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시대의 개막
바야흐로 쿠팡 시대가 열렸다. 쿠팡은 매출 규모로만 따지면 누가 뭐래도 국내 e커머스 시장 일인자의 자리를 명백히 다졌다. 2017년 매출은 2.7조였으며 2018년 매출은 약 4.4조로 발표했다. 2018년 매출을 공시한 이베이코리아의 매출이 약 1조, 위메프는 약 4,300억인 것을 감안하면 쿠팡 독주체제는 확실해 보인다. 이미 우리 생활 속 깊숙이 들어온 로켓 배송뿐 아니라 로켓 프레시, 쿠팡 이츠 등 신규사업이 자리를 잡아갈수록 우리 삶과 쿠팡이 닿는 면은 더더욱 넓어져 갈 것이다.
공격적인 사업 확장을 위해 쿠팡은 누적 적자 2.8조를 감수했다. 이를 바라보며 막대한 영업손실을 누적하는 쿠팡이 언제까지 지속 가능할지 회의적인 전망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아무리 현금을 쏟아붓더라도 빠르고 사이즈 크게 성장할 수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초기 소셜커머스 각축전은 이미 쿠팡의 독주로 재편된 지 오래고 비전 펀드로부터 연이은 대규모 투자유치와 공격적인 투자 집행을 통해 쿠팡은 국내 e커머스 1위의 자리를 더욱더 단단히 했다.
쿠팡은 e커머스에 있어서만큼은 유통 대기업 사이에서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판을 쥐락펴락하는 리딩 플레이어가 되었다. 이미 쿠팡 시대는 열렸고 최근 수년간 폭발적인 성장을 보여온 만큼 지금의 성장세를 유지한다면 앞으로 쿠팡 시대는 더욱 공고해질 것만 같다. 쿠팡의 영향력이 골목상권까지 미치기에는 시간이 당분간 소요되겠지만, 언젠가 어떻게든 쿠팡의 영향력은 골목 끝까지 다다를 것은 분명하다. 다가오는 본격적인 쿠팡의 시대에 영세한 소상공인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신선식품: e커머스 마지막 격전지, 오프라인 채널 최후방어선
이미 많은 사람과 언론은 쿠팡을 ‘한국의 아마존’으로 부르며, 김범석 회장 스스로도 아마존이 롤모델이라고 공식 석상에서 말했다. 아마존은 1994년 창업 이후 2002년까지 초기 8년 동안 지속적인 적자를 기록했다. 창업자인 제프 베저스는 “당장 적자를 보더라도 고객을 붙잡아 놓으면 실적은 회복되게 마련”라고 말했다. 그리고 초기 8년의 적자를 발판으로 아마존은 결국 2019년 애플,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시가총액 기준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천하의 아마존도 아직 제대로 점령하지 못한 품목이 있는데 이는 바로 신선식품이다. 아마존은 책에서부터 시작하여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웬만한 품목은 모두 다 판매하지만 유독 신선식품에는 약한 모습을 보인다. 아마존이 2007년 야심 차게 시작했던 신선식품 전문 서비스 아마존 프레시는 아직도 고전을 면치 못한다. 실제로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아마존 프레시의 조악한 고객 경험으로 인해 오히려 아마존 전체의 브랜드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e커머스의 절대강자 아마존마저도 신선식품을 쉽게 공략하지 못하는 이유는 신선식품은 선도를 유지하며 배송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뿐더러 소비자들이 신선함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구매하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책, 전자제품, 의류 등 다른 품목보다 신선식품만큼은 여전히 오프라인 구매 선호도가 압도적으로 높다. 실제로 미국의 온라인 매출의 비중 차이를 살펴보면 전자제품이나 의류, 가구 등 다른 품목이 2011년 대비 온라인 매출 비중이 증가했음에도 식음료의 매출은 2011년 대비 2015년 온라인 매출에 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2015년부터 e커머스에서 신선식품을 본격적으로 취급하기 시작했고 서서히 우리 삶 가까이 들어왔다. 마켓 컬리가 쏘아 올린 새벽 배송을 신호탄으로 로켓 프레시, 롯데 프레시, 쓱배송 굿모닝 등 주요 유통회사들이 모두 새벽 배송과 함께 신선식품 시장에 뛰어들었다. 덕분에 우리나라에서는 미국보다 온라인을 통한 신선식품 판매가 훨씬 더 활발히 이뤄지는 양상이다. 실제로 한겨레 신문에서 빅데이터 분석을 실시한 결과 2018년에 인기를 끈 온라인 쇼핑 아이템 1위는 식품이기도 했다.
