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선거제 개혁이 끝이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선거제도가 무엇인지 계속 고민해야 한다.
6월 5일 저녁 서울 중구 열매나눔재단에서 ‘공정한 선거, 절차를 넘어 결과까지’ 포럼이 열렸다. 발제자로 참여한 비례민주주의연대 하승수 공동대표는 지속적인 선거제도 개혁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 정치가 상식에 부합하길 바라는 분들이라면 이념, 종교, 지역을 떠나 선거제 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보’는 없고 ‘싸움’만 남은 패스트트랙 혈투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뼈대로 한 선거제 개혁안이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된 지 2개월이 지났다.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언론은 선거제 개혁안 자체보다는 국회에서 벌어진 싸움 전달에 치중했다. ‘싸움’이 마무리되자 관심은 빠르게 식었다.
유권자들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했다. 하 대표는 “지금도 여론조사를 해보면 선거제도 개혁이 중요한 건 아는데, 이게 자신들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잘 모르는 유권자가 많다”고 말했다.
“선거제 개혁, 우리만의 이슈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의회는 국가를 지탱하는 한 축이다. 선거제는 의회 권력의 선출방식이다. 자연히 선거제에 관한 관심은 높을 수밖에 없다. 캐나다 트뤼도 총리는 2015년 총선에서 선거제 개혁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캐나다 하원 구성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소선거구제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트뤼도 총리는 지난 2017년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약을 철회했다. 야당은 “국민에 대한 배신”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2015년 칠레 국회는 피노체트 독재정권 유산인 중선거구제에서 벗어나, 비례성을 강화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채택했다. 이를 위해 120명이던 하원의원 숫자를 155명으로 늘렸다.
이처럼 선거제 개혁은 세계적 관심사다. 하 대표는 “민주주의를 시행하는 나라는 선거제도에 관해 끊임없이 고민할 수밖에 없으며, 그 중 하나가 대한민국일 뿐”이라며 “다른 나라도 우리나라 선거제 개혁에 관심이 많으며, 특히 비례대표제 불모지인 일부 아시아 국가들은 우리 사례를 참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병립형, 연동형,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란?
이번 패스트트랙에 상정된 개혁안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핵심으로 한다. ‘준연동형’을 이해하려면 현행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먼저 알아야 한다. 병립형에서 유권자는 지역구에 한 표, 정당투표에 한 표, 총 두 표를 행사한다. 이는 연동형, 준연동형도 마찬가지지만 병립형은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구분한다. 정당투표를 통해 산출된 정당득표율을 비례대표 선출에만 적용한다. 가령 지난 20대 총선에서 지역구는 253석, 비례대표는 47석이었으니 정당득표율은 비례대표 의석인 47석에만 적용됐다.
하 대표는 “병립형의 문제점은 정당득표율과 의석비율이 불일치해 ‘표의 등가성’이 깨질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7년 치러진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과 연정 파트너인 공명당이 얻은 합계 득표율은 45.29%에 불과했다. 그러나 자민당-공명당이 얻은 의석은 465석 중 313석으로 의석비율이 67.31%에 이르렀다. 자민당이 지역구 의석을 대거 가져갔기 때문이다.
OECD 36개국 가운데 병립형이나 소선거구제를 채택한 나라는 10개국에 불과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 2015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선거제도 개혁안으로 권고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는 지역구 선거와 무관하게 전체 의석이 정당 득표율에 따라 배분된다.
각 정당은 배분받은 의석 내에서 지역구 당선자부터 채우고, 모자라는 부분을 비례대표로 채운다. 전체 의석이 300석이고, 한 당이 30% 지지를 받았다면 그 당에는 무조건 90석이 배정된다. 그 당이 지역구에서 당선자를 70명 배출했다면 나머지 20명을 비례대표로 채우는 것이 ‘연동형’ 방식이다. 만약 지역구에서 당선자를 50명만 배출했다면 나머지 40명을 비례대표로 채운다.
패스트트랙에 상정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연동형에서 조금 변형된 형태다. 계산방식을 단순화해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준연동형에서는 국회의원 총원을 300명으로 유지하되, 지역구에서 225명, 비례대표로 75명을 뽑기로 합의했다. 가령 한 당이 20% 정당득표율을 올렸다고 할 때, 온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면 그 당은 300석의 20%에 해당하는 60석을 우선 배분받는다. 그러나 ‘준연동형’은 정당 득표율대로 배분돼야 할 의석에서 지역구 당선자를 뺀 의석의 50%를 비례대표로 우선 배분받는 방식이다.
