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취업 준비 기간을 거쳐보니 나 포함 많은 문과생 젊은이가 왜 취업난 속에 허덕이는지 알 것 같다. 이에 내가 여러 시행착오 끝에 깨닫게 된 몇 가지 필수 포인트를 알려주고자 한다. 기업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방향을 잘 잡는 것이 시간 단축에 중요할 테니 말이다.
1. 경험이 부족하다.
맞다. 경력직을 뽑는 것은 아니지만 아쉽게도 당신들은 신입 입사를 위한 경험이 부족하다. 사기업은 물론이거니와 NCS 도입에 박차를 가한 요즘 공기업들의 채용 공고를 본 적이 있다면 알 것이다. 직무에 적합한 수업을 듣고 직무에 적합한 경력을 쌓아라. 기업들은 신입 월급을 주면서 최대한 가성비 좋은 사람을 고용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감히 대학생이 대학 수업만 듣고 바로 취업하길 바라는가? 경력을 위해 인턴을 먼저 하고 신입으로 지원을 해라. 물론, 인턴으로 지원하려면 경력이 필요할 것이다.
2. 빠른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응용 수리, 도형 추리 및 공간 지각 문제를 푸는 능력이 부족하다.
어렸을 때 풀던 소금의 농도, 자동차의 속도를 구하는 문제들을 기억하는가? 그 공식을 잘 외우고 문제를 빨리 풀면 좋은 기업에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도형을 위아래로 180도, 270도 돌렸을 때 어떤 형태가 되는지 남들보다 빨리 알 수 있는 것이 기업에서 인재를 뽑을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능력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과 연관이 없어 보이고 어차피 입사하면 계산은 다 컴퓨터로 할 것 같은데 왜 이런 시험을 쳐야 하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는가? 실제로 회사에서 일을 해 본 사람들이 문제를 만드는 것일 테니 아마 이것이 합리적인 평가 방식이 맞을 것이다.
3. 학점은 잊어라.
항상 등수로 당신의 가치가 판단되는 삶을 살아왔는가? 그래서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공부하고, 대학 가서도 학점을 잘 받기 위해 성실하게 살아왔는가? 고학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그것 하나는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는가? 학점이 당신의 끈기와 능력을 보여주리라 믿은 자여, 이제 그 모든 것을 잊어라. 비록 지금까지의 교육은 그렇게 진행되어 왔지만, 대학에서 당신을 학점으로 평가하는 기준은 직장을 얻을 때 공정한 기준이 아니라고 이미 판명되었다. 특히 공기업들은 대부분 학교 및 학점란이 사라졌으니 학점은 잊고 지금부터라도 도형을 열심히 회전하는 연습을 해보기 바란다.
4. 쉬면 안 된다.
공백기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럼 수업이라도 적게 듣고 조금 생각할 시간을 가지고 싶은가? 그렇다면 졸업이 왜 늦어졌냐는 물음에 어떻게 답할지부터 생각해라. 대학 다닐 때는 미처 생각할 시간이 없어서 졸업 후 진로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고 싶은가? 그럼 공부를 더 하고 싶지 않더라도 일단 대학원이라도 가라. 어떻게 감히 당신의 20대에 ‘무언가를 했다’고 설명이 안 되는 기간이 있어도 용서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5. 상경계를 가라. 특히 경영대.
Business administration. 물론 이해는 안 될 수 있다. 기업을 운영하려는 것이 아니고 그저 노동자로 일하려고 하는 것뿐인데, 설사 임원이 되어도 아마 직접 경영을 할 것도 아닌데 왜 경영대를 가야 하는가. 회계나 재무 같은 특수한 능력이 필요한 직군은 따로 뽑을 테고 신입이 회사에 입사하자마자 운영 전략을 짤 것도 아닌데.
그러나 비록 당신은 노동자로 뽑히는 것이지만, 기업은 당신이 노동자로서의 자아 인식보다는 기업의 입장에서 생각해주는 사람이길 원한다. 노동법을 공부해서 본인의 권리에 대해 아는 것보다는 기업법을 알아서 기업인 양 사고하길 바라는 것이다.
