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과 스파클링, 마시는 가글, 그리고 동치미 에이드까지… 마시즘의 메모장에는 세상에 나오지 않은(그래서 다행인) 음료들이 적혀있다. 메모를 적을 때마다 아직도 음료의 가능성이 많이 남았다는 것을 느낀다. 이런 말을 하면 “그러면 만들면 되잖아?”라고 물어보지만, 내가 하기에는 어려울 것 같고, 누군가 했으면 좋아할 정도? 하긴 동치미가 먹고 싶어서 동치미 에이드를 만드는 사람이 어디 있어.
……여기 있다. 자기에게 맞는 음료를 구매하지 않고 직접 만든 이들이 있다. 게다가 이를 가지고 판매했다. 이를테면 음료계의 꼬꼬면 정도 된다고 할까? 오늘은 간절함으로 ‘답답해서 내가 직접 만든 음료’들을 알아보겠다.
게임장비 회사가 음료를? 리스폰(Respawn)
첫 번째 주인공은 싱가포르에서 만들어진 게임 장비 회사 ‘레이저(Razer)’다. 2005년부터 게이밍용 마우스, 키보드, 헤드셋 등의 제품을 만드는 곳인데, 이곳은 게이머들이 1 프레임이라도 빠르게 반응할 수 있다면 뭐든 만들 기세라는 게 특징이다. 게이밍용 스마트폰을 출시할 때까지만 해도 재미있다 싶었는데, 게이머 전용 음료를 만들어버렸다.
레이저에서 출시한 에너지 드링크의 이름은 ‘리스폰(Respawn)’이다. 죽은 캐릭터나 NPC가 다시 살아 돌아오는 것을 리스폰이라고 한다. 에너지 드링크치고 특이하게 분말 형태로 만들었다는 게 특징. 여기에는 뇌 기능을 향상하는 성분들이 들어있어 집중력과 정신력을 강화해준다고 한다.
가볍게 즐기고 끝나는 단순한 게임이 아닌, 치열한 전쟁터가 되어버린 e-스포츠 시장에서는 매력적인 아이템이다. 물론 도핑테스트(?)를 할 정도로 강하지는 않은 것 같다.
사랑은 음료를 타고, 알름두들러(Almdudler)
이번에는 오스트리아의 국민음료수 ‘알름두들러(Almdudler)’다. ‘고산지대(Alm)’와 ‘알프스 지방의 창법(dodeln)’을 합쳤다. 이 단어를 합쳐서 뜻풀이를 하자면 ‘산 위에서 노래하는 사람’ 정도다.
과연 국민음료답게 포장부터 전통 의상을 입은 사이좋은 커플이 등장한다. 알름두들러 파르(Almdudler Paar)라고 부른다. 이거 완전 솔로들 눈물 나게 만든 거 아닌가? 맞다. 이 녀석은 프러포즈를 위해 만들어진 음료다.
1957년 10월 17일, ‘어윈 클라인(Erwin Klein)’은 연인에게 신부에게 선물을 주려고 한다. 그의 선물은 그녀만을 위한 음료였다. 어윈 클라인은 알프스 지방에 있는 허브 32종을 모아서 독특한 풍미의 탄산음료를 만든다. 여전히 유지되는 알름두들러의 제조법이다.
이 음료는 단순히 이벤트로 끝나지 않고 오스트리아 국민들이 모두 사랑하는 음료로 성장한다. 또 자식들을 통해 알름두들러 회사는 운영이 되고 있다. 잘 만든 음료 하나가 사랑도, 가업도 만든 케이스랄까?
선생님 콜라, 콜라가 먹고 싶어요… 힌트워터(Hint water)
힌트워터 CEO ‘카라 골딘’의 이야기는 많은 탄산러의 공감을 일으킨다. 그녀는 평소 탄산음료를 좋아하던 사람인데 임신 중에 당뇨 진단을 받아 좋아하는 음료를 마실 수 없게 되었다. 결국 다이어트나 저칼로리라고 적힌 음료들을 찾아서 마셨지만 그녀의 당 수치는 떨어질 줄 몰랐다. 그렇다고 물을 마실 수 는 없었다. 맛이 너무 심심해서. 아니 탄산음료를 얼마나 많이 마셨길래 물을 못 마시지?
