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보사 사태는 ‘스캔들’이고 ‘제2의 황우석 사태’”라는 시민사회단체의 주장에 어깃장을 놓을 사람은 더 이상 없다. “전혀 몰랐다”던 코오롱생명과학(이하 코오롱)의 주장은 거짓이었고, 허가 당시 제출한 자료는 허위로 작성한 것이었다. 미적대던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비로소 인보사 허가를 취소하고 코오롱을 검찰에 고발했다. 시민사회단체는 코오롱과 식약처 모두를 검찰에 고소·고발한 상태다.
지난 6월 5일 식약처는 인보사 투여 환자에 대한 안전관리대책을 발표했다. “안전성에는 큰 우려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지만, 만약의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비하여 (중략) 장기추적조사 등을 실시하기로” 했다. 코오롱으로 하여금 모든 투여환자(438개 병·의원 3,707건 투여)에 대해 이상반응 여부를 15년간 장기추적조사 및 분석하여 식약처에 정기 제출하도록 했으며, 이외에도 식약처가 추가로 자체 조사와 분석을 실시하겠다고도 밝혔다.
시민사회단체는 사태를 야기한 주범인 코오롱과 식약처는 환자 관리의 자격도 능력도 없고, 코오롱과 식약처가 각각 관리를 맡길 임상시험수탁기관(CRO)과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은 사태의 성격에 비추어 볼 때 적절하지 않은 곳이라고 비판했다.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가 직접 나서서 환자 코호트를 구성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현재까지 복지부는 인보사에 대한 국가 연구개발 지원 규모(총 147억 원으로 최종 확인) 보도 해명 외에는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4일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보도가 파장을 일으켰다. “(미국에 본사를 둔 초국적 제약사) 화이자는 자신들의 블록버스터 약(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제 엔브렐)이 알츠하이머를 예방할 수 있다는 단서를 가지고 있었다. 왜 그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을까?”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국내에서도 몇몇 언론이 이 보도를 인용하면서 논쟁이 이어졌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화이자는 보험청구 자료의 자체 통계분석 결과 엔브렐의 알츠하이머 예방 효과를 확인했지만, 엔브렐이 특허 독점 만료를 목전에 두고 있기 때문에 굳이 비용을 들여 임상 시험을 수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특히 문제가 된 것은 자체 통계분석 결과 역시 공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보도 이후 화이자는 자신들의 결정이 “재정적 동기가 아닌 과학적 기준”에 근거한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국내에서는 화이자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는 한편, “특허 연장을 해준다면 모를까, 회사 입장에서는 당연한 결정이다”, “정 필요하다면 정부가 해야 한다”와 같은 주장, “적응증이 확대되면 독점기간이 연장될 수 있는데, 시도하지 않은 것은 해당 효과가 신통치 않다는 의미”라는 관심법적 해석도 나왔다.
대부분 국가에서 의약품 생산은 영리기업에 의해 주도된다. 정부는 허가 심사 등 규제자의 역할과 함께, 연구개발 지원 등 막대한 지원자의 역할도 담당한다. 일련의 과정에서 시민과 환자가 개입할 여지는 전혀 없지만, 문제가 발생하면 그 피해는 오롯이 환자와 시민의 몫이다. 영리기업과 정부 중 누구에게 어떤 책임을 묻고 요구해야 하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엄격한 규제를 담당해야 할 정부가 산업발전을 명분으로 규제 완화를 선도하는 마당에 누굴 믿겠나? 한국 식약처의 ‘(도덕성을 포함한) 실력’이 인보사 사태에 얼마나 기여를 했는지는 검찰 조사 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미국 식품의약청(이하 FDA)이라고 크게 다른 상황인 것 같지는 않다. 나라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근본적으로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난 5월 미국의사협회지(JAMA Network Open)에는 “FDA가 ‘시판 후 임상’ 요건 없이 승인한 의약품의 허가 후 임상 시험 분석”이라는 논문이 게재됐다. 저자인 미국 예일대 ‘연구 진실성과 투명성을 위한 공동연구’ 팀은 FDA가 ‘시판 후 임상 연구’ 요건 없이 의약품을 승인하는 경우는 어떤 경우인지, 제약사들이 허가를 받은 뒤 안전성이나 유효성을 모니터링하기 위한 시험을 ‘자발적으로’ 수행하고 그 결과를 보고하는 비중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고자 했다. 인보사 사태에서도 보듯, 의약품 허가와 시판 후에도 안전성이나 유효성 문제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중요한 탐색이다.
분석 결과, 2009년부터 2012년까지 FDA는 110개 의약품을 허가했는데, 이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37개 의약품이 ‘시판 후 임상 연구’ 요건 없이 승인되었다. 이 중 3분의 1 이상(14개)이 우선 검토 대상, 3개는 신속승인 대상이었고, 41%(15개)는 희귀의약품 지정을 받았다. 즉 여러 가지 이유로 완화된 규제를 적용받은 약들이 ‘시판 후 임상 연구’ 요건도 면제받은 것이다.
그런데 FDA 허가 시 요건이 아니었음에도, 전체의 84%(37개 중 31개)에서 적어도 한 번 이상의 허가 후 시험이 자발적으로 수행되었고, 생산된 안전성이나 유효성 자료가 보고된 것으로 확인됐다(‘ClinicalTrials.gov’ 사이트에 등록). 임상 시험 횟수로는 총 600회였다. 그렇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걸까?
그러나 이 600회의 시험 중 오직 12% 만이 최초 허가 시 적응증을 평가하고 있었고, 나머지는 대부분 적응증 확대(61%) 내지는 대상 집단 확대(20%)를 위한 것이었다. 이마저 대부분은 무작위배정이나 눈가림 없이(각각 전체의 60%, 76%), 대조군 없이(전체의 64%) 수행됐다.
즉 제약사들은 신약 허가 후에도 안전성이나 유효성 자료를 생산하는 시험을 수행하기는 하지만, 이는 해당 의약품을 이미 사용하고 있는 환자들을 위한 안전성이나 유효성 모니터링 목적이 아니라, 이미 허가받은 기준 외에 시장 확대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다. 언뜻 화이자의 엔브렐 사례와 상반된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영리기업이 비용 대비 수익 최대화 동기로 작동함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같은 구조의 다른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뭘까? 연구팀은 FDA 허가 시 ‘시판 후 임상 시험’ 요건, 특히 최초 적응증에 대한 추가적 근거생산 요건을 부과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일견 당연해 보이면서도, 김빠지는 제언이다. 당연해 보이는데 하지 않고 있다는 데서 한 번,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시민과 환자 입장에서 요구할 수 있는 건 이 정도뿐인가 하는 생각에 또 한 번.
‘당연한’ 일과 ‘당연하지 않은’ 일 사이, 영리기업의 책임과 정부의 책임 사이, 분명한 해답은 없다. 하지만 코오롱과 화이자의 사례를 보면, ‘영리제약사의 생산 + 정부의 규제’라는 생각은 지나치게 순진한 발상임이 틀림없다. ‘혁신’ 신약이 아니라, 의약품 생산 구조의 ‘혁신’이 시급하다.
원문: 시민건강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