또한 오픈서베이의 2018 식료품 구매 트렌드를 참고해보면, 온라인 채널의 성장세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여전히 76.9%에 달하는 대다수가 식료품 구매 채널 중 오프라인 동네 마트(39.8%)나 대형마트(37.1%)에서 구매했다. 하지만 오프라인 대부분 채널은 역성장했을 뿐 유의미한 성장은 온라인채널이 유일했다.
치열한 새벽 배송 경쟁이 시작된 덕분에 온라인 채널은 2017년 대비 2018년에 3.7%p 증가했다. 아직도 주요 구매 채널은 오프라인일지라도 온라인 마켓의 성장세는 점점 더 가속도가 붙을 것이고 점차 점차 그 비중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결국 다른 품목이 그랬던 것처럼 신선식품이 온라인 시장으로 넘어가는 것도 시간의 문제라고 보인다.
사실 대형마트나 동네마트 같은 오프라인 채널의 최후의 보루는 신선식품이었다. 온라인으로 넘어가기 가장 어려운 품목인 만큼 아무리 e커머스가 성장하더라도 신선식품으로 최소한의 매출 방어선을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 배송은 새벽 배송처럼 일 단위에서 반나절 단위, 시간 단위로 점점 더 빨라질 것이다.
배송이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은 경제적인 요인이든 편리함 때문이든 오프라인 구매보다는 온라인으로 신선식품을 구매를 할지도 모른다. 또한 언젠가는 e커머스 기업들이 오프라인으로 진출할 것이다. 온라인 쇼핑은 오프라인 쇼핑의 경험을 100% 모두 대체할 수 없다. 온라인의 성장세는 무섭고 앞으로도 그 비중을 지속적으로 늘릴 테지만, 결국에는 오프라인 고객 경험을 복합한 옴니채널 형식으로 구현되어야 한다.
아마존이 137억 달러에 홀 푸드 마켓(Whole foods Market)을 인수한 것도 결국은 아마존을 오프라인에서도 만나보게 하겠다는 복안이지 않았을까. 알리바바의 허마센셩(盒马鲜生) 또한 그렇다. 감히 추측해보자면, 쿠팡도 온라인 시장을 제패하고 나면 아마존과 알리바바처럼 언젠가는 오프라인으로 진출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 과정에서 신세계 그룹, 롯데 그룹 같은 유통 대기업들은 가만히 넋 놓고 바라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신세계 그룹이나 롯데 그룹은 언론에 발표한 것처럼 본인들이 보유한 오프라인 경쟁력에 기반해서 쿠팡에 승기를 뺏기지 않기 위해 총반격을 시작했다.
그러니 곧 이 땅에 대형 공룡 간의 싸움이 벌어질 것은 불 보듯 훤한 일이다. 대전쟁을 눈앞에 둔 동네 마트가 할 수 있는 조치는 아직도 고객들은 신선식품 오프라인 구매를 선호한다고 말하며 그저 멍하니 하던 대로 하다가 중간에서 새우 등 터지는 신세로 전락하는 것만이 유일한 것일까?
아마존 시대, 독립서점처럼 살아남기
전략 중에 최고의 전략은 상대방이 어떻게 움직일지 알아도 어찌해볼 수 없는 전략이라고 했다. 분명 어딘가에는 동네 마트만 가진, 쿠팡 혹은 대형마트가 죽었다 깨어나도 만들 수 없는 차별적인 경쟁력도 숨어 있을 것이다. 그것을 노리는 게 동네 마트 최고의 전략이 아닐까. 나는 그 힌트를 독립서점에서 찾았다.
쿠팡 시대에 동네 마트 얘기하는데 갑자기 독립서점이라니 뜬금포라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보자. e커머스 최고 공룡 아마존이 가장 처음 공략한 것은 바로 책이라는 아이템이었다. 책은 온라인에서 판매된 지 가장 오래된 품목인 셈이다. 그러니 책을 다루는 동네서점들이 아마존의 맹공을 뚫고 지금까지 어떻게 생존했는지를 살펴보면 동네마트의 미래를 엿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대형 온라인 서점의 등장 이후 많은 동네서점들은 힘 한 번 제대로 써보기 전에 쓰러졌고 남아있는 몇몇 서점들도 비즈니스 플레이어로서 존재한다기보다 수익성을 회복하지 못한 채 흔적 기관처럼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최근 몇년동안 독립서점이라고 불리는 개성 있는 서점의 등장으로 다시 한번 사람들의 이목이 동네서점으로 모인다.