그러긴 싫은가? 어차피 요즘 인기 많은 공기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경영학이든 경제학이든 문제풀이집을 꺼내 봐야 할 것이다. 학교 다니면서 복수전공이라도 해놓는 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이다.
6. 적당한 뻔뻔함, 적당한 거짓말.
자기소개서와 인성 시험 강의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이다. 전문용어로 이미지 트레이닝.
마지막으로
당신은 이 말도 안 되는 글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됨을 명심하기 바란다.
사실 제가 드릴 수 있는 조언은 없습니다
고생은 좀 했지만 저는 운 좋게도 3년 반 전에 취업에 성공했습니다. 부끄럽게도 ‘취준생’ 신분이 끝나고 나니 채용 과정에서 느꼈던 답답함과 부조리함이 이제 내 문제가 아닌 양 회사에 적응하는 것에만 몰두해 있었습니다. 취업 시장은 상황이 더 안 좋아지기만 하는데 말이죠.
실제로 직장인 중 많은 사람은 젊은이들의 취업난에 굉장히 무심합니다. ‘취업 어렵다는 얘긴 나 때부터 있었어~’ ‘어쨌든 탈출했으니 다행이지 뭐’라며. 하지만 저는 여러분이 느낄 답답함과 억울함을 기억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악화하는 이 상황이 안쓰러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아쉽게도 원활한 취업을 위해 제가 드릴 수 있는 조언은 없습니다. 위에 있는 내용은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상을 비꼬기 위한 용도였지 조언이라고 할 수 없죠.
경력? 어차피 정규직이 아닌 인턴이 ‘경력’을 쌓을만한 일을 하기는 사실상 어렵습니다. 저는 인턴을 세 번 했습니다. 유급으로 일했던 곳에서는 대부분 인턴이 맡을 수 있었던 업무가 번역, SNS 홍보, 사진 올리기, 부서 청소하기, 전화 받기, 스캔, 복사, 엑셀 파일 정리 정도여서 자소서에 활용하려면 마치 내 역할이 훨씬 컸던 양 부풀려야 했습니다. 보안이 중요한 곳이라 열람이 불가능한 문서도 많았고, 정규직 전환 전제가 아니었으니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겨줄 수도 없는 환경이라 자리에 앉아서 책만 보는 인턴이 정말 많았습니다.
나머지 두 번은 무급 인턴이었는데 이런 작은 기관들은 가성비 좋은 인턴들을 활용(악용)하며 굴러가기 때문에 시키는 일은 많았습니다. 공짜로 일하면서 겪게 되는 비정규직의 설움은 훨씬 크지만요. 하지만 이제 이런 곳조차도 이미 다른 곳에서의 인턴 경력이 있는 친구들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뽑히기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어차피 신입으로 입사하면 내가 어떤 대단한 곳에서 어떤 대단한 프로젝트를 했는지와 상관없이 업무는 0부터 다시 신입의 자세로 배워야 합니다. 경력직이 아니니까요. 오히려 ‘나는 인턴 하던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일을 해와서 다르게 일을 하겠다고’ 하면 신입답지 못한 아는 척하는 건방진 사람으로 낙인찍힙니다. 저는 그래서 마땅히 공부해야 할 대학생들한테 경력을 요구하는 것은 업무능력을 평가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얼마나 인맥이 넓고 ‘빽’이 좋은지 평가하겠다는 것으로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인·적성검사… 이에 대해선 정말 할 말이 많습니다. 학교에서도 늘 성적이 좋았고 인턴을 했던 곳에서도 문제없이 다녔었지만 인·적성검사는 전탈이었습니다. 지금도, 비록 회사 다니는 것은 힘들지만 일 잘한다고 칭찬받고 있기 때문에 그 검사가 실제 회사에서 일을 할 때 요구되는 역량이나 태도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본인들이 스스로 인정할 정도로 불성실한 대학교 생활을 하던 친구들이 그냥 한 번 쳐봤는데 척척 붙고 빨리 취업이 될 때 상대적 박탈감이 심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취업 준비생들이 대학교 학비와 별도로 인·적성 검사와 NCS 강의 및 교재에 들이는 어마어마한 비용을 생각하면 정말 이 시험은 학원들만 배 불리는 일 같다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책은 출제 경향 때문에 반기마다 구입해야 하니까요.
