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이 설계된 그곳으로
올 4월 말경 THIS.COVERY의 일환으로 일본 디자인 여행을 떠났다. 목적은 단 하나! 고객을 위한 취향을 설계해 혁신의 공간으로 꼽는 쓰타야가 고객을 위한 경험을 어떻게 설계했고, 고객에게 제시하는 방식이 궁금했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 몇 가지의 가설을 세우고 그들이 설계해놓은 경험 속으로 진입을 했다.
가설
- 쓰타야는 어느 시점에 취향의 컨텍스트를 제시하는가?
- 쓰타야는 컨텍스트를 어떠한 방식으로 구성해 고객에게 제시하는가?
- 쓰타야의 타깃 고객이라고 할 수 있는 프리미엄 에이지 고객 계층에게 어떠한 특별한 경험을 주고, 이를 락인(Lock-in) 효과로 이끄는가?
쓰타야의 분류
먼저 쓰타야에 들어서면 메인으로 공략하고자 하는 고객들을 위한 취향에 따른 콘텐츠가 고객을 맞이한다. 공간으로만 보면 이곳은 책을 파는 공간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일종의 편집숍이나 문화공간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메인 콘텐츠인 책을 제시하는 방법을 살펴보며 가설 1 ‘쓰타야는 어느 시점에 취향의 컨텍스트를 제시하는가?’를 검증해보자. 책들의 분류는 일반적인 서점의 그것처럼 문학, 비문학, 예술, 디자인 등으로 대분류가 나뉘었다.
이 지점에서 사실 컨텍스트 제시 시점이 고객의 여정 진입 때부터 제시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진입했다. 이를테면 최근의 온라인 콘텐츠 플랫폼들이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큐레이션된 콘텐츠를 제시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런 가설 혹은 기대는 교보문고와 같이 일반적이어서 조금은 실망했다.
그래서 궁금했다. 분명 취향과 관련된 상품(굿즈)이나 책을 같은 공간에 구성해 놓은 것 이상으로 고객에게 제시하는 것이 있을 텐데…라고 의문점을 갖고 다시 가설 2 ‘쓰타야는 컨텍스트를 어떠한 방식으로 구성해 고객에게 제시하는가?’의 검증 차원으로 그들의 방식을 탐색(Discover)을 하기 시작했다.
취향 컨텍스트를 구성하는 기준들이 특별한 맥락을 지닌 것인가?
관점을 이동해가며 쓰타야의 설계를 이해하려고 했다. 그러다 마주한 것이 책들 사이에 꽂힌 분류 플래그의 방식이었다.
요리를 좋아할 만한 사람이라면 관심을 가질 만한 프레이즈로 이루어져 책장 하나가 요리에 관련한 이야기들이 담긴 공간이 된다. 고객의 경험이 카테고리에 들어오는 순간, 그들은 인덱스로써 콘텐츠를 제시하는 게 아니라 키워드나 문장으로써 고객과 브랜드가 서로 대화한다. 즉 카테고리 안의 책들을 새로운 맥락으로 군집화를 함으로써 또 다른 콘텐츠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책은 콘텐츠가 아니라 컨텍스트로 된 스토리가 있는 공간의 한 파생물로써 재탄생하고, 그때부터 고객 경험이 재생산되는 것이다. 만약 책들의 구성이 의미 없는 인덱스로 구성되었다면, 고객은 쓰타야가 아니라 책을 구입하고부터 경험이 생산될 것이다. 서점의 경험이 아니라 단편적인 책을 읽는 행동의 경험 말이다.
이처럼 브랜드의 서비스 전략에 있어서 고객에게 어떠한 경험을 전달해 줄 것이냐의 고민은 상품 그 자체가 아니라 상품을 구성하는 맥락에서부터 브랜드 경험이 생산되게끔 전략을 짜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설 3 ‘어떠한 특별한 경험을 주고, 이를 락인(Lock-in) 효과로 이끄는가?’를 검증해보았다. 고객을 컨텍스트 안으로 끌고 왔다면 이제 매력적인 콘텐츠들을 보여줄 차례다. 그래서 또다시 검증으로써 탐색한 결과 그 콘텐츠들은 람보르기니, BMW 3&5 시리즈부터 시작해서 비틀이나 오토바이와 같은 다양한 오브제들이 공존했다. 실제 판매는 람보르기니 관련 책을 구매할지라도, 공간 안에 몰입시키게 만드는 요소들은 오브제들이 할 역할이다.
