으로 묻혔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S와 Y가 가진 본래의 능력과 자질, 유능함들이 무용지물이 되는 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여전히 모두 함께 조직에 기여하던 겁니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유능함’을 발견하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유능해 보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의사 표현의 정도와 방식’에서 찾아서는 안 됩니다. 소리 없이 자기 역할을 해내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 식의 기준은 모두를 경쟁으로 몰아넣고 소수의 승자만 만들어내는 구시대적 방식입니다.
조직에는 소리 없이 자기 역할을 해내는 그 사람들 덕분에 시끄럽지 않게 정리되는 많은 문제가 더 많이 내재합니다. 목소리 큰 사람들이 악역을 자처할 때,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았어야 합니다. 모든 직원이 할 말을 겉으로 잘한다는 건 불가능하고, 그렇게 되어야 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이제 착한 사람 무능론에서 벗어나, ‘모두가 각자만의 유능함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사실 제가 회사 생활을 해보니,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유능함을 발견하는 안목을 가진 리더가 참 드물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을 해낼 수 있는 리더와 조직문화가 갖추어져 있다면 정말 축복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저는 회사에서 늘 목소리 큰 놈으로 지내왔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착한 사람 무능론에 빠질 때가 있었습니다.
‘난 목소리를 내는데 왜 사람들은 조용하지? 왜 그들은 부조리에 침묵하지?’라는 일종의 피해 의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일부 그들이 개선했으면 좋았을 점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그 착한 사람들이 나름대로 표현하려는 의사가 있었는지, 어떻게 하면 그들의 소리를 진정성 있게 끌어낼 수 있었겠는지를 고민해보는 편이 ‘착한 사람 무능론’을 맹신하는 것보다는 훨씬 발전적이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처럼 ‘착한 사람 무능론’은 ‘유능하다고 자칭하는 사람들’의 ‘자뻑’과 ‘오만’이 없다면 불가능할 겁니다. 대개 사람들은 ‘착한 직원’이라는 말을 너무 대충 사용합니다. ‘말 없음’, ‘조용함’, ‘시키는 대로 함’, ‘불만을 잘 이야기하지 않음’의 대체어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배워온 ‘착함’이, 단순한 차원에서는 ‘어른 말씀을 잘 들음’, ‘고분고분함’이라는 표면적인 태도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니, 이해는 갑니다. 그러나 ‘할 말 못 하는 사람,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 하는 직원’이 왜 ‘착한 사람’이라는 말로 뭉뚱그려졌는지는 여전히 해명이 필요해 보입니다. ‘고분고분한 사람’이라고 해서 정말 그가 ‘착한 사람’이기를 자청해서 그런 건지 고민해봐야겠습니다.
‘착한 사람 무능론’의 결과는, 착한 사람들을 유능하게 만드는 역할을 해내지 못합니다. 그런 논리는 결과적으로 ‘일은 잘하는데 싸가지가 없는 직원’을 양산하거나 ‘일 잘하는 미친놈들’만 많이 만들 뿐입니다. 실제로 많은 회사는 95명의 착한 사람들과 5명의 일 잘하는 싸가지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저는 우리의 사고가 회사에서 유능한 사람이란 무엇이고, 착하다는 평가는 유능함과 배척되는 개념이 맞는가라는 질문에서부터 다시 출발했으면 좋겠습니다. 소위 ‘착한 사람’들이 가진 유능함을 존중하고, 모두가 유능해질 수 있는 조직을 향한 길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사고의 발전이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원문: 한나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