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남편은 미니애폴리스에 사는 레즈비언 친구들의 두 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입니다. 제 친한 대학 친구는 이혼했지만 아이를 원했고 그녀와 저는 함께 딸을 가졌습니다. 친구와 딸은 지금 텍사스에 살지요. 그리고 저와 제 남편은 저희와 늘 함께 사는 아들이 하나 있어요. 제가 생물학적 아버지고, 대리모는 라우라였습니다. 미니애폴리스에 사는 그 올리버와 루시의 레즈비언 어머니였지요.
나는 사실 어떤 말인지 이해가 안되서 몇 번을 곱씹고, 머릿속으로 가족 관계도를 한참 그렸다. 『한낮의 우울』로 유명한 작가 앤드류 솔로몬의 가족 이야기다. 앤드류 솔로몬의 가족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가족과는 전혀 다른 가족 형태로 구성되었다. 동성애, 대리모, 비혈연으로 구성된 가족 관계.
정상 가족. 일반적으로 이성애를 기반으로 한 부부의 출산 혹은 입양의 형태로 이루어진 가족을 말한다. 한국 가족의 기본법이 되는 「건강가정기본법」은 그 적용대상을 혼인, 혈연, 입양이라는 관계를 기초로 성립되는 가족(제3조 1항)을 대상으로 함으로써, 여기에 속하지 않는 실재하는 다양한 가족, 가족 형태를 예방해야 할 존재(제 9조 – ‘가족 해체 예방’)으로 본다.
건강한 가족은 이성애, 비장애인으로 구성된 생산적인 가족이다. 그 외 비생산적인 가족은 “예방”의 대상,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 된다. 이런 사회에서는 앤드류 솔로몬의 가족은 해체에 해체를 거듭한, 거의 큐비즘에 가까운 가족이다. 아니, 결혼 자체를 못 했겠지.
세 자매의 국민청원
얼마 전 강서구 주차장 사건을 기억하시는지. 아파트 주민인 40대 여성이 잔혹하게 죽은 상태로 발견되었고, 곧 범인은 전남편인 김 씨로 밝혀졌다. 그리고 다음 날, 피해자의 딸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아빠의 사형을 요청하는 청원 글을 올렸다. 딸은 제2, 3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아빠를 사형해달라고 청원했다.
저희 아빠는 절대 심신미약이 아니고 사회와 영원히 격리 시켜야하는 극악무도한 범죄자입니다. 제2, 제3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사형을 선고받도록 청원 드립니다.
내가 이 청원을 보고 처음 들었던 생각은, 공감이었다. 어렸을 적 엄마를 향한 아빠의 가정폭력을 숱하게 목격한 나도 한때 진지하게 아빠의 죽음을 꿈꿨다. 이 감정은 증오와 분노의 끝에서 불타오른 찰나의 감정이 아니었다. 분노가 가라앉은 침착하고 이성적인 상태에서 진지하게 생각한, 내 머릿속에 남아있던 단 하나의 옵션이었다. 이 악연의 고리를 끝내려면 누구 한 명이 죽어야만 끝난다고 느낄 때. 아빠가 죽기 전까지 엄마는 우리를 못 놓겠구나, 이 방법이 최후의 방법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
지금 아빠는 늙고, 현재의 가정은 평온하다. 하지만 이것은 결과론적인 평화일 뿐이다. 가끔은 잠들고 싶지 않은 밤도 있었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그새 고통이 줄어들고 내일에 타협하게 되니까. 이 분노를 잊고 싶지 않았지만, 하루가 지나면 무력히 삶에 적응했다.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지금의 평화는 모든 게 무너지고 난 후 찾아온 폐허의 적막함이자, 시간이 가져다준 망각이다.
고통받는 다수가 모든 게 무뎌질 그 날만을 기다리며 몇 년을 질질 끌어온 세월은 정상적이지 않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정상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쉽게 은폐된다. 더 슬픈 것은 내 주위에 이런 생각을 한 딸들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놀랍지 않은 현실이다.
