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21년 전,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자 기쁜 마음으로 입대를 합니다(첫 줄부터 거짓말을…). 당시에는 무려 30개월을 수행했던 공군에 입대했습니다. 비행기 구경을 공짜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요. 전투기 근처에서 근무하길 바랬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어서 그런지, 저는 회계 특기를 받게 됩니다. 학교 전공을 본 모양인데, 그 덕분에 제대 전까지 회계업무를 하게 됩니다.
같이 근무했던 장교, 부사관 모두 좋은 분이었습니다. 사무직 분들이셔서 그래도 구타보다는 말로 해 주셨달까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리바리 이등병에게 이것저것 참 잘 가르쳐 주셨습니다. 더불어 그때 잘 배워둔 족구는, 사회 나와서 전형적인 복학생이 되는 데 크게 공헌합니다(학교 후배들에게 참으로 미안한 마음입니다. 저 때문에 고생들 많았습니다…).
상경계열이다 보니 다들 그렇듯 저도 복학하고 전문 자격증 취득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친구들 보면 고시원에서 회계사나 세무사 등을 준비하는 경우도 많았죠. 그런데 군 생활을 하면서 놀라운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대위 이상 장교로 경리병과에서 5년 이상 경리나 회계감사업무를 하면 공인회계사·세무사 시험 1차가 면제라는 것입니다.
무려 공인회계사법에 나오는 ‘법’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알고 계셨나요? 제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1차 시험이 어렵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였죠. 우리나라 회계사 1차 시험은 미국과 다릅니다. 1차를 패스했어도 2차 시험을 2회 낙방하면 다시 1차를 봐야 합니다. 그러니 1차 면제라는 건 엄청난 메리트입니다.
더 놀라웠던 것은, 저런 법이 있다면 장교들의 하루는 가만히 있어도 큰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밖에서 수험생들이 하루하루 열심히 공부하는 그 시간의 의미. 그 의미를 장교들은 공짜로 가져가는 느낌이었죠. 물론 장교들도 업무를 합니다. 하지만 매일 수험생처럼 책만 보는 것도 아니고, 월급을 받으며, 경력도 쌓습니다. 고시생 5년 차와 비교하면 아무래도 훨씬 좋게 보였죠.
그 이후 제 직업관에 변화가 왔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평생 즐겁게 하는 게 가장 좋겠지만 ‘그 일을 하는 것만으로 경력이 쌓여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가’도 중요하게 보게 되었습니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가치가 올라가는 일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찾았을까요? 찾았다면 훨씬 더 자랑스럽게 글을 써 내려갔겠지만 아직입니다. 결국 이건 전문성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그 일을 수행하는 것을 전문가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인정해 주느냐를 봐야 하니까요. 그래서,
- 희소성이 있는 일을 하거나
- 희소성이 있는 직장을 다니거나
- 최소한 프로젝트별 성과를 설명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직장생활을 해 보니 1~3에 해당되지 않는 일이 훨씬 많았습니다. 대기업이라 해도 총무팀에 있다면 전문성을 인정받기 훨씬 어렵습니다. 위에 예시로 든 회계 장교는 ‘관련법’이 있기에 가능한 사례일 뿐, 대기업의 회계팀에 5년 있었다고 해서 회계전문가라고 인정받긴 어렵죠.
회사를 다니는 1차 목표는 (자아실현이면 좋겠지만) 대부분 급여입니다. 꿈을 이루거나 덕업 일치를 한 게 아니라면, 생존을 위해 시간을 돈으로 치환하고 있다면 전문가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좋겠죠. 직장생활을 하며 빠르게 전문가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도 이 목적 중 하나입니다. 혹 좋은 방법을 찾으셨다면 제게도 알려주세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