가령 ㄱ당이 지역구에서 20석을 얻으면, 정당득표율에 따른 60석에서 지역구 20석을 제외하면 40석이 남는다. 그 40석의 50%인 20석을 A당의 비례대표 의석으로 우선 배분하는 것이다. 그러면 ㄱ당이 얻는 의석은 지역구 20석에 비례대표 20석(50% 보장)이 된다. 그리고 각 정당들에게 같은 방식으로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한 뒤 남는 의석을 다시 정당득표율대로 배분한다. 가령 75석의 비례대표 의석을 각 정당에게 준연동형 방식으로 배분하니 50석이 배분되었다면 ‘25석’이 남는다. 이 과정에서 ㄱ당은 추가로 비례대표 의석을 확보한다.
‘준연동형’ 방식도 지금보다는 비례성이 개선된다. 지역구 당선자가 0명인 정당도 최소한 정당득표율 50%만큼은 의석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당은 ‘준연동형 방식이 지나치게 복잡해 국민들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한다.
하 대표는 “국민들이 선거제도 공식까지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건 맞지만, 개념 정도는 정치권과 언론이 노력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정도”라며 “정당이라면 제도에 반대하더라도 ‘이 제도에는 이런 문제가 있고 우리는 이런 입장이라 반대한다’라는 태도가 바람직하지, ‘이게 복잡해서 알 수가 없다’고 말하는 건 올바르지 못하다”고 말했다. 그는 “핵심은 왜곡 없이 정당 지지도에 따라 전체 의석수가 정해져야 한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국회 구성이 사회의 압축판으로”
20대 국회 여성의원 비율은 약 17%다. 16대 국회에서 5.9%였던 것을 감안하면 다소 진전은 있었다. 그러나 유럽 선진국에 견주면 아직 낮은 수치다. 하 대표는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30% 넘는 나라를 살펴보면 대부분 비례대표제를 시행한다”며 “여성들은 공천 과정에서 여성할당제를 적극적으로 시행하는 정당과 그렇지 않은 정당에 차이를 두고 투표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도 마찬가지다. 2016년 총선 당시 300명 중 20–30대 의원은 3명뿐이었다. 하 대표는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같은 나라는 20–30대 국회의원 비율이 30%가 넘는다”며 “정당이 청년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해선 그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결국 청년을 적극 공천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국회가 우리 사회의 압축판이 되어야만 각 구성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국회의원 특권 줄이고 숫자 늘려야
지난 4월 우여곡절 끝에 패스트트랙은 통과됐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패스트트랙이 갖는 실질 효과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본회의 표결이 무조건 진행된다’는 것이다. 국회법상으로 해당 위원회에서 최대 180일, 법사위에서 최대 90일간 안건을 심사할 수 있고, 그 후 60일 이내 본회의에 상정하게 되어있다. 최대 330일이 걸릴 수 있다. 말 그대로 ‘최대’ 330일이라 며칠이 걸릴지는 알 수 없다. 본회의 표결 전까지는 추가 협상과 토론이 계속 이뤄질 것이다.
하 대표는 “한국당이 협상에 참여해 새로운 개혁안이 만들어지는 경우와 한국당과의 합의 없이 본회의 표결로 가는 상황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수정안이 지금보다 후퇴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면서 “사실 준연동형도 한 발짝 물러선 제도이기 때문에, 시민사회는 완전한 연동형을 관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안을 그대로 표결하면, 본회의 표결은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 찬성으로 이뤄진다. 현재 의석 분포를 살펴볼 때 패스트트랙에 참여한 여야 4당 소속의원들만 찬성해도 과반수는 넘는다. 다만 지역구가 통합∙조정되는 국회의원들이 불만을 갖고 반대할 수 있다. 이탈표가 발생하면 본회의 통과가 어려워진다.
하 대표는 “지역구가 줄어든다면 국회의원뿐 아니라 해당 지역 유권자들도 불만을 가질 수 있다”며 “그래서 국회의원 총원을 늘려 지역구 숫자를 유지하는 대신 특권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1억 5,000만 원에 이르는 국회의원 연봉을 대폭 삭감하고 보좌진 숫자도 줄이는 등 강력한 국회개혁 방안이 동반돼야 국민들도 의원수 증가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원문: 단비뉴스 / 필자: 홍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