아마도 쿠팡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하면 대다수의 동네 마트들은 동네서점들과 비슷하게 서서히 사라져 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모든 서점이 전멸하지는 않았고 어려운 와중에도 멋진 활약을 보여주는 서점들이 있듯이 분명 살아남는 동네 마트들은 존재할 것이다. 그렇다면 멋진 활약을 보여주는 독립서점의 경쟁력을 잘 분석하면, 어쩌면 쓰나미처럼 닥쳐올 쿠팡 시대에도 동네 마트가 생존할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발견한 독립서점의 결정적인 경쟁력은 세 가지다.
1. 독립서점은 당신의 이름을 안다
독립서점들은 고객들과 특별한 관계를 만든다. 쿠팡도, 이마트도 절대 할 수 없는 동네책방만의 장점이다. 인스타를 잘 활용하기로 유명한 부천의 오키로북스 인스타에는 고객의 이름을 담은 포스팅이 가끔 올라온다. 온라인상에서 모니터를 마주하는 것과 오프라인에서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분명히 질감이 다르다. 오키로북스같은 독립서점들은 매일 고객들과 얼굴을 마주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교감하며 특별한 관계를 형성해낸다.
우리 동네 쿠팡맨이 아무리 친절하다고 해도 ‘현서 감기는 다 나았어요?’라는 질문을 먼저 하기 어렵고, ‘머리 바꾸시니까 더 젊어 보여요!’라는 칭찬을 하기 어렵다. 혹 그런 멘트를 챙기는 훌륭한 쿠팡맨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나라 전체에 있는 모든 쿠팡맨이 동일하게 그와 같은 마인드로 고객과 친근한 관계를 맺을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회사가 섣불리 이를 매뉴얼화하게 되면 오히려 기계적인 친절함에 고객들이 부담을 느낄 가능성도 크다.
고객과의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데는 독립서점보다 동네 마트가 더 유리하다. 정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사실 책방은 방문 횟수가 빈번하진 않다. 마니아를 제외하면 일반적인 사람들의 평균 책방방문 횟수는 한 달에 한 번이나 갈지 모른다. 그러나 마트는 일반적으로 살 게 있든 없든 1~2주일에 한 번 정도는 가게 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동네 마트에서는 독립서점보다 고객과 얼굴을 더욱 자주 마주칠 수 있다. 조금만 더 고객 한 명 한 명에게 신경 쓰고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이면서 고객과 관계를 만드는 것만으로도 동네 마트는 쿠팡이 따라올 수 없는 확실한 경쟁력을 만들어 낼 수 있다.
2. 독립서점에는 당신의 친구들이 있다
독립서점이 위치한 ‘동네’가 주는 가장 큰 경쟁력은 ‘아는 얼굴’들이 모인다는 점이다. 독립서점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얼굴도 모른 채 서로 무관심하게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누군가가 아니다. 독립서점에서는 같은 지역에 사는, 가끔이라도 얼굴을 마주치는 ‘동네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즉 독립서점에서는 단순히 서점-고객 간의 관계뿐 아니라 고객-고객 간의 관계 또한 만들어진다.
실제로 군산의 한길문고는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를 열었다. 이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1시간 동안 책을 읽으면 최저시급과 맥주를 지급받을 수 있다. 재밌는 점은 1시간 동안 고객들이 한길문고에 모여 함께 책을 읽고 나서 함께 맥주를 마시며 스스럼없이 서로 친해질 수 있었다는 점이다. 고객이 단순히 고객으로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고객 간에 서로 친구가 되는 순간이다.
동네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를 따로 만드는 것은 쿠팡이 인위적으로 이벤트를 개최하지 않는 이상 실현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동네 마트는 이미 수많은 동네 사람이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는 장소다. 서로 전혀 의도치 않았지만 우연히 매장에서 만나기라도 하면 ‘어머, 수현 엄마도 여기 마트 다녀?’라는 대화가 오고 가기도 한다.