인·적성검사에 대해 제가 받은 팁은 다음과 같습니다. ‘회사의 인재상을 보고, 본인이 그런 성격이라고 자기 세뇌를 한 후 일관성 있게 문제를 풀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늘 붙는 친구들은 시험을 보러 가는 기업마다 매번 다른 맞춤형 자아를 적용해서 문제를 푼다고 했습니다. 이 얼마나 웃긴 상황인가요. 이런 식으로 인성까지 검사해서 뽑아놨는데, 같이 일하는 젊은이들의 사고와 행동이 이해가 안 되어 『90년생이 온다』라는 책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인성검사의 실효성 및 필요성에 대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업들은 원하는 분야를 빨리 찾아서 그쪽으로 관심과 경험이 많은 인재를 뽑고 싶은 것일까요? 그렇다면 학생들에게 그런 고민을 할 시간을 줘야 합니다.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고등학교까지의 교육이 그러한 시간을 허용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런 교육방식을 바꿀 생각이 없다면, 적어도 대학교 때는 시간을 줘야 할 텐데 설명 안 되는 공백기는 늘 공격의 대상이 됩니다.
애당초 ‘대학교’라는 곳은 취업 사관학교가 아닌데 직무에 적합한 수업이나 경력이 없는 학생들은 직업을 가지지 못하게 되며 나이는 어릴수록 선호하니 대학교가 취업에 도움이 안 된다는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취업에 도움이 안 되는 학과들은 사라지고 ‘이런 학과까지 대학교에 있어야 하나?’ 싶은, 우리나라 대학엔 이런 학과가 있다고 말하기조차 민망한, 노골적으로 취업이 목적인 신설학과들이 생겨났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 모두 한마음으로 공무원을 꿈꾸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안정성을 추구해서만이 아닙니다. 이와 다른 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조차 몰라서입니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마음껏 고민하고 탐색할 시간은 허락되지 않은 채 경력이란 건 어디에서 어떻게 쌓아야 하는지 알 수 없으며, 그나마 관리해놓은 학점은 중요하지 않다고 하고, 어차피 인·적성도 따로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암기로 해결되는 시험을 준비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지입니다.
열심히 준비한 친구들도 자신들의 노력이 ‘스펙’으로 치부되어 서류 탈락이나 인·적성 탈락을 몇 번 하고 나면 나이가 더 들기 전에 진로를 공무원으로 선회합니다. 우리가 그 이상의 꿈이 없는 이유는 그 이상의 꿈을 꿀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서류가 안 됐다’ ‘필기가 안 됐다’는 이메일과 문자를 받을 때마다 자괴감에 빠졌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왠지 내가 무언가 잘못한 것 같아서 부모님 얼굴을 뵙기도 죄송했습니다. 하지만 회사에 다녀보니 알겠습니다. 우리가, 여러분이 부족해서 취업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노력이 부족해서도 아닙니다. 지금 회사 다니는 많은 사람은 여러분만큼 노력하지 않고 들어왔으니까요. 그러니 자책할 필요 없습니다.
취업 선배가 돼서 ‘난 운이 좋아서 뽑혔다’ 이상의 조언을 해드릴 수 없어 미안합니다(심지어 제가 인턴으로 했던 활동은 지금 저의 직무와 무관합니다…). 하지만 진심 어린 위로는 해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 맞다고요. 그러니 어깨 쭉 펴고 다니세요. 당신은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원문: 상추꽃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