마찬가지로 패션 쪽 코너에서도 같은 개념으로 작용한다. 패션 책이 주 콘텐츠이지만, 그들을 컨텍스트 안에서 몰입시키기 위해 음악이나 디퓨저와 같은 오브제들을 배치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2층에는 음악과 영화가 있는 공간까지 만들어 놓았다. 그렇게 여기 쓰타야에서는 개인의 수많은 문화적 경험들이 계속 생산되는 것이다.
그래서 결론으로 본 내가 본 쓰타야가 고객과 대화하는 법은 이렇다.
- 대분류: 카테고리(너는 이런 쪽에 관심이 있구나?)
- 중분류: 컨텍스트(그 관심 안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있어.)
- 상품(그 이야기들에는 책도 있고 굿즈도 있어.)
- 그들이 고객을 설득하는 방식: 네 취향에는 이런 이야기들(책을 포함한 다양한 굿즈)이 있어!
그렇다면 이런 방식으로 고객을 설득하는 경험 커뮤니케이션의 커머스 사례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대표적으로 29cm와 같은 커머스가 있을 수 있다. 29cm의 고객에게 제품을 제시할 때는 마치 패션 매거진을 보듯이 라이프스타일을 터치한다.
보통의 커머스처럼 카테고리별로 세일 상품을 알려주거나 인기 TOP 100 상품을 알려주지 않는다. 패션을 기본으로 요리, 문화, 피트니스 등으로 생활 전반을 아우르는 콘텐츠와 상품을 제시한다. 그래서 마치 쓰타야처럼 고객과 브랜드의 접점은 옷이 아니라 29cm가 얘기하는 라이프스타일이 되는 것이다.
교보문고의 분류
앞서 가설과 검증을 통해 쓰타야가 고객 경험을 어떻게 설계했는지 봤다면 이번에는 한국의 대표적 서점 브랜드인 교보문고를 살펴보자. 교보문고 영업점 중에서 강남점을 기준으로 보고자 한다.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맞이하는 건 베스트셀러 혹은 스테디셀러다. 즉, 현재 뜨는 책이다. 바로 이 점이다. 그들이 제시하는 기준은 고객(Customer)이 아니라 마켓(Market)이다. 경험의 연결 또한 분할(Segmentation)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고객이 받을 수 있는 가치의 무게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 쓰타야: 집단취향 → 방문고객
- 교보문고: 마켓 → 방문고객
심지어 광고 관련 도서도 따로 배치해 둠으로써 더욱더 고객 관점의 서비스가 아니라 공급자 관점의 서비스로 되어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는 너무나 명확하고 분명하게 쓰타야의 방식과 구분된다. 과연 이런 분류에 따른 컨텍스트가 고객에게 더 나은 경험을 안겨줄지는 의문이다. 인기 있는 책을 알려주는 이상 그 이하도 아닐 뿐이다. 고객을 위한 특별한 경험을 설계되었는가 말이다.
쓰타야의 경험 설계를 탐색했던 것처럼 요리책을 보고 싶다는 가상의 목적으로써 고객 여정을 비교해 살펴본다면 대분류, 중분류, 상품 순으로 카테고리의 흐름은 정직한 흐름으로 되어 있긴 하되 고객에게 유의미한 맥락으로써 전달코자 하는 서비스 전략은 보이지 않는다.
결국 고객은 원하고자 하는 책을 찾은 목적을 달성하는 행동 이외에 창출되는 가치는 없다. 앞서 보았던 쓰타야의 ‘요리의 과학’이라는 맥락으로써 책들이 모여 만들어낸 어떤 새로운 이야기는 생산되지 않는다.
