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박꼬박 월급 나올 때가 좋았지…
우연히 어떤 글과 그림을 마주했다. 퇴사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글쓴이는 상점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자신을 그려 내었다. 그리곤 아래에 ‘꼬박꼬박 월급 나올 때가 좋았지.’라고 써놓았다. 뭔가 대단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것 하나 바로 살 수 없는 자신의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해낸 것이다. 이런 말은 사업을 하는 지인으로부터도 들을 수 있다.
월급쟁이 땐 그렇게 안 오던 월급날이, 사업을 하니까 미친 듯이 빨리 오더라. 그러니까, 꼬박꼬박 월급 나올 때가 좋은 줄 알아.
이해가 된다. 월급을 받는 존재. 말 그대로 월급쟁이는 다달이 나오는 월급에 취해 있다. 그것에 취하지 않으면 제대로 살아낼 수가 없다. 맨정신으로 직장생활을 하긴 어려우니 우리네 직장인은 무엇에라도 취해야 하는데, 월급은 가장 숙취가 오래가는 명분이다. 물론 그것으론 모자라 자신의 노동력과 치환한 소중한 월급으로 술을 마셔 다시 한번 더 취해야 한다는 것이 함정이긴 하지만.
하지만, 위와 같이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이 그립다고 말하는 사람의 말은 모두 역설적이다. 엄연히 말해서, 그들은 그것이 지겹거나 만족하지 못해 떠나간 사람들이니까. 다만 잠시 꼬박꼬박 월급을 받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고, 깊은 고민과 방황을 했는지 잊은 것뿐이다.
원래 사람은 지나간 것들에 관대해진다. 지나고 나면 대부분의 것들은 아름다워 보인다. 월급을 받기 위해, 수많은 페르소나를 하루에도 몇 번씩 갈아치우던, 자괴감과 열정이 어설프게 버무려져 마치 땀 냄새와 향수가 섞여 이상한 결과를 내는 것과 같았던 삶을 잊은 채.
월급은 꼬박꼬박하지 않다, 우리가 꼬박꼬박한 것이다
냉정하게 생각해보고자 한다. ‘꼬박꼬박 월급 나올 때가 좋았다’란 말은 결과 지향적인 말이다. 즉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월급을 받기 위해서는 출근을 해야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리고 바람이 부나. 학생처럼 방학이 있는 것도 아니다. 몸이 아프거나 불편해도, 정해진 근무 시간은 채워야 한다.
더불어 퇴근도 해야 한다. 그래야 하루가 간다. 퇴근은 출근해야 가능한 일이며, 퇴근해야 어느 한 날이 마무리된다. 퇴근은 온전히 출근해 자기 일을 진지하고 멋지게 마무리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트로피와 같다. ‘꼬박꼬박 월급이 나온다는 것’은, 이러한 과정을 생략한 것이고 또 마치 월급이 ‘자동적’으로 나오는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지난날을 돌이켰을 때, ‘난 아무것도 안 했었는데 월급이 알아서 나왔었어’란 느낌. 어디 그런가. 월급은 말 그대로 한 달 동안 출근과 퇴근 그리고 무수한 육체적, 정신적, 영혼적인 고초를 겪고 난 뒤에 받은 소중한 과정의 결과물이다. 즉 월급이 꼬박꼬박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꼬박꼬박 했기 때문에 월급이 우리에게 온 것이다.
간혹 생각한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건물주로 태어나지 못했을까, 또는 월급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 받는 존재가 되었을까. 삶에는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의미를 만들어 내기 위해 사는지, 아니면 의미를 찾기 위해 사는지 나는 자주 헷갈린다. 그럼에도 또 나는 힘을 내어 출근한다. 월급을 받지 못한다면, 나는 이런 고상한(?) 고민마저 하지 못하는 배고픈 돼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월급은 결코 자동적으로 오지 않는다
우리가 꼬박꼬박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해야, 그것이 꼬박꼬박 나온다. 그러니 월급이 꼬박꼬박한 게 아니라, 우리가 꼬박꼬박한 것이며 이러한 사실을 따박따박 구분하고자 하는 것은, 월급쟁이인 우리도 분명 대단한 구석이 있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월급은 평생 우리를 만족시킬 수 없다. 매사에 가볍고, 언제나 우리를 스쳐 가는 가벼운 존재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네 꼬박꼬박함의 결과라고 생각한다면 그 의미가 달라질지 모른다. 조금은 더 무겁게, 스쳐 가더라도 좀 더 진한 여운이 남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난, 우리 모두의 꼬박꼬박함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원문: 스테르담의 브런치
- 『직장내공』
-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
- 『진짜 네덜란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