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를 대비해 아이들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냐면요, 저도 몰라요… 제가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질문을 하도 많이 받아서 제 나름대로 생각해 본 것은 있어요. 우선 많은 분은 인공지능하고 아이들이 경쟁할 것이라는 상상 속에서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데요. 저는 약간 다르게 생각해요. 만약 인공지능하고 사람하고 경쟁하는 시대가 진짜로 오면 말이에요. 말세에요. 그런 세상 대비해서 뭐 할 거예요. 또는 어쩔 거예요. 이미 그 시점에 생각이 멈춰서 더 이상 진도가 안 나가요.
그러니까 그렇게 경쟁하는 거 말고요. 저는 사람이 인공지능의 도움을 엄청 받아가면서 살아가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인공지능과 같이 잘살 수 있는 사람이 더 잘살게 되겠죠. 인공지능과 같이 잘 살려면 인공지능을 이해해야 할 거예요. 어떻게 하면 인공지능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요?
- 첫째, 뭐니 뭐니 해도 소프트웨어에요. 프로그래밍, 그리고 머신러닝 이렇게 두 가지 모두에요.
- 둘째, 수학 그리고 통계에요. 원래도 그랬지만 데이터의 시대에는 더 중요한 기초가 될 거예요.
- 셋째, 심리학 그리고 생물학이에요. 아마 기계에 대한 이해가 많은 부분 여기서 나올 것이라고 생각해요.
- 넷째, 물리와 철학이에요. 물리는 자연을, 철학은 인간을 생각하는 학문 중 대표인데 앞으로 이게 더 중요해질 거예요. 자연과 인간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보여서 혼란스러울 거거든요.
이런 것들이 다른 것들보다 더 중요해질 것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이 지금보다 더 중요해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아참, 반대로 지금보다 덜 중요해질 것 같은 것은 딱 하나가 생각나는데요. 영어에요. 보청기처럼 쓰는 통역기, 안경처럼 쓰는 번역기가 10년내로 나올 텐데요. 그래도 진짜 영어 공부에 이렇게 시간을 써야 할까요? 잘 모르겠어요.
물론 지금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영어라고 생각해요. 언어는 중요합니다. 당연한 얘기라 굳이 설명이 필요할까 싶습니다만, 사람과 사람은 주로 말과 글로 대화하고 말과 글은 언어로 이뤄져 있습니다. 말과 글이 소통의 전부는 아니라도, 언어는 중요합니다.
사람이 언어로 생각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저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는데, 딥러닝을 알게 되고 또 제프리 힌튼 교수님을 존경하게 된 다음부터는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생각이란 무엇일까」라는 글에 더 적어 두었습니다.
언어를 잘해야 생각을 제대로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은 이제 버렸습니다. 그럼에도 앞서 얘기한 대로 사람과 사람이 대화를 잘하기 위해서는 언어가 중요합니다. 자, 영어 말고요. 우선 언어부터 봅시다. 언어가 얼마나 중요할까요. 우리가 초중고 학생들에게 얼마나 가르쳐야 할 정도로 중요할까요. 일단 영어를 빼고 생각하기 위해서 세상 사람 모두가 한국어만 쓴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러면 질문은 이렇게 바뀝니다.
국어를 얼마나 가르쳐야 할까요? 그러니까, 세상 모든 사람이 한국어로 얘기한다고 할 때, 우리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국어 공부를 얼마나 시켜야 할까요?
적어도 (대부분이 싫어하는) ‘공부’라는 것에 있어서는 수학, 과학보다 국어를 더 공부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기준을 50점이라고 놓았을 때 수학, 과학은 굳이 공부라는 행위를 해야 기초가 다져지고 실력이 늘어서 그 수준이 되는 것이지만, 국어는 굳이 공부를 하지 않더라도 살아가면서 그 수준까지는 저절로 되는 것이거든요.
자, 그럼 이제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한국어로 얘기하는 가정을 버립시다. 대신에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통·번역가 수준 또는 그보다 오히려 더 나은 수준의 인공지능 통·번역기를 모두 가졌다고 가정해 봅시다.
주제에서 약간 벗어납니다만, 인공지능 통·번역기가 사람 통·번역가보다 통·번역 그 자체는 훨씬 더 잘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모든 분야와 모든 지역의 용어와 표현을 잘 알 수 없거든요. 기계가 사람보다 훨씬 많이 알 겁니다(물론 통·번역가의 일이 통·번역 그 자체가 전부는 아니지만, 그건 이 글의 주제를 벗어나니 이쯤에서 생략하겠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한국어로 얘기하는 가정은 다소 비현실적인 부분이 있었습니다만, 최고의 사람만큼 잘하는 인공지능 통·번역기는 상당히 현실적입니다. 저는 10년 후 정도 봅니다. 그럼에도 기계도 완벽한 번역은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건 제가 일본에 살아봐서 몸으로 느끼는 것이기도 한데요. 일본어에 있는 표현이 한국어에 없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완벽한 번역이랄까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만, 그것은 기계뿐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로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계를 쓰건 사람을 쓰건 어차피 스스로 그 언어를 직접 읽고 듣는 것과는 이해의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질문은 이렇게 바뀝니다.
통·번역기가 못 해주는 부분, 그러니까 5% 또는 10%를 스스로 채우기 위해서 영어(로 대표되는 외국어) 공부를 얼마나 해야 할까요?
그 5%를 조금이라도 더 채우는 방법이 영어 공부 말고도 많다고 봅니다. 세상 모든 다른 공부도 그 5%를 채워 줄 겁니다. 바디 랭귀지에 대한 공부, 사람의 심리에 대한 공부, 지역과 문화에 대한 공부 등.
그래서 인공지능 시대에는 사람들이 지금처럼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할 필요가 없으며, 또 실제로 (누가 이런 주장을 하건 말건) 어차피 영어 공부를 많이 안 하게 될 거라고 봅니다. 아예 안 할 거라는 것은 아니고 적어도 국어보다는 적게 하게 되지 않을까? 하고 상상해 봅니다.
진짜로 인공지능 시대를 대비한다고 영어 공부를 손 놓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긴 해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제 뇌피셜입니다. 하도 질문을 많이 받아서 여하간 저만의 대답이라도 하긴 해야 할 것 같아서 억지로라도 쥐어짜 내서 정리해 본 것입니다. 언제 바뀔지 모르는 생각들입니다.
사족
- 지금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공부 중 하나가 영어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뭘 하든 영어를 잘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이 글의 제 생각에 대한 100% 확신은 ‘당연하게도’ 없습니다. 뭐 느낌으로 보자면 80% 정도? 그래서 ‘그럼 당장 영어 공부를 진짜 그만둬도 되냐?’ 물어보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습니다.
- 스스로 이 글을 다시 읽어 보면서 느끼는 건데, 역시 글쓰기 교육은 앞으로도 계속 중요할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