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초 디지털카메라가 보급되기 시작했어요. 당시에는 사진보다는 기술에 대한 호기심으로 디카를 하나 샀는데 제 주변에서는 처음이었어요. 코닥이었는데 모델명이 기억이 안 나네요. 그리고 저는 사진을 많이 찍게 되었어요.
1년쯤 지났을까, 필름카메라 그리고 사진관이 사라질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하지만 제 주변에 그런 얘기를 했을 때 진심으로 동의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어요.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디카가 필카를 이기며 사진관이 사라지겠냐는 의견이 대부분이었죠. 특히 사진에 관심이 많고 잘 아는 분들일수록 그랬지요. 2002년까지만 해도 그랬어요.
시간이 흐르고 흘러 2009년이 되었어요. 저는 여전히 디카와 사진을 좋아했어요. 캐논의 오두막도 갖고 있었고요. 빨간색 링을 한 큰 렌즈, 또는 긴 렌즈도 몇 개 가졌지요. 클리닝 도구들도, 원격으로 촬영할 수 있는 사제 리모컨도 있었고요. 여행 가면 항상 무거운 삼각대도 챙겨 다녔어요.
그러다가 2009년에 어떤 시장 보고서를 보게 되었어요. ‘이제 곧 스마트폰 때문에 사람들이 디카를 덜 쓰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어요. 저는 믿기 어려웠어요. 디카의 렌즈가 크고 바디가 큰 것에는 이유가 있거든요. 렌즈를 교환해야 하는 것도 이유도 있고요. 작고 가벼운 게 중요한 스마트폰이 디카를 대체하게 될 리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2015년말이 되었어요. 저는 그때 문득 지난 3년간 제가 단 한번도 디카를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스마트폰이 있는데 굳이 디카를 쓰는 것은 너무나 큰 각오가 필요한 일이었던 것이지요. 그 전 3년간 그런 각오가 서는 일이 단 한번도 없었던 거에요. 그리고는 바디와 렌즈 등을 모두 중고로 처분했어요.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사진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필름과 렌즈와 바디와 삼각대, 더 나아가서 찰칵 하는 소리마저 좋아하게 될 수 있어요. 그런 사람들이 인스타그램과 B612를 좋아하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에요. 사진에 별 관심도 애정도 지식도 경험도 없던 사람들이 인스타그램과 B612를 좋아하기가 더 쉬운 것이지요.
어떤 사안에 전문가들이나 애호가들이 오히려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기 힘들어요. 그렇게 되기가 쉽지 않아요. 객관적이 되기에는 관심과 애정과 지식과 경험이 너무 많거든요.
원문: Sedong Nam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