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운동가도 길가에 페트병을 버리는 날이 언제인지 아니?
마라톤 연습을 하는 아빠가 말했다. 당연히도 답은 마라톤 대회였다. 결승점까지 병이나 컵을 들고 가기에는 불편하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완벽히 하고 들어가면 그것은 마라톤이 아니다. 지구가 아픈 것을 방지하기 위해 물을 아예 마시지 않는 순간 본인이 지구보다 먼저 인생의 결승점을 통과하는 수가 있다.
인생이 마라톤이라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플라스틱을 남길까
다행히도 마라톤 대회는 정해진 코스가 있고, 바닥에 떨어진 병을 주워줄 자원봉사자가 있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버려지는 물병들의 사정은 좋지 못하다. 재활용이 되지 못하고 태평양에 떠도는 플라스틱 섬이 우리나라 면적의 15배다(…)
지난 4월 28일 영국 런던마라톤에서는 특별한 일이 일어났다. 바로 기존에 페트병에 담아서 주던 물을 포장째 먹을 수 있는 팩으로 준 것이다. 물 포장은 미역 추출물로 만들어져서 버려도 분해될 수 있었다. 이번 런던마라톤의 도전으로 플라스틱 페트병 20만 개를 절약하는 효과를 얻었다고 한다.
목은 마르지만, 더 이상 플라스틱을 마음 놓고 쓸 수 없는 시대. 여러 반짝이는 아이디어들은 갈증만 가득한 환경문제에 목을 축여주고 있다. 오늘 마시즘은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한 생수병들의 도전에 대한 이야기다.
런던마라톤의 그 녀석: 오호
- 장점: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 단점: 포도 껍질째 먹는 기분이 들 걸
런던마라톤의 그 녀석. 바로 ‘스키핑 락스(Skipping Rocks)’의 ‘오호(Ooho) 캡슐’이다. 영국 왕립 예술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만든 이 녀석은 이전부터 여러 디자인상과 기술상을 쓸었다. 계란 노른자를 보면서 떠올린 이 아이디어는 제작도 간편하고, 단가도 저렴하다(30원도 안 됨). 껍데기는 먹어도 되고 버려도 6주면 분해된다고 하니 오호야 말로 가장 미래의 음료병이다.
…라고 하기에는 상용화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마시는 입장에서는 한 번에 다 마셔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다. 또한 포장 때문에 유통에 문제가 생기는데. 유통과정 중에 더러워지거나 터지는 등의 일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른 것이 마라톤이었다. 정해진 장소에서 한 번에 마실 수 있는 안성맞춤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제약이라면 그냥 식수대를 쓰는 게 나을지도(…)
맛있는 물이 환경도 잘 지킨다: 이로하스
- 장점: 나도 모르게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준다
- 단점: 줄여봤자 플라스틱 썼음
실행 가능한 방법 중에서 플라스틱을 줄이고 있는 음료 브랜드는 무엇일까? 일본의 ‘이로하스(I Lohas)’는 페트병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 양과 처리방법을 줄이기 위한 방법을 적용했다.
이로하스의 가장 큰 장점은 사람을 행동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제작 단계에서 다른 페트병보다 40%가 적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병은 매우 얇다. 또한 페트병에는 굴곡이 많은데 라벨을 떼어낸 후 짜내면 쉽게 꽈배기(?)가 될 수 있다.
‘크러쉬 에코(Crush ECO)’라고 불리는 캠페인은 사람들이 쉽게 병의 뚜껑과 라벨을 분리하고, 페트병을 짜게 만든다. 덕분에 버리고 재활용되는 과정에서 공간을 적게 차지하게 만든다. 같은 분리수거라도 뚜껑과 라벨을 따로 구분하는 것. 용량을 줄이는 것은 재활용에서 많은 차이를 준다. 플라스틱 사용계의 아나바다랄까나.
