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고종의 왕비인 중전 민씨를 ‘민비’라고 부르면 무슨 상무식꾼 내지 친일매국노로 매도하는 해괴한 풍토가 조성되게 되었다. 특히 이름이 알려진 공인이 ‘민비’라는 말을 입에 담으면 아예 사회적으로 매장될 수준의 친일 무식꾼이란 소리를 듣게 되었다.
‘민비’라는 호칭은 우리 어르신들이 아주 친숙하게 부르던 호칭인데, 갑자기 모든 대한민국 국민이 여흥 민씨 중에서도 민자영의 가까운 혈족이나 후손이라도 되는 듯이, 혹은 조선 왕실 후손이라도 되는 듯이 ‘민비’라고 부르지 말고 반드시 ‘명성황후’라 불러야 한다고 강짜를 부리는 것이다. 특히 평소에 역사에 쥐톨만한 관심도 없던 사람들이 ‘민비’라 부르지 않고 ‘명성황후’라 부르라는 강요는 한 술 더 뜬다. 아니 왜 역사적 인물을 무엇이라 부르던 왠 주제넘은 간섭이요 강짜인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지금이 무슨 조선 왕조가 쭉 이어지고 있는 상태도 아닌 것이고, 그렇다고 이씨 왕실이나 민비네 척족들이 모두 왕조를 위해 장렬히 산화한 것도 아니다. 공화국인 대한민국의 한 시민이 구한말에 죽은 역사적 인물에 대해 민비라 부르든 민자영이라 부르든 명성황후로 부르든 명성왕후라 부르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전주 이씨 중에서도 왕실 직계에 가까운 후손들이나, 혹은 여흥 민씨 중에서 민비의 후광을 입어 구한말과 일제 시대에 갖은 영화를 누린 자들이야 뭐 자신들의 훌륭한(?) 조상을 존경하는 차원에서 그리 부르든지 말든지 상관할 바가 아니나 어째서 생판 고종이나 민비의 은덕을 입은 것이 없는 자들에게 이런 강요를 하는 것인가?
민비라는 표현은 격하가 아니다
민비는 따지고 보면 전혀 격하하는 호칭이 아니다. ‘민씨 왕비’의 준말이 ‘민비’다. 마찬가지로 ‘민씨 왕후’의 준말은 ‘민후’이다. 조선의 마지막 대충신이라 할 매천 황현은 그의 매천야록에서 민비를 ‘중궁 민씨’ 혹은 ‘민후’라고 불렀다. 이때는 이미 ‘명성황후’라는 존호가 추존된 다음인데도 황현이 민비를 명성황후라 부르지 않았으니 매천 황현도 상무식꾼이나 친일매국노가 되어야 하는가?
어째서 민비를 명성황후로 부르라고 폭압적인 강짜를 부리는가? 이것이 상식적인 현상인가? 그럼 사후에 ‘흥선헌의대원왕’이라 추존된 흥선대원군은 왜 각종 매체와 교과서에서 대원군이라고 계속 불리고 있는가? 사후에 장조로 추존된 사도세자나 헌경왕후로 추존된 혜경궁 홍씨에 대해서는 왜 사도세자나 혜경궁 홍씨라 부른다고 난리를 안 치나?
이웃나라 중국에 서태후라는 민비 못잖은 아주 훌륭하신 여걸이 계신데 원래 정식 시호는 ‘자희태후’이다. 그런데 이 훌륭하신 위인을 자희태후라고 안 부르고 서태후라 부른다고 누가 난리친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서 연합뉴스 김태식 기자가 수년 전에 속시원히 일갈을 한 바 있다. 김태식 기자의 일갈에도 불구하고 민자영을 반드시 명성황후로 불러야 한다는 패거리의 행패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이런 해괴한 강요가 생겨나게 된 이유는 뻔하다. 반일 민족주의 때문인 것이다.
