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길 싫어하는 내가 유일하게 계속하고 싶어 하는 운동은 요가다. 더 자세히는 핫 요가인데, 평소 땀을 많이 흘리지 않는 체질이라 40도가 넘는 뜨끈한 방에 들어가 요가 동작을 하나씩 완성하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하고 끝날 무렵에는 요가복이 땀에 젖는데 그게 그렇게 개운하다. 땀 흘리고 상쾌해지는 그 맛에 그나마 유일하게 장기간 한 운동이 핫 요가다.
살이 빠진다거나 몸매가 아름다워지는 단계까진 안 가봐서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와 핑계로 더는 요가를 할 수 없게 됐고 그 후로 시간이 꽤 흘렀다. 요가를 다시 시작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시간 부족이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육아와 살림을 도맡아야 하니 요가 학원 갈 시간이 어디 있겠나.
그래서 책을 사기로 했다. 자칭 ‘화장도 책으로 배우는 카피라이터’인 나는 운동도 책으로 터득한다. 뭐든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책부터 찾아보는 습성이 있다. 그렇게 읽게 된 『요가 매트만큼의 세계』는 말 그대로 후루룩 읽었다. 저자의 맛깔난 글솜씨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 (당연히) 요가도 하고 싶어지고 (덩달아) 글도 쓰고 싶어진다. 물론 나처럼 과거에 요가를 했던 사람이나 현재 진행형인 사람이 읽기에 좋다.
요가가 왜 그렇게 나에게 잘 맞고 좋았나 생각해 보니 앞서 말한 땀 흘리고 개운해지는 맛도 있지만 무리하지 않아도 되는 운동이기 때문이었다. 즉 어떤 자세가 오늘은 좀 안 될 수 있는데 그걸 너무 의식해서 이게 왜 안 되지, 꼭 돼야 하는데, 가 아니라 오늘은 안 되는 날인가 보군, 하고 넘어가도 된다. 때로는 다른 사람들은 요가를 열중해서 하더라도 옆에 누워서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잘 쉬는 것도 일종의 요가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그냥 누워 있는 것과 각 잡고 몸을 놔 버리는 것은 별개다. 책에 이런 부분이 나온다.
모든 요가는 사바아사나로 마무리된다. 두 팔, 두 다리를 벌려 누워 쉬는 건데, 그런데! 그게 참 어렵다. 믿겨지는가. 힘을 빼는 게 더 어렵다. 잠시도 가만있질 못한다. 괜히 다리를 들어 올리거나 주변을 살피거나 침 넘어가는 소리까지 신경을 쓰고 있다. 긴장도 무의식의 일이라 자꾸 힘이 들어간다. 전원을 눌러 끄는 기분으로 몸 구석구석을 점검하지 않으면 쉬는데도 몸이 경직된 그대로다.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휴식도 연습이야.” 그렇구나. 모르니 배울 수밖에. 제대로 쉬는 법, 연습하고 반복해야 알 수 있다.
- 이아림, 『요가 매트만큼의 세계』
어제 출근길 지하철에서 김금희 작가의 『나의 사랑, 매기』 읽었는데 중간 즈음에 남자 주인공 재훈이 근무하는 출판사에서 서울국제도서전에 참가했다가 만난 저자와 이야기 나누는 장면에서 이런 대사가 등장했다.
“쌤,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녜요? 쉬셔야죠.”
“쉬어야죠, 그럼요. 그런데 한의사가 그러더라고요, 그거 힘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힘이 있어서 그런 거라고.”
“힘이 있어서 그런 거라고요?”
“네, 힘이 있으니까 화나고 긴장하고 굳고 괴롭고 하는 거라고요. 울화도 활력입니다, 하는데, 요즘 통 글을 못 써서 힘이 없나 보다 기력이 떨어지나 보다 했는데…… 내년에 책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무엇보다 내켜야죠.”
- 김금희, 『나의 사랑, 매기』
울화도 활력입니다, 라니. 사전에서 ‘울화’를 찾아보니 ‘마음속이 답답하여 일어나는 화’라고 나온다. 우리가 흔히 화병이라고 부르는 그것의 시발점이 아닐까? 소설의 문장이긴 하나 울화도 활력이란 말이 예사말로 읽히진 않는다. 평소에 우린 너무 많은 힘을 주고 살고 있으니까. 요가에서 많이 하는 단어도 힘을 빼라, 이다. 어깨를 떨어뜨려라. 턱을 내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힘들게 느껴진다. 다시 『요가 매트만큼의 세계』로 돌아가 보자.
문득 방심이란 말이 떠올랐다. ‘방심은 금물’이라 하지만 놓을 방(放) 마음 심(心). 마음을 단속하려 들지 않고 놓아둔다는 건 얼마나 쿨한 사치인가.
- 이아림, 『요가 매트만큼의 세계』
‘방심은 금물’이 마치 한 단어인 양 우리는 방심하면 안 되는 것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하지만 말 그대로 마음을 한번 툭 놔버리는 건 정신없이 바쁜 현대인에게, 자잘한 것에 너무 마음을 쏟고 사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사치가 아닌가 싶었다.
지금 당신에게는 방심하는 휴식이 필요해요
‘방심’의 사전적 의미는 ‘마음을 다잡지 아니하고 풀어놓아 버림’이다. 그래서인지 ‘방심은 절대 금지!’처럼 안 좋은 것을 바로 잡는 의미로만 쓰였는데 그럴 게 아니라 제대로 쉬는 의미로 해석해 보면 어떨까. ‘방심하는 휴식’ 낯선 조합에 어감도 신선하다.
책을 읽으며 커다란 상황을 상상해 보고 나의 경험과 빗대어 보다가 결국 거기서 얻은 하나의 단어로 카피가 완성되는 과정은 내가 꾸준히 학습해온 방법이기도 하다. 어떤 책을 읽더라도 남는 독서를 하자. 이런 식으로 풀이를 해나가면 갑작스러운 미션이 떨어져도 내 책상 위에 책 한 권만 있으면 두려운 게 없어진다.
원문: 이유미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