가족주의가 강한 문화일수록 친족 폭력이 많다. 어디도 아닌 집이 여성에게 가장 위험한 공간이라는 UN의 통계가 최근 공개됐다. 작년 전 세계에서는 8만 7,000명의 여성이 살해당했고 절반 이상(5만 명, 58%)은 파트너나 가족에게 죽임을 당했다. 한국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해 국내 살인사건 5건 중 1건은 남편이 아내를 살해한 경우라는 통계도 확인되었다.
성공회대학교 젠더센터 김순남 교수는 “개개인 구성원보다 집단으로서의 가족을 중시하게 되면 가족 내의 인권, 성 평등, 민주주의에 대해 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상’ 가족에 대한 집착은 현재의 문제를 방치하고 더 나은 가능성을 폐지한다. 그래도 최근에는 이러한 시류에 발맞춰 ‘가정폭력 방지대책’이 강화되며 가정폭력 가해자를 현행범으로 즉시 체포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가해자와의 격리 방안도 보완∙강화되었다. 하지만 가정폭력의 원인인 ‘정상 가족의 신화’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폭력의 굴레는 계속된다.
다양한 ‘비정상’ 가족을 꿈꾼다
가족의 기능을 다시 생각해본다. 현재의 정상 가족을 판단하는 기준은 ‘이성애/비장애인 중심의 4인 가구’, 즉 국가의 생산력에 도움이 되는 ‘생산성’에 있다. 이런 생산성 중심의 가족관은 비생산적인 사람을 배제하며, 그들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당연한 것으로 만든다. 건강가정기본법에서 공표하는 “건강가정”(3조 2항)의 정의를 한번 살펴보자.
건강가정이란, 가족구성원의 욕구가 충족되고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가정을 말한다. 만약 동성 결혼, 친구와의 동거,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1인 가구의 구성원이 그런 가정 안에서 안정감과 유대, 행복을 느낀다면 모든 가정이 행복하고 ‘건강한’ 가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비제도권에 있는 가족들은 배제와 차별이 일상적이다.
육아휴직을 예로 들어보자. 부모가 있는 아이는 한부모 가정의 아이보다 두 배의 돌봄을 받을 수 있다. 육아휴직 수당도 마찬가지다. 맞벌이 육아휴직 모델을 기준으로 육아휴직 급여를 책정하기에 단독 생계부양자인 한부모 가족들은 육아휴직 시에 경제적인 빈곤이나 생활에 어려움이 크다. 동성 커플은 10년을 같이 살아도 병원에서 보호자가 될 수 없다. 휴대전화 가족 할인의 경우, 소비자의 사용패턴이 아니라 단지 특정한 관계 형태에 이익을 주는 비합리적인 차별이다.
- 김순남 교수 인터뷰 「한국에는 ‘정상 가족’과 ‘위기 가족’만 있다」, 경향신문
다양한 비정상 가족이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꿈꾼다. 결혼이라는 제도적 법률혼,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함께 공존하고 파트너십을 맺을 기회를 인정해야 한다.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영국, 프랑스 등은 다양한 유형의 가족 형태와 가족의 비제도화 경향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왔다.
동거와 같은 전통적 결혼이 아닌 관계에 대해서도 이들의 권리와 의무, 책임에 대한 관심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사회를 발전시켜왔으며 결과적으로 높은 수준의 출산율을 유지하고 있다(홍승아∙성민정∙최진희∙김진욱∙김수진, 「1인 가구 증가에 따른 가족 정책 대응 방안 연구」, 서울: 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17).
