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상 갑과 을의 이해관계
갑질이란 말의 뉘앙스가 간혹 삽질 또는 헛발질로 인식되기도 한다. 갑의 입장에서 시키는 요상한 일 등이 초래할 결과의 대부분 을은 안다. 그 일로 인해 나타날 결과는 애초에 얻으려는 목적 및 목표와는 동떨어진 것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알면서도 대항할 힘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할 뿐이다. 그렇다면 갑은 을보다 멍청한가, 멍청한 척을 하는 것인가.
갑과 을은 늘 함께할 수밖에 없는 특이한 관계다. 조직끼리, 혹은 조직 내부 권력 관계이든 간에 둘 중 하나만 사라져도 생존이 불가하다. 하나가 계속 나름의 갑 또는 을로서의 역할을 해야만 존재의 목적이 유지된다. 그만큼 비즈니스는 관계에 의해 만들어진 네트워크이고, 그 네트워크가 계속 작동하기 위해서는 있어야 할 곳에 꼭 갑 또는 을이 위치해야 한다.
단 을-갑(을)-갑(을)-갑(을)-갑(을)-갑, 연속적 관계 속에서 비즈니스는 굴러간다. 모든 비즈니스는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시장의 어떤 위치에서 보는가에 따라 갑과 을의 역할이 모두가 부여되기도 한다. 누구를 만나 어떤 거래를 하는가에 따라 정해진 갑과 을의 역할과 책임이 다르지만,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본질은 비즈니스상 형성된 갑과 을의 관계 속 목적 수행에 답이 있다.
갑의 역할과 책임
- 현명한 을을 선택하는 것
갑이 할 일은 간단하다. ①우리의 비즈니스 목적에 부합하는 을을 고른다. 대신에, ②함께 일하기 쉽고, 편하고 적은 비용으로도 일할 수 있는 을을 고른다. 그리고, ③만들어진 관계를 지속 유지해 신뢰 구축에 힘쓴다. 또한, ④그들도 나름대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것이다.
현명하다는 것이 다소 상대적일 수 있다. 대신에, 갑의 필요에 따라 각각 다르게 평가될 수 있는 부분이다. 을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얼마나 귀찮고, 더럽고, 위험한 일인가에 따라, 혹은 얼마나 어렵고, 전문적이고, 누구나 할 수 없는가에 따라 다르다.
물론 후자라고 해도 갑과 을의 관계가 뒤바뀌지 않는다. 단지, 갑이 보여주는 태도가 달라질 뿐이다. 일의 성격상 어렵고, 전문성이 필요하다면, 을이 가진 전문성을 위해 지불하는 비용 대비 최대한 많이 끌어내기 위한 노력을 갑도 한다. 그리고, 그것이 그 일의 목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가 아닌가에 따라 다를 뿐이다.
따라서 단순히 이용만 하려고 하면 큰코다친다. 갑은 그들의 비즈니스상 필요에 의해, 누군가의 공급을 받기 위한 계약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계약도 계약 이행도 다음 계약을 염두에 둔 선택이어야 한다. 그것이 곧 신뢰의 비즈니스로 가기 위한 세심한 배려이기 때문이다.
일회성인가 아닌가, 혹은 전문적인가 아닌가에 따라 각각 다른 태도를 보이면 을도 갑을 신뢰할 수 없다. 단순 땜질을 위해 누군가에게 이용당하는 것만큼 뻔히 눈에 보이는 짓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계약 조건 및 내용에 관계없이 일관된 존중의 태도를 보여줘야 한다. 단 한 번뿐이라도 을에게 좋은 기억을 남겨주려는 갑의 배려는 더 많은 효익을 불러올 수 있다.
을의 역할과 책임
- 우리를 인정해 줄 갑을 찾는 것
- 갑에게 선택받아야 하는 것
- 갑의 만족을 위해 노력하는 것
을의 일은 생각 이상으로 복잡하다. 목적만 놓고 보면, 계약을 따고, 이행하는 것으로 간단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을의 일은 그 자체로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과정이자 성장을 위한 과정상의 단계, 또는 누구와 몇 개의 계약을 얼마 동안이나 지속했는가에 따라 우리가 시장(갑과 을의 관계)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평가할 수 있는 잣대이기도 하다.
