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엔 일자리 자체가 없어요”
제주에서 주변 대학생 중 남학생은 대부분 경찰직 공무원, 여학생은 일반직 공무원을 준비합니다. 이곳에서 딱히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없거든요.
원예환경학 전공으로 제주도의 한 대학을 졸업한 부지은(28·여) 씨는 4년째 취업 준비 중이다. 제주에서 농업 전문기업 일자리를 찾았지만 드물었고, 공고가 나는 곳도 주 6일 근무에 잦은 야근, 남자만 뽑는 경우 등 조건이 안 맞아 지원하지 못했다. 전공 살리기를 포기하고 서울로 가 대형마트 판매직 일을 하며 3년간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지만 이마저도 잘 되지 않았다.
지난 3월 다시 제주로 돌아온 그는 “취업을 앞두고 준비가 부족했던 점도 있지만 제주에서 관광업 말고 다른 분야 일자리를 찾기가 너무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임금도 전국 최저 수준이고 구시대적 조직문화를 가진 회사가 많아도 지금은 어디든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부 씨는 이번 여름에 농업 관련 자격증을 하나 더 딸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2월 경남 창원의 한 사립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성민석(27) 씨는 전공인 브랜드 마케팅(기업 및 제품 홍보) 분야에 취업하길 원했지만 실패했다. 인근 지역에서 아무리 찾아봐도 관련 채용공고를 볼 수 없었다. 서울로 눈을 돌려 지원해보았으나 ‘인(in)서울’ 대학 출신 졸업생들 틈에서 서류조차 통과하기 어려웠다. 결국 그는 서울의 한 제약회사에서 직접 의료인을 찾아다니며 ‘발품’을 팔아야 하는 영업직 일을 시작했다.
창원‧마산 지역엔 제조업 생산직 채용이 대부분이라 마케팅이나 인사, 총무 업무를 하고 싶어도 기회를 얻을 수 없어요. 요즘 서울 명문대 출신도 경쟁이 치열해 취업이 어렵다고 하지만 저 같은 지방대 출신은 주변에 일자리가 없어 경쟁에 참여조차 못 하는 게 현실입니다.
충북의 한 대학에서 일자리센터장을 맡은 박 모(55) 교수는 실력 있는 학생들이 매번 취업을 위해 수도권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털어놓았다. 그는 “지방 중소도시의 경우 가장 큰 문제는 청년들이 갈 수 있는 일자리의 절대적 수가 적다는 것”이라며 “서울에 가면 생활비가 비싸기 때문에 지역에 남는 게 이득이지만 일할 곳이 없으니 무조건 수도권에 갈 생각부터 한다”고 말했다.
제주·강원·전남에 취업 기회 특히 부족
한국 사회에서 지방대가 소외당하고 교육 불평등이 심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일자리 문제다. 지방에 고용 기회가 양적으로 부족하고, 질 좋은 일자리 찾기는 더더욱 어려워 지방대가 더욱 외면 받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국내 최대 규모 취업포털 중 하나인 잡코리아에 5월 28일 기준 올라온 지역별 채용공고를 살펴보면 신입 또는 경력 3년 이하 직원을 뽑는 6만여 개 일자리 중 소재지가 서울인 곳이 2만 7,164개로 45.4%를 차지했다. 이어 경기 1만 6,372개(27.4%), 인천 3,635개(6.1%)로 수도권이 전체의 78.9%였다.
반면 부산, 충남, 대전, 경남, 대구, 충북 등은 1,000–2,000개(1.7%–3.2%) 사이였고 광주, 경북, 전북, 제주, 강원, 전남, 울산, 세종은 수백 개 수준(0.5–1.4%)에 그쳤다. 채용공고가 난 청년 일자리 10개 중 8개를 서울 등 수도권이 차지하고 2개를 나머지 시도가 나눠 가진 셈이다.
수도권 일자리 쏠림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잡코리아가 지난 2015년 연간 신규 채용공고 650만 9,703건을 분석한 결과 서울이 전체 채용공고의 40.9%를 차지했고 경기 24.7%, 인천 7.7%로 전체의 73.3%가 수도권에 몰려 있었다. 일자리가 가장 적은 곳은 제주(0.4%), 강원(0.5%), 전남(0.8%), 경북(1.2%) 등이었다.
통계청 인구 총조사에 따르면 2015년 전국 25–34세 인구 707만여 명 중 서울 거주자가 22.9%, 경기 25.2%, 인천 5.9% 등 수도권 청년 비율은 54%였다. 수도권에 취업 적령기 청년 인구가 절반 정도 있는데, 일자리는 70–80%가 몰려 있다는 얘기다.
지역인재 의무채용 성과 있지만 ‘목마름’ 여전
노무현 정부 이후 전국 혁신도시에 공공기관을 이전하는 정책이 10개 도시 150여 개 기관 이전 완료 등으로 성과를 내지만, 지방 청년들의 일자리 목마름을 해소하기에는 아직 크게 부족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방 이전 공공기관 중 정부 부처 소속기관을 제외한 109곳에서 2018년 신규 채용한 인원 1만 4,338명 중 지역 출신은 2,011명(14%)이다.