사람들이 독립서점에서 함께 책을 읽으면서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서점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오가는 마트에서는 더욱더 많은 기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 기회를 잘 살릴 수만 있다면, 한길문고가 그랬던 것처럼 단순히 서점-고객 간의 관계를 뛰어넘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지 않을까. 쿠팡이 전국적인 규모의 이벤트를 집행하지 않는 한, 절대 따라올 수 없는 동네마트의 경쟁력이다.
3. 독립서점에는 주인의 제안이 묻어 있다
독립서점은 개성 넘치는 제안이 존재하는 곳이다. 일반적으로 독립서점들은 대형서점처럼 천편일률적인 베스트셀러만을 판매하는 게 아니라 주인의 취향에 따라 꼭 추천하고 싶은 책, 혹은 작은 출판사의 좋은 책이지만 마케팅 기회가 적어 독자들이 잘 모르는 책 등을 선별하여 제안한다. 이런 작업을 누군가는 세련되게 큐레이션 취향 편집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주인의 관점이 개입된다는 점이다. 그 덕분에 이론적으로 100개의 독립서점들은 100개의 개성을 갖게 된다.
그 개성이 특히 두드러지는 독립서점은 ‘사적인서점’이 아닐까 싶다. 사적인서점에서는 미리 문진표를 받듯 질문지를 채워나가고 이를 기반으로 서점의 주인인 정지혜 대표와 함께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 그 이후에는 고객의 취향과 성격, 관심사를 반영한 책을 ‘처방’받는다. 왜 이 책을 골랐는지, 어떻게 읽으면 좋을지에 대해 편지를 쓰고 책과 함께 배달한다. 정지혜 대표의 책 처방 작업은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서점』에 실린 시애틀의 서점 직원이 한 말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느껴진다.
Q. 온라인 서점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동네 책방에만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겠죠. 그게 뭐라고 생각하세요?
A. 두 가지죠. 사람이 있다는 것과 장소가 있다는 것. 방문한 서점마다 공통적으로 했던 이야기가 ‘발견’이었어요. ‘피니 북스’의 대표인 톰은 아마존에서 일했던 사람인데, 자신이 아마존에서 배운 건 ‘아마존을 따라 하지 말라’는 거였다고 말해요. 아마존이 할 수 없는 건 ‘발견’이라고 하고요. 알고리즘이 찾아낼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거죠. 인간이란 예측이 불가능한 존재잖아요. 어떤 날 어떤 기분에 어떤 책을 보고 싶은지, 그 생각이 시시각각 바뀌죠. 알고리즘이라는 건 ‘당신이 산 책과 비슷한 책을 산 다른 사람들은 이런 책을 샀다’라고 제안을 해주는 거잖아요. 분명히 설득력 있는 제안일 거예요. 그렇지만 ‘어떤 사람이 특정한 날에 특정한 기분에서 만나고 싶은 책을 과연 찾아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그걸 해줄 수 있는 건 사람이라는 거예요. ‘피니 북스’의 대표도 그렇게 말하고 ‘퀸앤 북컴퍼니’에서 일하는 사람도 똑같은 이야기를 해요.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발견’이라고요.
- 「이현주 “동네서점,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채널 예스 인터뷰 中
독립서점의 구매과정은 대형서점의 구매과정과 다르다. 독립서점이 나열식으로 책을 진열하고 독립서점을 찾은 고객은 그중에 하나를 고르는 게 아니다. 그 과정 사이에 ‘편집’이라는 개념이 들어간다. 서점 주인의 ‘제안’에 따라 책이 입고되고, 고객들은 그 흐름을 함께하며 직간접적으로 서점 주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사적인서점 정지혜 대표의 작업이 그렇고 시애틀의 피니 북스와 퀸 앤 북컴퍼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하는 작업이 그렇다. 빅데이터를 통해 다듬어진 알고리즘을 통해 구매 확률이 높은 책을 제안하는 일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에게 제안하는 일이 일어난다.
사실 동네 마트도 일종의 큐레이션과 편집이 적용된다. 일반인들 눈에는 똑같은 사과라도 도매시장에서 하나하나 뜯어 보면 품종에 따라, 산지에 따라, 상급인지 특급인지에 따라 맛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그중에서도 가격과 품질이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고 이를 제안하는 과정은 어찌 보면 독립서점의 편집 작업과도 맞닿아있다.
