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이 간첩증거를 조작하기 위해 중국 공문서까지 위조한 ‘국정원 간첩조작 사건’이 지난 11일 결심공판에 이어 이제 항소심 선고공판을 앞두고 있다. <단비뉴스>는 전대미문의 ‘국정원 간첩증거 조작사건’과 관련한 주요 언론들의 보도태도를 분석해 2회로 나눠 싣는다. (단비뉴스편집자 주) / 기사: 단비뉴스 박채린, 강명연 기자
지난달 31일 검찰이 국정원 대공수사국 김모(48) 과장과 국정원 정보원 김모(61)씨를 기소하면서 국정원의 간첩 증거 조작행위가 백일하에 드러났다. 검찰은 이에 앞서 지난달 27일 유우성(33)씨 간첩조작 사건 관련 문서 3건에 대해 증거신청을 모두 철회했다. 지난 2월 14일 중국 정부가 유씨 사건 담당 재판부에 이 문서 3건이 모두 위조된 것이라고 통보한 이후에도 위조 사실을 계속 부인하던 검찰이 마침내 백기를 든 것이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게 전개되고 있는 이 사건에서 언론은 과연 어떤 역할을 했을까? 유우성씨 사건은 1년여 전 <동아일보>가 1면에 “탈북자 1만명 정보 통째로 北에 넘긴 정황”(2013년 1월 21일자)이라는 표제의 기사를 보도하면서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같은 날 석간 <문화일보>는 “한국 내 체류 중인 탈북자들의 정보를 북 측에 넘긴 사실을 모두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사설을 통해 “이런 간첩행위가 탈북자 출신의 서울시 공무원 유모씨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점에서 탈북자 지원업무체계에 큰 구멍이 뚫린 것이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이후 이 사건은 이른바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1만 명이라던 탈북자 명단은 검찰의 기소 단계에서 30명 수준으로 줄었다. 그마저도 변호인 측은 유씨가 활동하던 단체에서 장학금을 주기위해 만든 명단이라고 항변했다. 결국 1심 재판부는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무죄판결을 뒤집기 위해 항소심에서 유씨의 북-중 출입경기록 등을 새로운 증거로 제출했으나 모두 위조된 중국 공문서로 판명됐다. 결국 검찰은 유씨가 간첩임을 입증한다던 문서 3건의 증거신청을 철회하고, 증거를 조작한 국정원 직원 등을 구속 기소했다.
하지만 이런 결과가 어느 날 갑자기 찾아 온 것은 아니다. 사실 유우성 간첩 사건 수사를 둘러싼 의문은 지난해 기소 단계에서부터 여러 차례 제기됐다. 유씨의 여동생 유가려 씨는 중앙합동신문센터 독방에 6개월이나 감금됐다가 풀려 나온 뒤 국정원 수사관의 가혹행위에 못 이겨 오빠가 간첩이라는 허위진술을 하게 됐다고 폭로했다.
유씨가 북한에 들어갔다는 것을 증명한다며 검찰이 제출한 사진은 사실 중국에서 찍은 사진이었음이 민변과 독립 탐사보도매체 <뉴스타파>의 조사로 확인됐다. 하지만 이런 의문에 주목하는 주류 언론은 거의 없었다. 사실 이 때 주류 매체가 유씨와 변호인 측 주장에 귀 기울이고, 국정원과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공소유지를 감시했다면 항소심 과정에서 외국의 공문서까지 위조해 간첩 증거를 조작한 전대미문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단비뉴스>는 ‘국정원 간첩증거 조작사건’과 관련해 주요 신문들이 과연 어떤 보도행태를 보였는지 살펴보기 위해 <경향신문>, <동아일보>, <문화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등 6개 일간지를 분석했다. 분석 기간은 검찰의 허위 사진 제출 의혹이 제기된 2013년 7월 11일부터 국정원 협력자 김모씨가 자살을 시도하기 직전인 2014년 3월 5일까지, 그리고 국정원 직원 김 과장이 구속된 지난 3월 19일부터 4월 2일까지 두 구간으로 나눴다.
‘조중동’ 합해도 한겨레 보도건수 못 미쳐…위조의혹 외면
첫 번째 기간(2013년7월11일~2014년3월5일)에는 1심 무죄판결(2013년 8월 22일), 중국정부의 공문서 위조 확인(2014년 2월 13일), 대검 디지털포렌식센터 감정 결과 발표(2014년 2월 28일) 등의 이슈가 있었다. 이 기간 동안 6개 일간지가 내보낸 이 사건 관련 기사는 모두 172건이었다. <한겨레>가 50건(29%), <경향>이 48건(28%)을 내보내 전체의 60% 가까이 차지했다. 반면, <문화>는 26건(15%), <동아>, <조선>, <중앙>은 각각 17건(10%), 16건(9%), 15(9%)에 그쳤다.
