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올해 60세이시다. 회사에서 부모님이 60세가 지나면 가족수당이 나온다고 들은 바 있어 문의했더니 만 나이 기준 60세부터란다. 조금 어이가 없었다. 아버지는 분명 사람들을 만날 때 60세로 본인을 소개하고, 올해 초 앞 자릿수가 바뀌었을 때 하는 심란한 고민들을 하셨을 것이다.
자식들도 아버지를 60세로 인식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를 그 나이로 보지만 사실은 60세가 아닌 것이다. 그는 명확히 ‘한국 나이’ 속도로 인생을 살지만 8월생인 아버지가 법적으로 60대로 인정받으려면 해가 바뀌고도 1년 8개월을 더 기다려야 한다.
한국만 사용하는 ‘한국 나이’
학창 시절을 해외에서 보낸 나는 어느 순간부터 인생 속도가 어릴 때 친구들보다 빨랐다. 한국에서 20세가 되었을 때 친구들은 아직 18세였고, 올해 30세가 되어서 앞자리가 바뀌었지만 친구들은 절반 이상이 아직 28살이다. 그게 뭐가 그렇게 문제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걸 어떻게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내년이면 벌써 24살인데 왜 아직 진로를 못 정했니?
내년이면 앞자리가 바뀌는데 아직도 남자 친구가 없니?
여자는 30전에 결혼해야지.
여자가 30이 되면 꺾인다는데, 소개팅 시장에서 인기가 없다는데, 빨리 어떻게 좀 해봐라.
우리 모두 나이 관련 얼마나 갖은 설움을 겪고 편견을 가져왔는가. ‘나이에 맞게’ 살아야 하는 압박은 모두가 있다. 그런데 왜 우리만 이렇게 급하게 가야 하는 걸까. 나라마다 달라서 그런 것이라고 하기에도 말이 안 되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도 나는 법적으로 그 나이로 인정받는 것도 아니며, 그 나이에 맞는 혜택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 상황이 조금 이상하다는 것은 우리 모두 안다. 그 단적인 예로 12월생 갓난아이를 해가 바뀌었을 때 2살이라고 소개하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3개월 됐습니다, 4개월 됐습니다, 돌이 지났습니다 등 어렸을 때는 보통 한국 나이로 소개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유예기간’이 적용되는 기간은 길지 않다. 어느 순간 우리 모두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 내가 실제로 살았던 나이보다 더 많은 나이로 살아가야 하며 만 나이로 자신을 소개하면 괜히 어리게 보이려고 수를 쓴다며 놀림거리가 된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양력에 따른 출생신고가 정착된 이후에도 우리나라에만 이런 풍조가 유지된다고 한다. 우리와 같았던 베트남, 중국, 일본, 심지어 북한마저도 만 나이로 인생을 사는 것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나이 세는 방식’은 말 그대로 KOREAN AGE인 것이다.
서열을 가리기 위한 호칭이 문제인가
왜 우리만 이럴까 고민해보았다. 법적인 나이에 맞게, 다른 나라 사람들과 동일하게 나이를 깎아준다는데 반대할 이들이 누가 있었을까 하고(흔히 변화는 누리는 무언가를 포기하기 싫어하는 기득권 때문에 더디게 오니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사람은 없었을 것 같았다. 그때 문득 떠오른 것이 우리나라의 호칭 문화다.
아마 우리 고유의 호칭 문화 때문에 세계의 만 나이 시스템에서 누락되기를 선택하지 않았나 싶다. 우리나라에서는 누가 형이고 오빠인지, 누나이고 언니인지, 명확하게 가려서 나보다 어린 사람한테 대접받고, 태어난 순서로 서열을 가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만 나이로 하게 되면 편하게 반말을 쓸 수 있는 ‘동갑내기’를 가리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처음에 만났을 때 누구는 28살이고 누구는 27살인데 생일이 한 달 차이라면 형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존댓말을 써야 하는지 기준을 정하기 애매해서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으니 그냥 같은 해에 태어난 사람들은 다 같은 나이인 것으로 하기로 정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것이 문제라면 호칭은 지금처럼 ‘몇 년도 생인지’ 위주로 정하면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인다. ‘몇 년도 생 몇 살입니다’라고 소개하고 지금처럼 같은 해에 태어난 사람들끼리 친구 먹으면 되지 않는가. 이렇게 하면 형 동생으로 분류될 사람은 지금과 다를 바 없다. ‘왜 나는 저 사람과 나이는 동일한 나이로 소개하면서 형이라고 불러야 하냐’라고 불만을 제기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어차피 지금도 똑같은 상황이다.
당신은 법적으로 저 사람과 나이가 같지만 지금 형이라고 부른다. 해외에 가도 소개할 나이는 동일한데, 그게 뭐가 그렇게 억울한가.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나이가 같으면 ‘그래, 몇 달 차이인데 몇 년도 생인 게 뭐가 그리 중요해’라며 서열주의를 조금 더 내려놓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다른 해에 태어나서 형 동생이지만, 나이는 같으니 친구로 지낼 수 있는 폭이 넓어질 것이니 말이다.
다른 나라에선 다 가능한데, 왜 우리만 우리 나이로 살지 못하는가. 왜 해외에 갈 때 내 나이를 다시 계산해야 하며 왜 법적인 내 나이는 실제 내 나이와 다른가. 그리고 왜 다들 이게 정상인 양 살아가는 것인가. 나는 법적인 내 나이로 살고 싶다고 당당하게 요구하고 싶다.
원문: 상추꽃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