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자이지만, 이번에는 정치를 바라보는 입장에서 한 마디 해볼까 한다.
2008년에 중국을 강타한 쓰촨 대지진. 무려 7만명의 사망자를 낸 최악의 참사였다. 이런 최악의 참사가 발생하면 그 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국가 시스템의 취약점들이 노출되기 마련이다. 엉터리로 지은 학교가 폭싹 내려 앉으면서 학생들이 몰살당하는 등의.
이럴때 최고지도자가 현장을 방문하는 목적은 구조, 복구활동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민심의 수습과 위로를 위해서다. 대 참사를 겪은 사람들은 적어도 국가가 자신을 잊지 않고 있으며, 여전히 자신이 국가의 품 안에 있다는 안도감을 원한다. 그리고 이러한 안도감은 최고지도자가 현장에서 보여주는 이미지를 통해 전파된다.
양대 강국 지도자들의 훌륭한 이미지 메이킹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는 이런 이미지를 훌륭하게 창출해 냄으로써 지도자 그릇을 넉넉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시종일관 따뜻한 미소와 공감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피해자와 생존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이번 세월호 참사 현장을 방문한 박근혜에게 아쉬운것이 바로 이 밀착감이다.
물론 아래의 이미지들은 다 연출이다. 하지만 민심의 수습과 위로를 위해 연출도 필요하며, 이 연출에 맞춰 훌륭하게 연기하는 것 역시 정치지도자의 중요한 덕목이다. 원자바오는 유교문화권 사람들에게 익숙한 ‘성군’의 이미지를 적절하게 연출해 냄으로써 수만명의 참사로 위기에 처한 정부 리더십을 훌륭하게 되살려내었다.
오바마 역시 참사지역에서 최고지도자 다운 이미지를 창출하는데는 귀재였다. 전임자 부시가 허리케인 카트리나 참사지역 방문시 폭동 직전 상황인 뉴올리언즈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모습조차 보여 차라리 아니 간 만 못할 정도로 정치적 위기를 맞이한것과 달리, 오바마는 대통령 선거가 한창이던 시기에 들이닥친 대 참사의 위기를 오히려 이미지 메이킹의 기회로 돌렸다.
그는 허리케인 샌디가 강타한 뉴저지, 뉴욕 지역 한 가운데로 거침없이 들어갔으며, 진심으로 공감하는 모습, 그리고 정치적 라이벌이자 앙숙인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를 따뜻하게 위로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지지율을 크게 높였다. 오바마 최대의 정적이었던 크리스티 주지사가 오히려 오바마 지지 발언을 할 정도였으니.
박근혜 대통령의 이미지 연출, 믿음은
진심과 공감, 그리고 이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연출. 이 두가지가 겸비될때 최고지도자는 위기와 참변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준다. 사실 최고지도자가 신이 아닌 이상 국민들은 그 이상을 바라지도 않는다. 지도자가 왔으니 뭔가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국민은 북한 말고는 없을 것이다. 다만 국민들은 자신들이 품안에 있음을, 자기 아픔을 국가 최고 지도자가 같이 느끼고 있으며 함께 지고가려 함을 보고 싶은 것이다.
박근혜는 진도를 방문할때 이런 것들을 염두에 두었는지 모르겠다. 대통령이 진도까지 갈때는 기적적인 구조를 지휘하러 가는 것이 아니다. 위로가 되는 이미지를 창출하러 가는 것이다. 불행히도 박근혜는 쓸만한 위로와 공감의 이미지를 한 컷도 만들지 못했다. 거의 대부분의 장면은 경호원에 둘러싸여 있거나 유족들과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가장 많이 보도된 아래 사진은 쇼크 상태였던 아이가 막 퇴원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오히려 비판을 받기도 했다.
마치 마지못해 만지는듯한 저 주저하는 접촉. 원자바오, 오바마와 비교하면 얼마나 어색한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 거리감과 차가움, 혹은 상황을 잘 모르고 어리벙벙해 하고 있다는 느낌까지 전해진다. 그나마 친정부 언론에서 잘 잡아 준 이미지가 저거다. 게다가 저 어린이가 병원에서 멀리멀리 공수되어 왔다는 사실마저 알려져서 큰 곤욕을 치루었다.
그러더니 급기야 다음과 같은 최악의 이미지를 남기고 말았다. 무릎꿇은 국민과 여왕처럼 버티고 선 대통령. 만약 박근혜나 보좌진이 정치적 감각이 있었다면 이 상황을 재빨리 기회로 바꾸었을 것이다. 같이 무릎을 꿇는다거나 큰 절을 올리며 사죄한다거나, 아니면 급히 달려가서 깊이 포옹한다거나. 그러나 박근혜는 이 상황에서 그냥 뒤로 돌아 갔다.
심지어 이명박조차 이런 장면을 연출할 줄 아는데 말이다. (혐짤 죄송)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큰 생각 없이 행동해도 언론 통제를 통해 어느 정도 정부에 대해 신뢰감을 가질 수 있었다. 덕택에 박정희는 산업역군의 상징이었고, 육영수는 어머니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이제 시대는 바뀌었다. 지도자 스스로 이미지를 상황에 맞게 연출하지 못한다면 국민들에게 위로는 물론 믿음도 주기 힘들다. 그리고 신뢰 없는 정부에 대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올 것이다.
하긴 지지율이 70%를 넘는 대통령에게 괜한 걱정인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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