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쎈 수위로 쎈 주제를 다뤄 보겠습니다. 직장생활을 15년 가까이 하며 나름 다양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업무도 신사업이었고 각종 TF에 불려 다니기도 했고, 그때마다 많은 사람과 합을 맞춰야 했습니다. 그중 참 기억에 남는 타입이 있으니 바로 분노조절장애 동료입니다. 같이 일했던 동료인데, 이분은 회사 내 정말 유명했습니다.
외부와의 통화를 하며 쌍욕은 기본입니다. 통화가 끝난 후에도 씩씩대며 분을 삭이지 못했고 언제나 큰소리로 대화했습니다. 윗사람에게도 틱틱대고, 아랫사람은 짓눌러 뭉개버리기 일쑤였죠. 업무협의를 이분과 하는 것은 실로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했습니다. 회의실에서는 늘 고성이 오갔고, 옆자리 동료는 신경쇠약에 걸릴 지경이었습니다.
항상 화가 나 있는 사람이 옆에 있다고 상상해 보시면 조금 이해가 가시려나요. 주니어 시절, 이분을 보며 저는 겁에 질렸더랬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지내면서 관찰하니 재미있는 현상이 보였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이 사람을 기피함에 따라 이분의 직장생활은 오히려 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루하루 불안하고 치열한 스타트업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BM이 안정적이고, 시스템으로 회사가 돌아가는 중견 이상의 기업에서는 ‘잡음을 일으키지 않으려는’ 직원들의 마인드가 강합니다. 그러다 보니 큰소리가 나고 주목받는 게 싫어집니다. 저잣거리에서 흔히 말하는 변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현상이 시작됩니다.
일을 주는 윗사람도 매일 큰소리로 대드는 이 직원에게 일을 주기 싫고, 아래 직급 사람은 업무 하다가 뭘 물어보기가 두려워집니다. 시키는 걸 거절하기도 무섭습니다. 이러니 큰소리로 깽판을 치면 칠수록 본인에게 일이 안 오는 현상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묵묵히 맡은 바 소임을 싫은 소리 안 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는 일이 더 가는 현상이 생기고요.
물론 이렇게 난동을 부리는 직원의 회사 내 평판은 바닥을 칩니다. 그런데 보수적이고 구조조정이 흔하지 않은 회사라면 평판은 무시하면 그만이 됩니다. 평판 하락으로 겪는 불편보단 일이 없는 편안함이 더 크니까요. 처음에는 이런 사람들에게 약간 연민을 가졌더랍니다. ‘그래… 본인도 계속 저러면 얼마나 힘들까. 저러다 말겠지. 내가 좀 더 하자.’라는 생각을 했죠.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회사 내에서 보는 분노조절장애 동료들은 대부분 자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매우 잘 인지했으며, 일부러 그러는 교활한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지X을 하면 할수록 내가 편하다’는 명제를 깨우친 것이죠. 원인을 깊이 고민해 본다면 이는 한국 사회 전반에 있는 아래의 기조에 따릅니다.
- 목소리 큰 놈의 말이 더 정당성 있어 보인다(떳떳하니까 목소리가 클 것이라는 추정).
- 같이 목소리 키워 싸우고 구설수 & 평판 데미지를 받느니 조용히 넘어가려는 사람이 더 많다.
- ‘변을 치우려면 내 손이 더러워지니 싫다, 누가 치우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분조장 동료 대처법
살면서 몇 명의 이런 타입 동료를 만났고 매우 괴로웠습니다. 이 사람과 충돌할 때마다 제가 부족해서라 여기며 저를 탓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존감도 많이 낮아졌고요. 그러나 점차 나이를 먹으며, 이런 타입의 동료 대처법이 생겼습니다. 없었으면 좋겠지만 혹 이런 동료를 만난 분이라면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공유합니다.
1. 가능하면 아예 엮이지 않습니다.
가능하면 업무적으로 최대한 거리를 둡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안 엮이는 게 최선입니다. 업무적으로 엮일 개연성을 차단하는 게 제일 좋겠죠.
2. 엮이면 관리자와 인사팀에 어필합니다.
일단 같이 일을 해야 할 상황이면 관리자에게 수시로 어필하고, 인사팀에도 피드백을 줍니다. 단순히 ‘난 저 사람이 싫어요~’ 식의 어필은 소용없습니다. 개인의 감정으로 연결되면 어필한 사람의 대인관계 능력도 같이 도마 위에 오르게 됩니다. 상대방으로 인해 회사가 업무적으로 피해가 생기는 점을 찾아 어필해야 합니다.
고객이나 협력사와의 관계에 영향이 있다든가 팀워크가 망가지는 사례면 좋습니다. 가능하면 외부인의 증언, 메일을 준비하거나 문제 동료의 육성을 녹취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중요한 건 인사팀 입장에서 직원 고충처리가 아닌 ‘처리해야 할 업무’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입니다. (매우 중요)
3. 싸운다면 철저히 이겨야 합니다.