2012년의 2.8%보다 늘어났지만 아직은 지방 청년 채용에 숨통을 텄다고 보기 어렵다. 또 부산, 대구, 경북 등은 20% 넘게 지역인재를 채용하지만 세종, 울산, 강원 등은 3–10% 수준으로 지역별 편차도 크다. 국토교통부는 혁신도시법에 따라 오는 2022년까지 지역인재 채용률을 30%까지 올리는 정책을 추진한다. 하지만 연구‧경력직, 지역본부 별도채용 등 의무고용 대상에서 제외되는 인원이 절반에 달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전남대 졸업반 김형규(28‧가명·신문방송학) 씨는 “나주 혁신도시에 한국전력 등 공기업이 이전하면서 전기공학과 출신은 취업에 숨통이 트였지만, 신방과를 비롯해 인문사회계열 친구들은 여전히 취업이 어려워 공대생을 부러워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김 씨는 또 “전남지역은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 자체가 부족해 자기 관심 분야에 따라 직업을 선택할 기회가 없다”며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이직할 수도 없을 것 같아 나도 수도권에서 취업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임금·노동환경도 서울과 큰 격차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 비해 지역의 일자리는 질적 측면에서도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015년 자료를 토대로 지난 3월 발간한 ‘지역의 일자리 질과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 보고서를 보면 전국 252개 시군구 중 ‘일자리 질 지수’가 상위권으로 분류된 39개 지역 가운데 32곳(82%)이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이었다.
일자리 질 지수는 고소득(월 소득 320만 원 이상)·고학력(전문대졸 이상)·고숙련(전문가‧관리자) 비중이 얼마나 높은가를 기준으로 했는데 전남북과 경북, 강원도 지역은 대부분 하위권에 머물렀다.
경북의 한 사립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기간제 교사로 일하고 있는 이세라(30‧가명) 씨는 “대학 다닐 때 먼저 취업한 선배와 친구들에게서 지방 기업은 임금도 적고 직장문화도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얘기를 여러 번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서울도 아닌데 최저임금 운운하지 말라’는 말을 듣고 웬만하면 서울에서 일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청년 세대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 대구지부 이건희(30) 대표는 “지방 청년들은 주변에 괜찮은 일자리가 없다고 말하고 지역 중소기업은 일할 사람이 없다고 하는데, 이런 ‘미스 매치’는 일자리의 양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채용하려는 기업이 지역에 있어도 청년들이 외면하는 것은 임금과 고용 안정성, 조직문화 등 노동환경이 좋지 않은 탓이라는 얘기다.
지역 일자리에 대한 지방 청년들의 불만은 숫자로도 확인된다. 전라남도가 2018년 도내 20–30대 청년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전남 청년 종합실태조사’에 따르면 ‘내가 관심 있는 분야와 관련된 직업을 찾기 쉽다’ 항목에 100점 만점 중 38.8점이라는 낮은 점수가 나왔다. ‘내가 원하는 임금 조건의 일자리가 많다’(36.5점), ‘일‧가정 양립 환경이 잘 조성돼 있다’(40.7점) 항목도 점수가 낮았다.
일자리 등에 불만을 갖고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는 추세는 통계에 나타난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 3월 발표한 보고서 「비수도권 청년 인구의 유출과 수도권 집중」에 따르면 1984–1988년에 태어나 2013년 25–29세를 맞은 청년 인구가 5년 전에 비해 전남 12.3%, 전북 11.6%, 강원은 11.6%포인트나 감소했다. 광역시인 대구와 부산도 각각 9.4%, 7.8%포인트 줄었다. 이들이 2018년 30–34세가 되었을 때도 인구 유출은 계속돼 부산에서 8.3%, 대구 5.8%, 광주 5.8%포인트가 살던 곳을 빠져나갔다.
반면 같은 시기 서울, 경기 등 수도권은 12–13% 포인트씩 청년 인구가 늘었다. 지방 소재 학교를 졸업한 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하거나, 취업 후 5년 이내에 근로조건이 더 좋은 일자리를 찾아 이직하면서 수도권으로 이동한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일자리 부족과 지방대 저평가 악순환
지방의 일자리 부족은 지방대 침체에 영향을 미친다. 『지방도시 살생부』의 저자인 마강래(48)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지난 4월 5일 《단비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지방대가 저평가를 받는 것은 교육의 질보다 지역의 일자리 부족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일자리 경쟁이 심해지고 교육이 먹고 살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하면서, 학생들이 취업 기회가 많은 ‘인서울’ 대학에 몰리고 지방대를 꺼리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마 교수는 이어 “수도권에 모든 인구와 자원이 쏠리는 불균형이 심해짐에 따라 지방의 대학들이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각 지역 거점을 중심으로 강한 일자리 정책을 펴서 주변 지역과 연계시키고, 과도기적으로 지방 공공기관에서 지역 출신 인재에게 기회를 할당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준영 한국고용정보원 고용동향분석팀장은 지난 4월 18일 전화 인터뷰에서 “지방에 일자리가 없어 청년 인구가 빠져나가고 활력을 잃게 되면 지역에 뿌리내리고 있는 지방대 역시 침체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청년 인구의 유출을 막기 위해서는 타지역으로부터 제조업 기업을 유치하는 제로섬 게임 방식이 아니라 청년들의 취업 선호도가 높은 교육‧보건‧사회복지‧공공행정 등 사회서비스업이나 출판‧영상 등 정보서비스, 예술‧스포츠 등 여가서비스업 같은 다양한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경상북도는 지난해 하반기 ‘경북형 사회적경제 청년 일자리 사업’을 통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행정안전부의 지원을 받아 청년 200명이 지역의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협동조합 등 107곳에 취업하도록 한 것이다. 이들 기업은 취약계층에게 사회서비스와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지역 자원‧문화를 활용해 생활환경을 개선하고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공공적 성격을 띠고 있다.
이 사업에 참여한 청년들은 만족도 조사에서 ‘경제적 생활 안정(77.2점)’, ‘적당한 근무시간(80.9점)’, ‘지역발전에 기여(74.3점)’ 등의 이유로 전반적으로 높은 만족도(77.1점)를 보였다.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협업으로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청년 일자리를 만든 사례인 셈이다.
원문: 단비뉴스 / 필자: 장은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