반일 민족주의가 민비에 대한 특별대우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민비를 죽인 자들이 일본인들이고 또한 일제가 ‘명성황후’의 호칭을 ‘민비’로 격하한 주범이니 ‘민비’라 부르면 민족적 자존심도 없는 친일 매국노라는 식의 아주 저급한 논리인 것이다. 거기에 뮤지컬과 드라마로 상당한 힛트를 쳤으며 “나는 조선의 국모다”라는 명언(?)을 남긴 ‘명성황후’라는 문화상품도 민비를 명성황후로 불러야 한다는 기이한 전 사회적 강짜 현상에 혁혁한 기여를 하였다.
물론 민비 민자영을 죽인 것은 일본인들이 맞다. 그러나 일제가 ‘명성황후’의 호칭을 ‘민비’로 격하하여 민자영의 호칭이 ‘민비’로 굳어졌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전혀 없으며 도리어 그와 반대되는 근거는 수두룩하다. 민비라 부르지 말라는 저급한 강짜는 ‘반일 민족주의적’인 관점으로 보더라도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민비는 일제가 퍼뜨린 표현이 아니다
왜냐하면 일제시대에도 ‘명성황후’라는 호칭은 자유롭게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조선인들이 신문이나 잡지를 통해 ‘명성황후’나 ‘고종태황제’라 부르는 것에 대해 조선총독부는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일제시대의 조선인들은 민자영이라는 이름을 지닌, 죽은 고종의 왕비에 대해 ‘민비’, ‘민후’, ‘명성황후’ 등 여러가지 호칭을 자유롭게 불렀다. 민비라고 부르면 잡아먹을 듯이 날뛰는 현재의 대한민국보다 민자영에 대한 호칭의 자유는 일제시대가 훨씬 더 높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아래에 ‘명성황후’로 검색하여 나온 수십 건의 일제시대 동아일보 기사들을 보라. 명성황후라는 호칭이 쓰인 잡지 기사도 여러 수십 개가 있지만 굳이 캡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조선총독부는 조선인들이 민자영이라는 죽은 조선 왕비에 대해 무엇이라 부르든 간섭하지 않았던 것이다.
해방 후에도 명성황후라는 호칭은 민비라는 호칭과 함께 꾸준히 쓰여왔는데, 유독 근년에 들어와 명성황후라는 호칭을 쓰는 자들이 민비라는 호칭을 쓰는 자들에 대해 온갖 폭압과 강짜를 부리고 있으니 그 사람들이 가장 미워하는 ‘일제’보다 한 술 더 뜨는 자들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아래의 일제시대 기사들을 보라. 간악한 일제가 ‘명성황후’를 ‘민비’로 격하시켜서 민자영이 민비로 불리게 된 것인지, ‘명성황후’란 호칭과 ‘민비’란 호칭이 식민지 조선인들과 해방 후 대한민국 시민들에게 그저 자유롭게 자기 좋은 취향대로 불리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최근에 와서 ‘명성황후’란 호칭이 언중에게 강요되어 민비라 부르는 자들에 대한 탄압이 생겨난 것인지.
나는 민자영이라는 여자에 대해 ‘명성황후’라 부르는 사람들에 대해 아무런 반감이 없으며 반드시 ‘민비’로 불러야 한다고 강요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민자영이란 여자가 구한말에 어떠한 악행을 저질렀는지, 혹은 어떠한 위대한 업적을 쌓았는지와 무관하게 그 사람에 대한 호칭은 자유로워야만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 ‘명성황후’라 부르는 사람들 또한 ‘민비’로 부르는 사람들에 대해 어처구니없는 강짜를 중단하기 바라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미워하는 ‘일제’조차 조선인들에게 들이대지 않은 해괴한 언어탄압이자 전체주의적 민족주의의 강요에 불과하다. 명성황후라 부르고 싶으면 자신들만 그렇게 부르면 될 것이 아닌가? 어째서 남에게 강요하고 행패를 부리냐는 것이다.
입장 바꿔놓고 얼마나 역사에 대한 상식이 없고 무식하면 조선을 망국으로 이끈 일등공신 중 하나인 여자한테 무슨 ‘황후’라는 존호를 붙이냐고, ‘민비’나 ‘민자영’으로만 불러야 한다고 절대 ‘황후’라 부르지 말라고 폭력적인 강짜를 부리며 지분대면 과연 기분이 어떻겠는가?
원문: 다만버의 자유로운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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