물은 마시기 싫고, 믿을만한 음료는 없다. 그녀는 부엌에서 과일을 가지고 향이 나는 물을 만들었다. 이런 음료를 ‘워터 커버(Water Cover)’라고 부른다. 과일 향 나는 물로 건강이 돌아오자, 그녀는 이것을 팔기로 결심한다. 본격적인 제조를 위해 공간도 확장했다. 바로 부엌에서 창고로 옮긴 것이다. 힌트워터(Hint water)는 이렇게 탄생했다.
마시즘에서 ‘실리콘밸리의 삼다수’라고 소개하기도 했던 ‘힌트워터’는 비슷한 고민을 가진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샀다. 또한 그 좋아하던 탄산음료처럼 탄산을 추가한 버전인 ‘힌트피즈(Hint Pizz)’도 나왔으니 탄산음료를 조절해야 하는 이들의 욕구와 건강을 채워준다고 할까?
주사 맞기 싫으면 마시세요, 마시는 수액 링티
비슷한 느낌으로 한국에는 ‘링티’라는 음료가 있다. 링티는 가장 유명한 국가기관에서 인증하며 화려하게 컴백했다. 바로 군대. 그것도 ‘국방 스타트업 챌린지’다. 그렇다. 링티는 군인과 군의관이 함께 만든 음료다.
짬이 높아질수록 몸을 덜 쓰고 싶은 것은 모든 군인의 욕망이다. 링티는 훈련 중에 탈진하는 장병들을 위한 아이디어로 개발되었다. 쓰러지면 정맥주사를 놓아야 하는데 많이 쓰러져도 답이 없고, 직접 정맥주사를 처방하려면 장소나 환경의 제약이 컸다. 그래서 링거(라고 쓰고 포도당, 전해질, 비타민C, 타우린 등의 성분이라고 상세히 말한다)를 분말 음료로 개발했다.
현직 군인들이 만든 이 음료는 국방 스타트업 챌린지에서 육군 참모상을, 정부의 범부처통합행사인 ‘도전 K 스타트업 2017’에서 국방부 장관상을 탔다. 사실 군인들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효능만 있어도 되었을 텐데(?). 부족했던 맛과 디자인에도 많은 열을 올렸다. 그렇게 군대스럽지 않은 디자인과 맛의 ‘링티’가 출시되었고 1년 반 만에 매출 15억 원을 달성했다고 한다.
음료를 셀프제작하세요, 유플레버(uFlavor)
소비자가 직접 만든 음료 회사. 이것을 뛰어넘어 소비자들에게 직접 음료를 알아서 만들라고 하는 스타트업도 있었다. 바로 미국의 ‘유플레버(uFlavor)’라는 스타트업이다.
유플레버는 홈페이지에서 42가지 향신료를 조합해서 음료를 만들 수 있다. 또한 여기에 농도나, 라벨, 이름 등을 정해서 만들면 하나의 음료로 등록이 된다. 이를 온라인 매장이나 자판기에서 구입할 수 있고, 자신이 만든 음료를 다른 사람이 구매하면 수익도 나눠주는 나름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들고 왔다.
2011년 12월에 출시된 유플레버는 100여 가지 음료군을 만들고 여러 아티스트와 함께 음료 실험을 진행하기도 했다. 지금은 리뉴얼 중이라 만나볼 수 없지만, 비슷한 맥락에서 코카콜라의 프리스타일 머신도 있다. 이 자판기는 코카콜라 제품들의 향과 맛을 조합해서 전혀 새로운 음료를 만들게 해준다. 고객들이 주로 찾는 레시피로 실제 제품으로 출시까지 하기도 한다고.
오래 사랑받은 음료는 셀프메이드였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 음료 중에도 ‘자신이 필요해서’ 만든 음료가 많다. 게토레이는 땀을 많이 흘린 대학 운동 미식축구팀을 위해 직접 만들었고, 베지밀은 의사가 아픈 어린이를 위해서 만들었다. 유명 블랜디드 위스키들도 시작은 프로 소맥러… 아니 ‘자신이 원하는 맛’을 찾기 위해 스스로 제작한 것들이다.
물론 하나의 음료가 개발되기까진 전문가들의 많은 손길과 오랜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셀프 메이드로 시작한 음료에 담긴 ‘이 음료가 탄생한 이유’야 말로 하나의 음료가 오랫동안 사랑받는 힘이 되어주지 않을까?
원문: 마시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