그만큼 을이 특정 분야에 대해 갑보다 많이 알아야 한다. 일 자체의 전문성도 있지만, 그 전문성에 의해 얼마나 시장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경쟁력(우위), 그로 인해 어떤 성장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성장 가능성도 함께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심지어 해당 업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알아야 한다. 일 자체의 전문성도 있지만, 업계 전체의 동향과 시장 흐름의 방향성 등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선택을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직접적 경쟁 관계에 있는 이들이 무엇에 의해 우리 고객을 빼앗을 수 있는지에 대해 쉼 없는 검토와 대응도 함께 필요하다.
을은 갑의 성장과 자신의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시장에 계속 존재하기 위해서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밖에 없다. 자신의 역량을 직접 관계를 맺은 이들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 과정에서 축적한 영향력을 시장 및 관련 업계에 지속적으로 내뿜어야 한다. 따라서 팔방미인으로서의 역할이 요구된다.
누가 더 멍청한가
갑과 을 중에 당연히 일의 바운더리는 갑보다 을이 훨씬 넓고 깊을 수 있다. 그렇다면, 갑과 을 중에 누구의 말을 듣고 결정하며, 신뢰관계를 깨뜨리는 멍청한 짓을 하는 쪽은 누구일까?
가설 1. 비즈니스에서 갑은 멍청할 수밖에 없다.
세상에 멍청한 사람은 없다고 본다. 단지 멍청한 행동을 할 뿐이다. 우리는 멍청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잠시 멍청이라고 볼 뿐이다. 그리고 그런 행동을 반복하는 이들이 결국 진짜 멍청이가 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자신들이 멍청이인 줄 잘 모른다.
대부분 한 번쯤의 실수로 그치는 것이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행동을 하면서 별 의심을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결과가 좋을 때 말이다. 당연히 결과가 좋았으니, 현시점에서 평가한 과거의 멍청해 보이는 행동은 용서가 된다. 심지어 그 결과의 주요 원인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이때가 되면 이미 멍청해진 것이다. 반복해서 과거의 방법들을 답습해, 새로운 것을 아무리 만들어낸다고 해도, 이미 구조와 과정이 비슷해져 버린 비즈니스의 근본적 혁신은 물 건너간 지 오래다. 바라는 결과로부터 당연히 멀어지고, 그들은 과거의 어떤 행동이 멍청한 짓이었는지 분간조차 가지 않아 진퇴양난의 상태에 빠진다. 따라서 적어도 태어날 때부터 갑은 멍청하지는 않다.
가설 2. 비즈니스에서 갑은 멍청한 척을 할 뿐이다.
멍청한 척은 영리한 이들이 보이는 행동이다. 그 행동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멍청해 보일 수 있음을 안다. 하지만 그보다는 지금 일의 목적이 더욱 중요하기에 중요하지 않은 것을 내려놓을 뿐이다. 하나를 주고, 둘 이상을 받기 위해, 계약상 우위를 점했음에도 을로부터 그 이상을 끌어내기 위한 일종의 책략일 뿐이다.
멍청한 척을 하는 갑이 주로 사용하는 무기는 부탁과 질문이다. 멍청한 척을 하는 갑을 만나봤는가. 개인적으로 기억되는 몇몇의 갑이 있다. 나에게 제공받는 서비스가 충분하지 않았던 탓인지, 더 많이 제공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인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끊임없이 질문으로 괴롭혔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혹독한 트레이닝(?)은 성장의 기회가 되었다. 오히려 을이 당할 뿐이다. 갑이 바라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은 그들을 만족시켜야 현 계약은 물론이고, 다음 계약까지 따낼 수 있다는 기대에서 나타나는 행동이다. 그래야만, 내가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상황은 없던 힘도 끌어낸다. 누군가(고객)에게 전해줄 새로움을 전해주려는 갈망과 절박함 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없던 힘이 생겨 을의 본질을 흐리기도 한다. 잠시 멍청한 척으로 영리함을 드러낸다. 이는 을에게 요구하는 비용 이상의 효과를 내기 위함이 많다.
가설 3. 비즈니스 구조 및 상황 때문에 갑은 점차 멍청해지는 것이다.
멍청한 갑이 있을 수 있지만, 그들은 처음부터 멍청하지 않았다. 단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과거의 어떤 행동이 불러온 우연히 불러온 좋은 결과에 취해 반성 다운 반성을 하지 않아서 나타난 결과’다. 과거 성공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다른 시도를 위한 통로를 스스로 막고, 정해진 목표를 향해 몸을 던질 뿐이다. 그렇게 결과론적으로 멍청해진 것뿐이다.