생수병이 하면 생수통도 한다: 에비앙 정수기
- 장점: 몸도 지구도 건강한 물 생활을 한다
- 단점: 지갑에는 눈물이 난다
에비앙은 아예 생수기에서 플라스틱 사용을 줄였다. 5L짜리 생수통이지만 사용된 플라스틱은 1.5L 생수병보다 66%나 적다. 놀랍도록 얇은 플라스틱 막으로 생수병을 만든 것이다. 덕분에 물을 마실 때마다 플라스틱 물병 ‘버블’이 조금씩 찌그러진다는 게 장점. 그것조차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에비앙의 이름값 덕분(?)일 것이다.
에비앙은 여기에 스마트폰 앱을 연동한다. 내가 얼마나 물을 마셨는지, 또는 생수기에 물이 얼마나 남았는지 등을 모니터 해준다. 물통이 찌그러져서 물이 떨어질 즈음에는 알아서 새것으로 교체하러 온다. 수거까지 완벽히 해 재사용률을 높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에비앙의 새 정수기는 5월에 파리, 런던 시민 200여 명을 대상으로 테스트가 들어갈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에도 어서 보급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한국에 들어온다고 해도 나는… 나는…
플라스틱이기를 포기한다: 코브워터, 추스워터
- 장점: 안심하고 버려도 된다
- 단점: 다시 사기 어려우니 버리지 말자
플라스틱 빨대가 퇴출되고(?) 종이 빨대, 쌀 빨대 같은 녀석들이 나왔듯이 신기한 물병도 나오고 있다. 먼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만들어진 ‘코브워터(Cove Water Bottle)’다. 분해가 되는 생분해성 바이오플라스틱(PHA)라는 물질로 제작되었다. 웹사이트에는 나 같은 문과를 위해서 ‘플라스틱보다 꽃이나 오렌지 껍질에 가까운 것으로 만들었다’는 비유도 붙여주었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츄스 워터(Choose Water Bottle)’도 마찬가지다. 이 녀석은 종이 펄프로 만들었다. 라벨 또한 에코 잉크로 인쇄되었고, 뚜껑마저도 일반적인 녀석들보다 분해 속도가 빠르다. 각종 매립장 혹은 바다에 버려져도 전혀 해를 끼치지 않고 분해된다.
이 녀석들은 지구의 건강을 걱정하지 않아도 버리는 물병이다. 다만 상용화와는 거리가 있어 버리고 다시 구하려면 많은 돈과 시간이 든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물병에서 퇴비까지: 페이퍼 워터 보틀
- 장점: 뒷마당 퇴비로 쓸 수 있다
- 단점: 잠깐 퇴비라고?
물병의 퇴비화를 꿈꾸는 녀석이 있다. 바로 ‘페이퍼 워터 보틀(Paper Water Bottle)’이다. 대놓고 솔직한 이름처럼 이 녀석은 종이, 정확히 말하면 밀짚과 대나무, 사탕수수 같은 것으로 만들어졌다. 아이디어와 디자인, 성능에 대해서는 상을 많이 탔지만, 역시나 상용화의 문턱을 넘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땅에 버리면 완벽히 퇴비가 된다는 것이다. 세상이 이런 소재로 제작된다면 쓰레기통도 필요 없지 않을까. 땅만 살 수 있다면 나도 물도 마시고 퇴비도 만드는 것이다. 땅만 살 수 있다면. 땅만….
플라스틱병이 없는 미래는 올까?
인류의 첫 음료가 페트병에 담겨 있지 않았듯이, 우리의 다음 음료가 꼭 플라스틱으로 만든 병에 담겨 있으리라는 법은 없다. 지금 이 순간도 어떤 곳에서 음료의 미래를 바꿀 병을 제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은 아이디어가 음료 전체를 바꾸는 데는 많은 과정이 뒤따른다. 인체에 해롭지 않아야 하고, 재료가 분해가 되어야 하고, 제작과정에서 유통과정에서 환경오염이 없어야 한다. 제작단가도 맞춰줘야 한다. 여러 문턱을 넘어야 하는 재활용 용기의 도전은 마라톤처럼 진행 중이다.
과연 플라스틱병을 대체할 음료의 병은 어떤 것이 될까? 결승점에 완주할 다음 세대의 물병을 기대해본다.
원문: 마시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