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역사든 마찬가지겠지만, 베트남전의 행방과 결말은 한두 가지 요인으로는 설명하기 힘들다.
어떤 이들은 남베트남이 북베트남에 비해 강한 국력과 초강대국 미국의 직접적인 지원을 받았음에도 북베트남에게 패망한 것은 각계각층에 간첩이 많기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사실 이거 이명박근혜 정권 당시 군대 정훈교육에서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나오던 레퍼토리다. 물론 이런 레퍼토리에서 남베트남 정권이 하도 썩어빠져서 정작 지원 주체인 미국조차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지경이었다는 걸 말하는 경우는 본 적 없다.
어떤 이들은 공산주의자 호찌민을 경계하기도 하지만, 정작 이 호찌민이 중국의 개입을 두려워하여 초기에는 미국에 지원 요청을 했으나, 아시아 지역에서의 공산주의+민족주의 컬래버레이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미국이 흑백논리의 함정에 빠져서 베트남전 자체를 회피할 기회를 놓쳤다는 걸 거론하는 경우도 별로 본 적 없다.
어떤 이들은 북베트남이 초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이길 수 있었던 건 호찌민을 중심으로 일치단결했기 때문이라고도 말한다. 그런데 정작 이렇게 된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 미국이 의회의 결의가 아니면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독단으로 전쟁을 수행할 수 없는 철저한 민주주의 국가였기 때문이라는 점을 언급하는 경우는 별로 못 봤다. 게다가 북베트남이 전쟁 수행을 위해 얼마나 많은 정치적 ‘숙청’을 감행했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과정에서 언론의 자유나 정치적 자유 따위는 개나 줘버린 상황이 되었다는 걸 말하는 경우도 본 적 없다.
또 어떤 이들은 호찌민이 베트남의 민족적 영웅이고, 이런 영웅이었기에 남북을 통틀어 구심점이 될 수 있었다고도 하지만… 글쎄, 나도 베트남에 가고서야 ‘조심스럽게’ 듣게 된 이야기들이지만, 정작 당시 남베트남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호찌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호찌민은, 자신의 정권을 세우기 위해 북위 17도선 이남을 ‘포기하고’ 미국과 응오 딘 지엠 정권에게 줘버린 사람으로 인식되는지라…
사실 북베트남 정규군과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을 제대로 구분하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고, 정작 베트남 전쟁 기간에 북위 17도선 이북에서는 제대로 된 전투가 벌어진 적도 없으며, 대부분의 ‘전투’는 남베트남 지역에서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과 미군/한국군/남베트남군 사이에서 벌어졌으며, 소위 그 ‘고엽제’라는 것도 대부분 사이공 인근 지역에 뿌려졌다는 걸 아는 사람도 생각 외로 많지 않다.
북베트남이 전쟁의 피해를 입은 거라고는 미국 공·해군의 공습을 지속적으로 받았다는 정도인데, 그나마도 북베트남의 심기를 지나치게 거슬러서 협상을 거부하는 경우를 피하기 위해 대단히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만 공습을 계속했다는 걸 고려하는 사람도 그닥 본 일이 없다.
사실 신채호는 그런 말 한 적도 없지만 종종 신채호가 했다고 오인되는 발언,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였던가. 그 말의 의미가 역사의 일부분을 제멋대로 가져다가 내 깜냥에 맞게 문질러서 써먹자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역사는 교훈을 얻기 위해 공부하는 거지, 자기 위안을 얻기 위해 배우거나 그런 ‘도구’로 활용하기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닐 테다.
원문: 박성호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