또한, 시장이 가진 특수한 구조(상-하위) 때문이기도 하다. 갑과 을은 서로 비즈니스 논리도 다르다. 그들이 추구하는 방향도 다르고, 우선순위도 다르다. 단지 잠시 또는 중장기적으로 함께 나아갈 뿐이다. 따라서 계약 속에서 Giver와 Taker가 결정되고, 자연스럽게 그들끼리 주고받아야 할 가치가 결정된다. 표면상으로 주는 이와 받는 이 간의 관계만 유지되면 되기 때문에 갑의 필요에 의해 을의 세부 활동이 결정될 수 있다.
시장 상황이 좋으면 갑은 더욱 멍청해진다. 이른바 호황에 의한 효과라고도 볼 수 있다. 뭘 해도 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을을 보는 눈이 관대하다. 유연하게 해보지 않은 방법을 시도하는 것은 물론이고 새로운 일을 벌이면서 모험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때 조직의 성과와 관계없이 개인의 이익이 결부된 이상한 사업(일)이 벌어지면서 조직은 걷잡을 수 없는 멍청함에 빠진다. 비즈니스 구조 및 상황 등을 갑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면서부터 멍청한 짓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선택이 갑은 스스로 멍청함을 증명하는가
‘더욱 다양하게, 많이, 깊이 있게, 전문성 있게’ 등 어떤 수식어를 갖다 붙인다고 해도 갑이 을을 압도할 수 없다. 대신에, 갑이 유일하게 앞설 수 있는 것이 선택권이다. 그 선택권을 어떻게 발휘하는가에 따라, 을이 가진 특성을 활용해 우리 비즈니스에 필요한 영원한 파트너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똑똑한 갑은 자신들의 비즈니스의 목적을 위해 적절하게 이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상생의 관계로서 지속성을 택한다. 그들의 비즈니스 운용 원칙에 파트너와 관련된 조항이 있어 어떤 을과 일해야 하는지, 그들과 어떤 수준의 관계를 유지해야 그나마 선을 넘지 않고 소기의 목적을 꾸준하게 달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원칙 등이 현장에 자리한다.
갑의 멍청함은 위와 반대의 원칙에 의한 결정을 할 때 드러난다. 비로소 똑똑한 이들의 멍청한 짓이 시작되는 것이다. 기이하게도 이때 갑은 스스로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결정 그 자체에 부여하거나 단순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답습하는 등의 모습을 보인다. 자기부정 또는 제대로 된 반성이 없이 무조건 적인 도전을 일삼고, 이때 선의의 피해자(계약상 을)가 나타나는 것이다.
현명하게 일을 하기 위해
- 갑: 현명한 결정을 지속적으로
- 을: 현명한 결정을 유도하는 것으로
갑의 입장에서는 최적의 파트너십을 위한 파트너 선정의 원칙과 함께, 지속할 수 있는 여럿의 파트너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단순히 독점권으로 만들어, 누군가에게 맡기는 등의 모습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아무리 뛰어난 을과 파트너를 가진다고 해도, A부터 Z까지 모두 잘하는 이는 없기 때문이다.
甲, 자신들의 비즈니스 목적에 부합한 업무의 중요도에 따른 우선순위, 그 안에 업무상 부분별 파트너들로부터 얻어야 할 내용, 그 내용에 대해 최적의 답을 제공해줄 수 있는 을의 리스트, 이들을 평가하기 위한 방법과 현 순위 등을 꾸준하게 업데이트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들과의 실질적 궁합을 간간이 확인해보는 것이다.
을의 입장에서는 맺고 싶은 파트너의 선별, 이미 맺은 파트너를 위한 최적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단 자신들의 회사 브랜드에 누가 되지 않도록 관계를 맺을 시에 자신의 전문성을 고하고, 서비스 퀄리티를 떨어뜨리지 않는 선에서 적절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
또한, 여러 갑과의 관계 속에서 회사의 역량이 분산될 수 있으니, 누구에게 타이트하거나, 느슨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역량을 집중 및 분산할 것인지 가늠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른바 주어진 비즈니스 상황 및 타이밍 등에 따라 가깝고 멀고 등을 그때마다 다르게 조절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위와 같이 일하는 갑 또는 을은 전체 시장을 놓고 볼 때 오랫동안 시장에 존속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시장 본류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나름의 성장을 통한 생존을 추구할 테니 말이다. 갑은 정직함과 전문성을 갖춘 을을, 을은 신뢰와 파트너십의 갑을 선택한다. 그리고 시장은 결국 그런 이들만이 남는다.
원문: 이직스쿨 김영학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