웬만하면 2에서 끝나는 게 좋습니다만 인생사 그리 쉬울 리가 없죠. 해결이 안 될 경우 괴로운 회사생활이 계속됩니다. 자발적 분노조절장애 동료는 자연치유가 불가능합니다. 최고의 치료 약은 그냥 마동석입니다. 얼마나 놀랍도록 순해지는지 모릅니다. 언급했듯 이러한 류의 사람들은 비열하기 때문에 강자 앞에 비굴하고 자신을 기피하는 동료들 위에 군림합니다. 압도적으로 강한 자가 찍어 누르지 않는 한 제 버릇 개 못 주죠.
분조장 동료와 싸우는 방법
계속 봐야 하는 상황이라면 일전을 준비해야 합니다.
1. 여론은 반드시 내 편으로
분노조절장애 동료의 평판은 좋을 수가 없기 때문에 이는 쉬운 조건입니다. 자신의 주변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수시로 체크하세요. 주로 듣는 말이 “어휴 어떡하니. A과장과 함께라니 정말 힘들겠다”라든가, “야야 무시해 그 사람 원래 그래” 등의 말을 듣는다면 청신호입니다.
A과장 대비 본인이 더 일하고, A과장보다 주변에 더 잘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주변 동료들에게 본인이 이용 가치가 더 있어야 합니다. 결국 사람은 다 자기 위주로 삽니다. 막판에는 자신에게 도움이 되느냐만 보입니다.
2. 권력과 상대방과의 관계를 주시해야
분노조절장애 동료가 회사에서 버티고 있는 배경에는 상관들과의 관계 등이 좋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른바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이죠. 먼저 믿는 구석에 대해 상세히 파악하기 바랍니다. 그 동료가 누구와 친한지, 왜 친한지 알아두어야 합니다.
살면서 별별 이유를 다 보았습니다. 알고 보니 같은 아파트 주민이어서 인사 담당 상무가 문제 직원을 챙겨주는 것을 본 적도 있습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입니다. 한국 사회의 인간관계 네트워크는 변화무쌍합니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그 동료를 살펴야 합니다.
3. 피해자 간 연대를 생성
저런 동료라면 나와 같은 피해자가 반드시 있습니다. 그 동료의 행적을 참고하여 피해자 간 교류와 연대가 필요합니다. 상대방이 악랄하면 할수록 많이 있으니 반드시 이야기를 나눠보세요. 이는 특정인에 대한 뒷말과는 다릅니다. 내가 살고자 하는 발버둥이라고 봐야죠.
준비되었다면 칼을 듭시다
사무실에서 그 동료가 또 욕설로 ‘이 구역의 미친X는 나야’를 시전하면 같이 큰소리로 맞받아칩니다. 필요하면 책상을 내려치거나 물건을 집어 던지는 액션도 좋겠습니다. 같이 욕을 하는 것도 (너무 가지 않는다면) 추천합니다. 문제를 키우고 끝까지 가보겠다는 태도를 보입니다.
주변에서 ‘얼마나 쌓였으면 저렇겠어’라고 해 주는 한편 조직 차원에서 그냥 넘어가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야 합니다. 어중간하게 끝나선 안 됩니다. 가능한 한 문제 직원의 인사 발령까지 되도록 사태를 키우는 게 좋습니다.
학창 시절 누군가를 괴롭히는 패턴을 보면 매우 단순합니다. 처음에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툭툭 건드립니다. 가해자는 본인은 장난입니다. 피해자의 감정 상태까지는 보이지도 않습니다. 몇 번 건드렸을 때 가만히 있으면 가해자의 머릿속에는 “얘는 이런 취급을 해도 되는구나”라는 기준점이 생깁니다.
피해자가 좋은 말로 자기를 건드리지 말아 달라고 해 봐야 가해자에게는 들리지 않습니다. 자신만의 기준점이 명확하니까요. 슬프게도 이는 성인이 되고 회사생활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여기서 이를 끊는 방법은 하나. 지렁이도 꿈틀하는 것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학교에서도 가해자의 괴롭힘이 선을 넘은 시점에 커터칼이라도 들어서 상대방에게 들이대며 ‘날 건드리면 너도 피를 본다’고 각인하면 가해자를 제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선생님을 통해 대화로 해결하는 게 항상 정답이라면 왜 자살하는 학생들이 속출할까요.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싸우지 않으면 바보가 되는 게 사회입니다.
이렇게까지 쓰는 것은 보고 느낀 제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에서의 인간관계는 친구가 아니고 이해타산에 기반한 관계일 뿐입니다. 분노조절장애 동료로 인해 본인의 마음을 다치는 일이 없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당신이 행동하지 않는 한 이 문제는 절대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적극적으로 싸우고 자신의 권리를 찾지 않으면 영원히 손해 보는 게 사회입니다.
일요일 저녁마다 회사에 가기 싫은 이유가 다들 있으시겠지만, 인간관계도 큰 비중을 차지할 거라 봅니다. 저는 저런 동료와 있었던 기간이 너무 힘들고 싫었습니다. 그래서 다소 과격한 표현으로 글을 쓰게 되었네요. 주변 동료들의 평판에서 당신이 문제가 없다면, 마음 다치지 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자기 행복은 자기가 얻어내야 합니다. 비슷한 고민으로 고통을 받는 단 한 명이라도 이 글이 도움이 된다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