그래서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과연 아래와 같이 인문학이라는 대분류 안에서 새로 나온 책, 화제의 책이라는 기준으로 제시한 것이 고객에 대한 만족감은 얼마나 될지, 과연 책이라는 가치 이외에 만들어낼 수 있는 가치가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집단의 선호도를 알려주는 것이 나와 취향이 같은 사람일지, 세그멘테이션이 되지 않은 시장 전체로 설계할지 여부에 있어서 거시적인 브랜드 서비스 만족도 측면으로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 대분류: 카테고리
- 중분류: 화제 / 신간 / 출판사별
- 상품: 책
- 그들이 고객을 설득하는 방식: 대중이 많이 찾는 책은 이거야!
이런 방식으로 고객을 설득하는 방식의 커머스의 사례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여러 커머스 사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 SSG닷컴을 사례로 들고자 한다. SSG닷컴은 위에서 살펴본 교보문고처럼 상품의 카테고리별로 가장 인기 있는 상품, 가장 많이 검색하는 상품들로 맥락을 구성했다.
즉 기준점이 취향이 아니라 패션, 잡화, 뷰티, 가구 등의 기본적 상품 속성을 기반으로 하는 인기상품이다. 이는 앞서서 교보문고의 경우처럼 기준이 분할된 것이 아니라 마켓 전체기 때문에 고객이 느낄 경험의 가치는 미지수다.
조금 더 친절한 그들의 방식
그들은 여기에 더해 다수의 콘텐츠를 구입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고객 친화적으로 더 생각한다. 고객이 브랜드를 마주하는 첫 터치 포인트인 매장 입구마다 바구니를 두어서 쇼핑에 방해되는 요소를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했다. 이에 따라 고객은 쓰타야가 마련해놓은 취향을 경험하는 데 있어서 세심한 배려를 느낄 수 있다.
반면 교보문고는 어떤가? 입구에는 오직 공급자 관점의 광고를 위한 X배너만이 맞이할 뿐이고, 그나마 있는 장바구니는 계산대 구석에 있을 뿐이다. 여러 권의 책을 구입하고자 하는 고객들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뿐 아니라, 장바구니가 고객 여정의 마지막 장소에 있어 장바구니를 손에 쥐기에는 허들이 높다.
이런 점들이 관점을 어디 두느냐에 따른 디테일의 힘이 작용하는 것이다. 관점이 공급자 관점이면 맥락도 마켓을 기준으로 풀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역시 고객에게 제시하는 배려는 광고일 뿐이다. 그러나 관점을 고객으로 이동했을 때 입구마다 장바구니 배치하는, 사소하지만 디테일한 아이디어 같은 것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시사점
몇 시간의 경험을 토대로 쓰타야가 고객 경험을 설계한 방식을 살펴보았다. 또한 쓰타야와 교보문고와의 비교를 통해 어떠한 서비스 설계가 고객들에게 더 나은 가치를 줄 수 있느냐를 고민해볼 수 있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고객 경험을 만들고 설계한다는 것은 브랜드 에센스 및 철학의 결에 맞추어 시각적인 디자인 설계만으로는 해결되지는 않는다. 고객을 우리가 설계해놓은 경험이라는 울타리 안에 들어오게 했을 때, 고객의 관점으로써 고객과 브랜드가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을지 고민해보아야 하고, 고객에게 파는 것이 상품 콘텐츠인지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경험 컨텍스트인지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고객에게 할인율이나 낮은 가격, 혹은 광고나 캠페인을 통해 고객을 많이 유입시키고, 매출을 올릴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객을 위한 경험을 설계를 통해 고객에게 가치 있는 그 무언가를 전달했다면, 고객이 그 가치를 체화할 수 있으며 다시 새로운 경험이 생산될 수 있다. 그로써 고객은 누구보다 강력한 브랜드의 팬을 넘어서 자발적인 브랜드 전도사까지 될 수 있다.
쓰타야의 경우 책들을 맥락으로 묶음으로써 이야기가 될 수 있게 했고, 고객은 이야기를 받아들이면 그 순간부터는 쓰타야가 만들어 놓은 이야기에 의해 경험은 쓰타야 경험이 아니라 나(고객)의 경험으로 생산이 된다. 즉 더 좋은 가치의 브랜드 구축이 목표라면 명확한 브랜드의 정체성을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고객이 우리의 브랜드 경험을 체화하게 해 그들이 경험을 재생산하게끔 하는 전략이 더 가치 있고 효과적이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