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은 곰곰이 생각할수록 작은 하마 같은 존재다. 얕보면 X된다. 그것도 아주 X되는 거다.
실제로 연금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했다가 X된 케이스는 매우 흔하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GM이다. 로저 로웬스타인은 그의 책 『복지 전쟁』에서 GM이 얼마나 단기적인 시각으로 연금을 대했는지 잘 보여준다. GM 경영진들은 당장의 부담스러운 임금 인상과 인력조정 대신 연금을 손대는 방안을 선택한 것이다. 그 결과 연금부채와 건강보험 부담이 막대하게 늘어나 GM은 결국 파산을 선언하게 된다.
개인이라고 뭐 다를까. 연금의 존재를 가볍게 여긴 사람들은 갑자기 나이가 들어서야 충분한 돈을 모으지 못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고 불안을 느끼게 된다. 그 이전까지 연금이 필요한 미래가 오려면 아주아주 멀었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인간은 장기(long term)의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너무 먼 미래를 영원히 오지 않을 것처럼 소홀히 대한다. GM의 파산이나 개인 차원의 연금 또한 그런 장기에 대한 과소평가로 인한 결과라는 공통점이 있는 셈이다.
연금은 이런 초장기에 대한 대비라는 측면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가끔 투자에서 높은 자신감을 가지신 분들이 연금이 필요 없다고 하는 것을 보는데 나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먼저 그런 분들이야 투자를 잘하시니 필요 없겠지만 투자는 본질적으로 탁월한 재능을 필요로 하는 일인데 그걸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솔루션으로 권하는 게 옳은지 의문이 든다.
그리고 다른 이유를 들자면 투자 재원과 연금 재원은 엄밀히 따지면 용도가 다르기 때문에 분리하는 것이 장기 재원의 유지와 관리 측면에서도 좋다는 생각 때문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세일러도 그러지 않았는가. 인간은 심리적 계좌(mental account)에 따라 서로 다른 마음 속 계좌에 따라 돈을 쓴다고. 이 말은 초장기형 연금계좌를 따로 분리하지 않고 투자용 계좌에 혼합해 운용할 경우 필요한 자금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과 다름없다. 투자는 잃어도 되지만 연금은 잃어선 안 되는 자산이 아닌가?
연금이 왜 중요한지 이해했다 치더라도 그럼 그다음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 통신사의 요금제와 연금은 무슨 파생상품만큼이나 매우 복잡한 상품이다. 그렇기에 『마법의 연금 굴리기』는 여기서 매우 중요한 가이드라인이 되어줄 책이다.
책은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는 연금의 이해와 투자와 변동성의 기본을 이해하는 내용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이 부분은 본 내용이라 할 수 있는 후반부를 이해하기 위한 사전 지식을 쌓는 과정이다.
책의 본 내용은 파트 2부터 시작이다. 저자의 전작이 투자에서 자산 배분의 중요성과 그 방법 대해 다룬 『마법의 돈 굴리기』였던 만큼 파트 2는 연금에서 ETF를 통한 자산 배분 방법을 이야기한다. ISA와 연금저축, IRP를 각각 다루는데 그 활용 방법을 설명한다. 개인적으론 안다고 생각했음에도 잘 몰랐던 부분들이 나왔음을 수줍게 고백해본다. 그리고 저자의 전작에서의 생각과 견해에 나 또한 완전히 공감하는지라 이번 책의 내용과 주장에도 동의한다.
은퇴 자금의 관리와 투자에는 좀 더 신중함이 필요하다. 책에서도 소개하는 내용이지만 사람들은 ‘단기간, 고수익’에 너무나도 쉽게 현혹된다. 단기간의 고수익은 매우 매력적인 표현이고 누구나 원하는 것이긴 하지만 그것이 그리 쉬웠다면 모두가 부자가 됐을 것이다.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이 본질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투자에서 단기 수익은 거의 운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전작에서 이미 보여준 바 있다. 단기에는 누구나 운만 따라주면 거금을 벌 수 있지만 장기에서는 어림없다. 그리고 단기 퍼포먼스가 지나치게 우수한 사람들은 장기에 그 실력을 증명하는 데 대부분 실패한다. 이 점을 감안하면 단기간에 고수익을 노리며 은퇴 자금을 밀어 넣는 행위는 은퇴 자금을 운에 맡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기가 아닌 경우에도 이런데, 사기의 경우까지 포함하면 이건 더 가능성이 더 낮아지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귀한 자금을 날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특히나 연금은 그 속성 자체가 초장기 상품임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런 초장기라는 기간은 효과적인 자산 배분이 큰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저자의 전작인 『마법의 돈 굴리기』와 함께 읽을 것을 권하고 싶다.
원문: 김영준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