9개월간의 긴 기간 동안 유우성 사건 재판과 관련해 상당히 많은 이슈들이 발생했는데도 소위 보수 메이저 신문들의 보도량이 이처럼 빈약한 것은 이들이 주요 사안들을 의도적으로 외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는 유씨 사건을 <동아>와 함께 가장 먼저 보도했었다. 하지만 1심 판결에서 무죄가 난 소식은 일반 기사로는 전혀 다루지 않았다. 다음날 사설에서 언급했을 뿐이다. 현재 한국 언론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는 무보도 행태를 보인 것이다.
<조선>은 “탈북자 출신 서울시 공무원, 1심서 간첩 혐의 무죄”(2013년 8월 23일자, 12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검찰의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었다는 점을 언급하면서도 수사기관이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지 않은 점을 ‘국정원의 실수’라고 축소 보도했다. 이후 항소심이 시작되고 2013년 12월 6일 독립탐사매체 <뉴스타파>의 중국 현지 취재로 증거위조 의혹이 제기되기 시작했으나 이 두 신문은 2014년 2월 14일 중국이 검찰 측 문서가 위조됐다고 통보하기 전까지 단 한건의 관련 기사도 보도하지 않았다.
두 번째 기간(2014년 3월 19일~4월 2일)에는 국정원 김모 과장 구속(3월 19일), 김 과장과 문서위조를 함께 주도한 권모 과장 자살 기도(3월 22일), 협조자 김모씨 구속(3월 31일) 등이 발생했다. 이 시기는 15일에 불과했지만 모두 141건의 기사가 나왔다. 표에 집계된 것처럼 첫 번째 구간과는 달리 소위 진보와 보수지 간 보도 빈도에 거의 차이가 없었다.
김 과장이 구속된 3월 19일부터 22일까지 관련 기사를 하루에 한 건 정도 낸 <동아>, <조선>의 경우 권 과장의 자살 기도 뒤인 25일에는 각각 4건의 기사를 냈다. 권 과장의 자살 기도를 계기로 보수지에는 검찰이나 국정원의 입장을 옹호하는 기사가 눈에 띄게 늘었다. 검찰이 국정원 김 과장을 구속하면서 국가보안법상 ‘날조죄’가 아니라 일반 형법의 ‘모해증거위조죄’를 적용한 것에 대해 비난여론이 일자 <조선>은 ‘위조죄’ 적용이 합당하다는 기사를 실어 검찰의 입장을 살려줬다.
<문화>의 경우 김 과장이 구속된 3월 19일부터 22일까지는 단 2건의 기사만 실었지만 권모 과장이 자살을 시도하자 하루에만 5건의 기사를 쏟아냈다. 특히 권 과장을 ‘일심회‧왕재산 사건 등 주요 공안 사건을 해결’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또 사설을 통해서는 ’간첩이 국정원 쑥대밭 만들었다‘는 “對共일선의 항변”이라는 제목으로 권 과장의 유서를 “‘음지’에서 목숨을 걸다시피 하는 업무를 장기간 맡아온 50대 간부의 주장”이라며 국정원을 오히려 피해자처럼 보도하는 태도를 취했다.
국정원·검찰 발언에 의존, 유우성·변호인 말은 못 들은 척
<단비뉴스>는 보도 빈도 이외에 각 언론사가 ‘국정원 간첩증거 조작사건’을 다루면서 주로 어떤 취재원에 의존했는지도 살펴봤다. 첫 번째 기간에 보도된 기사 171건을 전수 조사한 결과 취재원(국정원의 경우 보도자료 포함)의 발언을 직접 인용한 횟수가 모두 296건 집계됐다. 한 기사에서 같은 취재원을 두 번 이상 인용한 경우는 한 번으로 처리했다. 취재원 유형은 유우성씨를 간첩으로 몰아가는 검찰, 국정원, 정부와 이번 사건을 증거조작 및 무죄로 몰아가는 유우성과 변호사로 대별할 수 있었다.
취재원 인용 행태를 분석한 결과 보수지와 진보지의 차이가 뚜렷했다. 보수지는 주로 검찰, 국정원에 의존했다. <동아>의 경우 검찰과 국정원 취재원을 10차례 인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취재원 중 63%다. 이어 <중앙>이 13차례 인용으로 59%, <조선>과 <문화>가 6번과 11번으로 각각 29%였다. 보수신문들은 그러나 유우성씨와 변호인은 취재원으로 거의 활용하지 않았다. <동아>의 경우 단 한 번도 유씨와 변호인 측을 인용하지 않았고, 조선과 문화는 1차례, 중앙은 2차례 인용하는데 그쳤다. 유씨의 입장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면 진보신문은 국정원과 검찰, 그리고 유씨와 변호인 측을 취재원으로 활용하는데 큰 차이가 없었다. <한겨레>는 국정원과 검찰 취재원을 27회(27%), 유씨와 변호인 취재원은 22회(22%) 각각 인용했다. <경향>은 국정원과 검찰 취재원을 21회(22%), 유씨와 변호인 취재원을 12회(12%) 인용해 오히려 국정원과 검찰 취재원을 인용한 경우가 훨씬 많았다.