오늘도 동네 마트에서는 수많은 편집작업이 이뤄진다. 내가 먼저 먹어보고 가장 맛이 좋았던 것을 제안할 수도 있고, 애당초에 로컬 푸드 콘셉트로만 제안할 수도 있다. 아직은 그 수준이 고도화되지 못했지만, 앞으로는 독립서점처럼 수준 높은 편집과 제안으로 나아간다면 동네마트가 가질 수 있는 아주 강력한 경쟁력이 될 것이다.
쿠팡이 고객에게 제안할 수 있는 방법은 아마존이 제공하는 것과 같이 데이터에 기반한 알고리즘을 이용하는 것이다. 여러 기술적인 시도가 이뤄진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아직까지 알고리즘은 ‘A를 산 고객이 B도 살 확률은 ○○%다’를 넘어서는 제안은 하기 힘들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동네 마트에서는 고객의 표정과 분위기, 그리고 단순 구매 기록이 아닌 대화를 통해서 각 고객에 대한 더 깊은 이해가 가능하고 그에 맞는 편집이 가능하다. 단순히 데이터로만은 챙기기 어려운, 쿠팡이 적극적으로 직원을 개입시키지 않는 한 따라 하기 힘든, 사람 간의 교감에서 비롯된 발견과 제안이다.
동네 마트가 살아남기 위하여
사실 마트는 동네 사람들이 모여드는 가장 동네다운 공간이다. 과거 장터의 역할도 마찬가지였다. 장터에서 장이 열리는 날은 온 동네 사람들이 나와 시끌벅적하게 한바탕 신명 나게 어울리는 날이었다. 그 공간에서는 분명 상거래도 이루어졌지만, 무엇보다도 사람 간의 교감이 이루어졌다.
나는 쿠팡의 시대에 동네 마트가 쿠팡이나 대형마트와 비교해 가장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은 바로 이 교감이라고 생각한다. 대형마트에서, 쿠팡에서 효율적으로 경영하며 챙길 수 없었던 그것.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경영 비효율처럼 보일 수도 있는 그것. 동네 마트가 가장 경쟁력을 가지는 그것을 공략했을 때 우리는 생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독립서점에서 생존전략의 힌트를 얻은 것에 의아한 독자님들도 계실 것이다. 독립서점이 최근 들어 갑자기 많이 생겨난 만큼, 또 많은 수의 독립서점이 수익성 악화를 극복하지 못하고 소리소문없이 스러져 간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책이라는 아이템은 도서정가제라는 제도가 있기도 하고 신선식품과는 시장 특성이 다른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독립서점에서 나름의 힌트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독립서점이 고객과 교감하면서 ‘작지만 분명하게 승리하는 법’을 멋지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고객과의 끈끈한 관계도, 고객과 고객 간의 친구 같은 관계도, 주인의 개성을 제안하는 것도 어쩌면 규모가 커지면 유지 불가능한 비확장형 아이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소한 작은 독립서점들은 이런 방식으로 대형 온라인 서점은 못 하지만 자신의 몸집에서만 갖출 수 있는 필승전략을 찾아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전략은 어느 산업이든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유통의 본질적인 경쟁력은 ‘좋은 물건을 좋은 가격에 매입해서 좋은 가격에 판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동네 마트가 쿠팡 시대에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바로 이 본원의 경쟁력을 탄탄히 갖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가격은 분명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가장 큰 요소이긴 하지만 사람들이 가격에만 반응하지는 않는다.
모든 제품을 역마진을 보면서 팔더라도 고객들에게 꾸준히 선택받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살아남을 수는 없다. 특히 동네 사이즈의 장사라면 더더욱 그렇다. 어쩌면 이는 동네 마트만의 문제가 아니고 동네빵집, 동네 카페, 동네 미용실 등 작은 장사를 하는 우리 모두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아직 부족하기만 한 햇병아리 소상공인이기에 전체 판을 읽는 나의 안목이 제한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설익은 생각이더라도 우리가 함께 다양한 가능성을 공부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면 쿠팡의 시대에도, 아마존의 시대에도 생존할 수 있는 동네 장사 모델을 찾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아마존의 시대에도 개성 넘치는 독립서점들이 활약하듯이 쿠팡의 시대가 오더라도 당당하고 멋지게 살아갈 작지만 단단한 독립마트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원문: 경욱의 브런치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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