프랑스의 시민연대협약(PACS)는 동성이든 이성이든 관계없이 두 사람 사이의 결합에 대해 유사 결혼의 형태를 인정한다. 독일의 ‘생활동반자법’은 동성혼에 대해 기혼 커플과 동일한 권리와 의무를 인정하며, 영국의 시민파트너십(Civil Partnership)은 동성 커플을 넘어 이성 ‘커플’에 대해서도 결혼과 유사한 권리를 인정한다. 굳이 결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2014년 진선미 의원이 생활동반자법 발의를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성사되지 못했고, 그 이후 제도권에서는 해당 안건에 대한 논의가 크게 이뤄지지 않았다. 생활동반자법에 대한 활발한 논의와 빠른 도입이 이뤄져야 할 때다.
비혼과 비혼모도 잘 살 수 있는 나라
나는 비혼주의자다. 평생 혼자 살 수도 있고, 마음에 맞는 사람을 만나 동거를 할 수도 있고, 편한 친구와 느슨한 유대감으로 함께 살 수도 있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제도권에 묶일 생각은 없다. 내가 꿈꾸는 미래는 밝지만, 아마 이 삶은 남들보다 비용이 더 드는 삶일 것이다. 부동산 대출을 받을 때 결혼한 부부보다 2배의 금리로 대출을 받을 것이며, 핸드폰 통신사 가격 할인을 받기 위해 제출할 가족 등본도 없을 것이다.
나보다 ‘심한’ 경우도 있다. 나와 친한 지인 중 한 명은 무려 ‘비혼모’를 꿈꾼다. 결혼은 하기 싫지만, 출산과 양육의 과정은 겪어보고 싶다고 한다. 합리적이고 대단한 결정이라고 생각하지만, 얼마 전 자유한국당 송언석 의원의 한부모 가정 지원 전액 삭감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송언석 의원은 “한부모 가정의 어려운 환경과 상황엔 동의하지만, 국가가 책임지는 것을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한국 사회에서 한부모 가정, 심지어 결혼하지 않고 출산한 비혼모 가정은 모든 국가 제도의 우선순위의 최하단에 위치한다. 아직도 뉴스엔 아이를 낳자마자 버리고 도망간 비정한 엄마에 대한 기사가 종종 뜬다. 그 엄마가 비정한가? 아니면 한부모 가정에 대한 예산을 삭감하는 사회가 더 비정한가?
다양한 가족에 대한 지원에는 출산에 대한 사회적 보호도 포함이다. 독일에는 ‘신뢰출산제도’라는 게 있다. 익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여성들이 의료진의 도움 없이 혼자 자녀를 출산한 후 신생아를 살해하는 일이 발생하므로, 신분등록법을 개정해 익명 출산을 합법화하는 것이 요지다. 익명을 원하는 임신 여성이 공인된 상담소에서 익명으로 상담을 받으면서 정신적 안정을 찾고, 의료기관에서 안전하게 자녀를 출산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결국 가족 정책의 지향점은 가족이 아니라 그 구성원인 시민 한 명 한 명의 행복이다. 가족 지위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사회보장의 권리가 제공되고, 각 1인 가구나 동성혼 가정, 비혼모 가정 등 특수한 가정에 대해서는 차별화되어 진행되어야 한다. 개인 한 명 한 명이 살기 좋을 때, 다양한 가정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 정상 가족의 신화에서 벗어날 때, 폭력의 굴레에서 신음하는 여성들이 사라질 수 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시기가 오기를 노력하면서, 비혼을 외친다. 내가 누구와 함께하든, 혹은 함께하지 않든, 경제와 건강, 안전, 주거를 보장받기를 바란다. 지금의 나도 충분히 ‘건강한 1인 가정’이니까.
지금 사람들이 ‘전통적인 결혼’이라고 생각하는, 남녀가 사랑을 바탕으로 결합해 남자는 생계를 책임지고 여자는 살림하는 방식도 “자본주의가 등장할 때부터 발달하기 시작해 결혼의 황금기라고 일컬어지는 1950년대에 절정에 이른 새로운 결혼 형태”다.
- 스테파니 쿤츠, 『진화하는 결혼』
원문: 사과집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