특이한 것은 <조선>과 <문화>의 경우 전체 취재원 가운데 익명 소식통 인용 빈도가 가장 높았다는 점이다. <문화>의 경우 익명의 소식통을 12차례 활용했다. <문화>의 전체 취재원 가운데 32%를 차지해 가장 많이 등장했다. <조선>은 익명 소식통이 5차례(24%)로, 역시 <조선>의 취재원 가운데 가장 많이 등장했다. 이어서 경향이 2회였고, 나머지 언론사는 익명의 소식통을 활용하지 않았다.
‘소식통’으로 출처 감추고, ‘피동형 표현’으로 주체 숨기고
출처가 확실하지 않은 ‘소식통’ 취재원은 신문사의 논조와 주장을 뒷받침하는 용도로 흔히 사용됐다. <문화>는 “韓 ‘비공식 루트’ 관행 中 ‘방첩의지’ 충돌… 외교문제화”(2014년2월20일자, 5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 중국 소식통’, ‘한 중국 전문가’, ‘정부의 한 소식통’ 등 익명 소식통의 말을 인용하는 방식으로 국정원의 간첩증거 조작이 마치 중국의 ‘방첩의지’에 의해 불거진 것처럼 몰아갔다.
<조선>은 ”간첩사건 유출’ 캐는 中… 對北 휴민트 무너질판”(2014년2월25일자, 12면)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 ‘중국 사정에 밝은 한 소식통’, ‘중국 소식통’, ‘한 외교 소식통’, ‘지린성의 소식통’, ‘외교당국 관계자’, ‘선양의 대북 소식통’ 등 무려 7명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소식통’과 ‘관계자’를 등장시켰다. <조선>은 이 기사에서 자신들이 말하고 싶은 의견을 크게 두 가지 내세운다. 먼저 중국의 위조통보에도 불구하고 국정원과 검찰이 제출한 중국 당국 명의의 문서는 위조가 아니라는 것, 또 하나는 이번 간첩증거 조작 사건이 계속 거론되면 국정원이 구축해 놓은 중국 연변일대의 우리 대북 휴민트(인적정보망)가 망가진다는 것이다.
<조선>은 실제 이 기사에서 “중국이 허룽시 관계 당국 내부 조사에 나선 것은 국정원이 검찰에 낸 문서가 ‘날조’나 ‘조작’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며 ‘해석’의 주체가 없는 문장을 통해 ‘증거 위조 행위는 없었다’라는 자사의 희망사항을 전달했다. 또 간첩증거 조작사건을 들쑤시면 휴민트 망이 붕괴되고 이는 결국 국익 훼손으로 이어진다는 식의 논리를 폈다. 그리고 <조선>은 이런 논조를 손쉽게 뒷받침하고 정당화하는 방편으로 수많은 ‘익명 소식통’을 내세웠다.
‘익명 소식통’뿐 아니라 피동형 표현도 기사 내용의 출처를 밝히지 않고, 손쉽게 특정 정보를 기사에 담아 전파하는 수단으로 사용됐다. <조선>은 같은 기사에서 “중국 당국은 이번 사건을 ‘방첩 사건’으로 접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표현했다. 구체적 사실을 거론하면서도 출처와 근거는 제시하지 않은 것이다. 이처럼 이 기사에는 ‘알려졌다’, ‘전해졌다’, ‘해석되고 있다’ 등의 서술어가 반복해서 나오고 있다. <문화>는 “檢, 국정원 블랙요원 신병확보 주력”(2014년3월4일자, 8면)이라는 기사에서 “이 비밀요원은 전직 중국 하급 공무원 출신인 조선족 정보원들을 활용해 관련 기록을 입수한 것으로 전해졌다”라며 역시 피동형 표현으로 정보의 출처를 숨기고 있다. 이 기사에만 ‘알려졌다’가 4번, ‘전해졌다’가 2번 사용됐다.
이처럼 익명의 소식통과 주체를 알 수 없는 피동형 서술이 반복되면 그 기사의 신뢰도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 자신들의 주장이나 미확인 사실을 전파하기 위해 편법을 쓴다는 의심도 피하기 힘들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 관련 언론의 보도 행태에 대해 “특정 언론사들이 자본, 정치권력과 유착관계에 있기 때문에 정치권력의 입맛에 맞는 보도를 하는 것”이라며 “이것은 언론의 사명으로부터 벗어난 보도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할 의무가 있는 언론이 스스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언론인, 학자, 국민이 여론을 형성하고 계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원문: 단비뉴스 / 단비뉴스 박채린, 강명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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