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사고를 접했을 때 말을 아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손가락질하기보다는 어떻게든 한 명이라도 살려내기 위해 손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더 큰 잘못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말해야 겠습니다. 침몰한 세월호에서 시신이 한 구 두 구 수습되면서 기적이 일어나길 간절히 기원했던 국민의 소망이 비통한 울음소리에 묻혀버리는 지금, 말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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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은 누구입니까? 승객을 버리고 저 혼자 살겠다고 가장 먼저 빠져나온 그 선장 말고 더 큰 선장이 있습니다. 그는 누구입니까? 그는 뭘 하고 있는 겁니까?
모두가 다 아는 상식이 있습니다. 정부가 존재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국민은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받는 대신 정부에 주권자의 권한을 위임하고, 그 권한을 행사하기 위한 물리력을 용인하며, 그 물리력 행사를 위한 재원 조달 차원에서 세금을 냅니다. 서구의 사상가들이 말한 그대로 ‘계약’인 것입니다.
지극히 보편타당한 상식이기에 대한민국 헌법에도 명시돼 있습니다. 전문에는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한다)’고 명시돼 있고, 제34조 6항에는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정부를 책임지는 사람들도 이 같은 상식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밝혔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국민 행복의 필수적인 요건입니다. 대한민국 어느 곳에서도, 여성이나 장애인 또는 그 누구라도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데 정부 역량을 집중할 것입니다.”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도 취임사에서 밝혔습니다.
“경제수준에 걸맞는 안전 선진국이 되도록 현장 안전관리체계를 더욱 강화하고 안전의식과 문화를 개선해 가야 할 것입니다 … 수련회나 청소년 캠프 사고가 재발한다면 어느 부모가 안심할 수 있겠습니까? 현장에서의 대응이 효과적이며 체계적으로 이뤄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 또한 취임사에서 밝혔습니다.
“안전은 해양수산업의 활성화를 위한 기본적인 복지입니다 … 인적 과실로 인한 해상사고는 더 이상 없어야 하겠습니다.”
이들의 말 그대로입니다. 대한민국의 선장은 정부입니다. 대한민국에 올라탄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선장은 바로 정부입니다. 하지만 이 정부는 선장이 아닙니다. 존재이유를 찾아볼 수 없는, 그저 세금 축내는 집단일 뿐입니다.
정부를 대표한다는 이 사람들의 다짐은 빈 소리가 돼 버렸습니다.
‘인적 과실로 인한 해상사고’가 재발했습니다.
그리고 그 인적 과실 뒤에 정부의 방조와 결탁이 있었습니다. 해운사들의 이익단체임과 동시에 선박의 안전점검을 담당하는 한국해운조합의 이사장 자리는 1970년대 이후 30년이 넘도록 해양수산부 관료 출신이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낙하산 ‘전관’의 방패 덕에 안전 점검은 요식행위로 전락했고, 안전은 요행의 대상이 돼 버렸습니다.
‘효과적이고 체계적인 대응’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습니다.
정부 대응은 중구난방이었습니다. 사고가 발생한 바로 그 날, 엉뚱한 구조자 숫자를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 이 순간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혼선과 뒷북과 헛발질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해경의 발표가 엇갈렸고, 안전행정부와 해양수산부의 주장이 달랐습니다. 오랜 현장경험을 가진 민간 전문가의 실종자 구조 방안은 무시됐고, 뒤늦게 구조현장의 밤바다를 비추기 위한 방안으로 내놓은 오징어잡이 채낚기 어선 동원은 실종자 가족의 제안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일일이 짚는 것 자체가 부질없기까지 합니다. 정부 관계자, 그것도 고위 관계자란 사람들이 기본도 지키지 않았는데 뭘 더 말하겠습니까?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을 겸하는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은 사고 당일 헬기를 타고 사고현장을 방문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건의를 묵살했고, 수많은 학생이 변을 당해 그 가족들이 식음을 전폐하고 있는 그 자리에서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컵라면을 먹었으며,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하고 지원해도 모자란 송영철 안전행정부 감사관은 사망자 명단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려고 했습니다. ‘무개념’이란 말이 사치스러울 정도의 행태를 보인 겁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게 국민 행복의 필수적인 요건이라고 했지만 그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 때문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세월호의 선장이 비겁했다면 대한민국의 선장은 무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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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의 선장은 비겁했지만 세월호의 승객은 착했습니다. “객실에 그대로 있으라”는 선내방송을 그대로 믿고 따랐다가 변을 당했습니다. 세월호 승객이 그러했듯 대한민국에 올라탄 국민들 또한 너무 착합니다.
민간 잠수사는 위험을 불사하며 바다 속으로 뛰어들고, 민간의 통통배는 실종자를 한 명이라도 찾으려고 사고 해역을 누비고, 민간 단체는 밥과 약을 싸들고 실종자 가족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번만이 아닙니다. 태안 기름유출사고가 났을 때는 100만명이 넘는 국민이 기름범벅이 되는 걸 마다하지 않고 걸레를 들었고,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뒤에는 이재민을 돕겠다며 저금통을 깨서 줄을 섰습니다.
늘 그래왔습니다. 정부는 어디 가고 애꿎은 국민들이 나서냐는 불평 한 마디 없었습니다. 책임을 져야 하는 정부는 국민의 한 마음을 칭송하는 분위기를 조장하면서 통합을 외쳤고, 그 통합구호를 방패삼아 뒤로 슬쩍 숨었습니다.
더 이상은 안 됩니다. 마지막 실종자 한 명을 찾아낼 때까지 민관이 힘을 합쳐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야 하지만 그 다음엔 분명히 물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선장, 정부를 향해 너희는 어디서 뭘 하고 있었느냐고 엄중히 물어야 합니다.
침몰한 세월호에서 시신이 한 구 두 구 수습되기 시작하던 어제 새벽에 실종자 가족들은 청와대를 향했습니다. 실종자 구조 지연에 대한 책임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묻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실종자 가족들의 발길은 진도대교 앞에서 멈췄습니다. 실종자 가족들의 앞길을 가로막아선 경찰들 때문이었습니다.
실종자 가족들은 가로막혔지만 우리는 뚫어야 합니다. 정부의 책임을 엄중히 물을 통로를 반드시 뚫어야 합니다. 이건 당위적인 과제 이전에 절박한 과제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살기 때문입니다.
1999년 씨랜드 화재참사로 6살짜리 아들을 잃은 한 엄마가 절규하며 대한민국을 떠났습니다. “이런 나라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다”며 이민을 떠났습니다.
공감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이런 나라에서는 정말 살기가 힘듭니다. 나와 내 자식이 언제 어떤 변을 당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보내야 할 이유 또한 없습니다. 대한민국 외에 갈 곳 없는 우리이기에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책임 추궁이 예방 차원이 되도록 집요하게, 끝까지 따져야 합니다.
계약 성립·유지의 조건은 신의성실의 원칙이 지켜지는 것입니다. 정부가 이 신의성실의 원칙을 져버리고 있다면 국민은 계약을 유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책임 추궁은 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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