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접한다. 모든 사건의 뒤편에는 프리메이슨이나 로스차일드 가문이 있을 것이라고 설파하는 기승전 음모론자, 아직도 타블로가 스탠퍼드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고 믿는 타진요, 단군이 아시아를 통일했으며 한반도가 중국을 지배했다고 믿는 환단고기 옹호론자. 이들은 믿고 싶은 것만 믿으며, 본인 주장에 유리한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집하는 확증 편향에 빠져 있다.
최근에는 이 분야에 또 다른 집단이 추가됐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지구 평평론자(Flat earther)들이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2018)>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지구평평론자(flat earther)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본격적인 ‘평평지구설’은 미국 워싱턴 근처에 사는 마크 서전트의 유튜브로부터 시작되었다. 마크의 주장이 믿을 만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유튜브 스트리밍과 팟캐스트를 통해 그의 주장을 널리 알리기 시작했다. 지구평평론자들은 지구가 평평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과학적 실험도 하고, 그들만의 데이트 커뮤니티도 있다. 현재는 전세계적으로 회원수가 약 500만 명을 넘는 거대한 연합(The Flat Earth Society)으로 발전했다. 지구평평론자만의 지구가 있는 셈이다.
다큐멘터리를 보다 보면 도대체 저 사람들은 왜 저럴까, 하며 웃다가도 속이 까맣게 답답해진다. 본인만의 음모론에 빠져 세상의 진실을 외면하는 우리 주변의 비슷한 사람들이 슬쩍 떠오르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는 지구평평론자로 상징되는 이 시대 모든 유사평평론자들, 확증편향에 갇힌 사람들이 어떻게 그들만의 큰 커뮤니티를 구축할 수 있었는지 뒤쫓는다.
지구평평론자들은 어떻게 500만 명의 거대한 커뮤니티가 되었는가
기초적인 지구과학 지식만 있더라도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기초 교육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잘못된 지식을 진실로 믿을 확률이 높다.
마크 서전트는 처음 유튜브에서 지구가 평평하다는 증거 중 하나로 비행기들이 지구 전체를 돌지 않는 특정 지점이 있다는 것을 다룬다. 처음 그의 말을 비웃으며 유튜브를 보던 사람들은, 그럴싸하게 제시된 근거에 ‘정말 지구가 평평한가?’ 넘어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해당 영상을 본 천문학자는 단 1분 만에 해당 영상이 조작된 것임을 간단한 검색을 통해 찾아낸다. 기본적인 물리학적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은 틀린 지식에 쉽게 선동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지구평평론자들이 잘못된 신념에 빠지는 이유로 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를 든다. 능력이 없는 사람은 잘못된 결정을 내려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지만, 지식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역사적 지식이 부족한 사람이 자민족 우월주의에 빠지는 경우 환단고기를 믿을 확률이 높고, 보건학적 지식이 전무한 사람일수록 증명되지 않은 민간치료를 신봉하며 백신을 거부하는 안아키가 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지식이 부족한 사람 모두가 허황된 신념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왜 그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할까?”가 아닌 다른 질문을 던질 시점이다. 이런 질문 말이다.
어떻게 그들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는가?
이 지점에 주목하면 거대한 평평지구론자의 커뮤니티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다큐멘터리는 어쩌면 그들은 사회에 소속되지 않고 도태된, ‘버림받은 자’일 확률이 높음을 암시한다.
시인 정한아는 “따로따로 혼자 유폐되어 있는 사람들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위협적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를테면 일베 같은 것도 시작은 고독하게 유폐되어 있는 사람들끼리의 우연일 모임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정체성을 공유하기 시작할 때, 커뮤니티는 급속도로 커진다. 그들은 지구평평론자라는 새로운 개성과 공동체를 부여받았고, 이는 곧 그들의 정체성이 된다.
새롭게 만들어진 대안 우주 안에서 지구평평론자들은 서로 교감한다. 캠핑도 가고, 포럼도 가고, 데이트도 한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과학적 진실이나 정치적 올바름은 중요하지 않다. 그러니 그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모든 증거를 부정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멸과 무시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자기들끼리 헛소리하고 다니는 것을 막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하지만 그들의 잘못된 지식과 사고방식은 사회에 악영향을 끼친다.
안아키의 한의사는 “홍역이나 수두는 자연적으로 치유되므로 예방접종을 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주장해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일으켰다. 안아키의 회원들은 한의사의 주장을 맹신했지만, 해당 지식이 퍼지면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아이는 본인은 물론이고 그 주변 아이들이 전염병에 걸릴 위험을 높인다. 이와 같이 ‘유사 지구평평론자’들의 주장은 비평적 사고를 가뿐히 생략하고, 과학적 원칙과 전문 지식을 무시하며 사람들에게 직∙간접적인 해를 끼칠 수 있다.
다큐멘터리는 그들을 단순히 경멸하고 무시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들은 단순히 기초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잘못된 신념을 갖게 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사회로부터 고립된 버림받은 자일 확률이 높다. 그들을 경멸로 대하면 그들은 자기만의 평평한 지구 안으로 더 침잠한다.
다큐멘터리에 등장했던 과학자 한 명은 다른 동료 과학자들에게 지구평평론자들을 비웃지만 말고, 그들의 멘토가 되어주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자고 조언한다. 어쩌면 모든 것을 의심하고 규범을 거부하는 지구평평론자의 태도야 말로, 과학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잠재적 과학자가 될 수 있다는 것.
태극기 집회에 참석하는 박사모의 멘토가 되는걸 상상하면, 쉽지는 않은 이상적인 말로 들린다. 그래도 ‘지구평평론자’들을 무시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네덜란드의 피터 코헨 교수는 우리가 알코올이나 마약에 중독되는 이유는 정서적 교류의 대안을 찾기 위해서라고 밝힌 바 있다. 사람들에게는 타인과 교류하려는 타고난 욕구가 있고, 행복하고 건강할 때 서로 결속하고 관계를 맺는다. 하지만 세상으로부터 고립되거나, 삶의 무게에 억눌려 교류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은 안도감을 찾기 위해 정서적 교류를 대신할 무언가를 갈구한다.
그건 도박이 될 수도, 성인물이 될 수도, 코카인이 될 수도, 일베가 될 수도 있다. 심지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무시하고 ‘평평한 지구 협회’의 회원이 될 수도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둥근 세상 안의 평범하고 정상적인 결속이다.
원문: 사과집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