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자 주: SceinceMag의 「Are Beards About to Die Out?」를 번역한 글입니다. 진지한 논문이 인터넷 언론에서 가십 거리로 전락하는 게 마음이 아파 글을 남깁니다. 주된 내용은 동물 세계에서 나타나는 빈도가 낮은 개체가 선택되는 逆빈도의존성 선택(negative frequency-dependent selection)이 인간의 문화형질인 수염에도 배우자 선택(성 선택)을 매개로 적용된다는 것을 입증한 연구결과입니다.
특이한 유행은 진화론적으로 오래 가지 못한다
오늘날 수염이 덥수룩한 남성들은 도처에서 발견된다. 브루클린의 도시 벌목꾼에서부터 샌프란시스코의 털북숭이 해커들에 이르기까지, 남성들의 얼굴은 온통 덥수룩한 수염으로 뒤덮여 있다. 그러나 한 진화론적 인구역학 이론에 의하면, 이러한 모습은 자취를 감출 운명이라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수염 기른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36명의 수염쟁이 남성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실험에서, 이 예측은 들어맞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대부분의 생물학적 형질, 예컨대 (먹이를 낚아채고 솟구치기 위한) 강력한 날개, (포식자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길다란 다리 등은 유행을 타지 않는다. 그러나 너무 유행하는 형질을 갖고 있는 것은 종종 별로인 경우가 있다.
이러한 형질의 고전적 예로는 구피(수족관에서 흔히 기르는 작은 담수어)의 색깔을 들 수 있다. 구피의 경우 희귀한 색깔을 띤 변종은 포식자의 눈에 띌 가능성이 줄어든다. 포식자는 흔한 색깔을 가진 구피만을 표적으로 삼으므로, 특이한 색깔을 가진 구피는 흔한 색깔을 가진 구피에 비해 약간의 적합성 이익(fitness advantage)을 갖게 된다. 이에 따라 특이한 색깔은 후손에게 전달되어, 구피 집단 전체에 퍼져나간다.
그러나 일단 특이한 색깔이 너무 흔해지면, 적합성 이익은 사라진다. 왜냐하면 포식자들이 특이한 색깔을 가진 구피들도 사냥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피의 색깔 유행은 바뀌게 된다. 이러한 메커니즘을 逆빈도의존성 선택(negative frequency-dependent selection: 빈도가 낮은 개체가 선택됨)이라고 부르는데, 자연선택이 지속적으로 최적의 형질을 걸러냄에도 불구하고 집단의 다양성이 유지되는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이론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얼굴의 털은 날개나 지느러미보다 설명하기 까다로운 형질이다. 왜냐하면 유전자에 의해 선천적으로 결정되는 형질이 아니라, 행동에 의해 결정되는 형질이기 때문이다. 즉, 남성의 수염은 ‘면도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라는 선택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러나 면도라는 행동은 여성의 배우자 선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역빈도의존성 선택 이론을 적용할 여지는 있다.
수염의 과학: 여성들은 과연 수염을 매력적으로 생각할까?
호주 뉴사우스웨일즈 대학교의 지니아 재니프 교수(진화생물학)가 이끄는 연구진은 ‘남성의 매력을 수염이 있느냐 없느냐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불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흔히 모든 생물학자들은 수염이 섹시함의 심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문제는 ‘수염의 섹시함이 수염 자체에 기인하느냐(절대평가), 아니면 다른 남성과의 비교에 기인하느냐(상대평가)’다”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수염의 매력이 어디에서 유래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연구진은 수염을 기를 의향이 있는 남성 36명을 모집했다. 그리고는 동일한 조명 하에서 순차적으로 그들의 얼굴 사진을 찍었다: 말끔히 면도한 얼굴(5일), 덥수룩한 얼굴(10일), 수염에 완전히 뒤덮인 얼굴(4주). 연구진은 그 남성들의 얼굴 사진을 1,453명의 여성과 213명의 남성들에게 보여줬다.
모든 여성들은 양성애자 또는 이성애자의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었으며, 남성들은 모두 이성애자의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사진의 남성들을 심리학 실험에서 흔히 사용하는 매력척도(attractiveness scale)로 평가했다.
이번 연구는 다음과 같이 설계되었다. 평가자들에게 나눠준 사진의 구성은 제각기 달라, 어떤 평가자들은 깔끔한 얼굴이 많은 사진을 받았는가 하면, 어떤 평가자들은 덥수룩한 얼굴이 많은 사진을 받았다. 연구진의 생각은 “만일 수염의 매력이 수염 자체에서 나온다면, 수염 기른 남성의 출현 빈도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거였다.
수염이 매력적인 건 수염 기른 남성이 적을 때만 가능
그러나 평가 결과, 빈도는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중에서 수염 기른 사람이 드물 경우 수염 기른 남성의 매력은 20% 더 높게 평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수염 기른 남성이 흔해지는 경우 깔끔하게 면도한 남성의 매력이 대박을 터뜨렸다. 이러한 경향은 남성 평가자와 여성 평가자에게 동일하게 나타났다.
캐나다 퀘벡시에 소재한 대학간 통합연구센터의 인류학 박사 피터 프로스트는 말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이 분야에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선행연구에서는 ‘사람들이 특정 형질(예: 옷의 색상)에서 특이한 것(튀는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이번 연구에서는 ‘특이한 것을 추구하는 영향이 옷의 색상뿐 아니라 다른 가시적 형질(예: 외모)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단, 이번 연구에도 한계는 있다. 아무리 특이해도 역겨운 것이 있는 법이다. 사진에 나온 남성들 중에는 수염을 지저분하게 기른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