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인터크루(Intercrew)라는 브랜드가 엄청난 인기가 있었던 때가 있었다. 아마도 기억으로는 손지창 씨가 청춘스타이던 시절의 한 드라마에서 입고 나와서 유행했던 것 같은데. 스톰, 닉스란 브랜드도 있었고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도 사람들을 열광시키던 브랜드였다. 너무 먼 얘기인가?
몇 년 전에 보이 런던(Boy London)이란 브랜드가 없어서 못 팔던 시기가 있었다. 비슷한 때에 피갈(Pigalle)이라는 브랜드도 있었고 꼼 데 퍽다운(Comme des fuckdown)이라는 브랜드도 있었으며, 아마 여러분이 지금은 잘 기억하지도 못하겠지만 베트멍(Vetements)이라는 브랜드의 옷이 대세였던 때도 있었다. 이제 와서 그때 샀던 그 귀하던 것들을 입고 나가면 당신이 들을 수 있는 유일한 표현은 “그걸 아직도 입어?”라는 말뿐일 것이다.
불과 작년 즈음이었나? 거의 모든 광고에 한현민 씨가 등장하다시피 했던 적이 있다. 대략 2년여에 걸쳐 한현민 씨는 과장을 조금 섞어 모든 곳에 등장했다. 지금까지 언급한 브랜드나 사람들의 공통점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았고, 소비된 후 사라졌다”는 것이다.
소비자는 생각보다 훨씬 냉정하다. 한번 소비한 것들에게는 더 이상 조금의 관심도 주지 않는다. “오직 하나뿐인 그대”를 빅히트시킨 심신이 그 이후에 어떤 삶을 살았건 “터보”의 마이키가 이후에 노가다를 하건 말건, 언제적 릭 오웬스의 이번 시즌 디자인이 어땠는지 도대체 뭐가 궁금하며, 그걸 알아서 어디다 써먹느냔 말이다.
나는 한현민 씨가 한창 TV나 광고에 등장할 때, 서울 패션위크에서 거의 모든 남성복 런웨이에 설 때 ‘좀 너무 소비되고 있는데’라는 걱정을 했다. 저렇게 노출되다간 단물이 다 빠지겠다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시간은 2년이 채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언젠가부터 그의 모습 대신 보이는 사람이 하나 있다. ‘순댓국밥집 사장님’으로 유명한 모델 김칠두 씨다. 거의 모든 광고와 잡지를 도배하다시피 한다. 최근 잘나가는 브랜드의 섭외 1순위가 김칠두 씨라는 말을 들었다. 실제로도 표지모델부터 브랜드 룩북은 물론이고 서울 패션위크의 런웨이에서도 김칠두 씨는 상종가를 달린다.
최근엔 TV에도 진출하신 모양이다. “순댓국밥집 사장”이라는 서민적인 그의 인생과 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잘생긴 외모, 그리고 아직 한국에는 생소한 “시니어 모델”이라는 독특한 포지셔닝까지 어우러져 한국인이 제일 좋아하는 주인공이 되어 있다.
조금 다르게 이야기해 보면 ‘힘든 인생을 살아온 전 순댓국밥집 사장님의 신데렐라 스토리’는 지금 아주 빠르게 소비되고 있다. 그리고 늘 그래왔듯이 빠르게 소비된 그 이야기가 지루해질 무렵, 대중과 자본은 가차 없이 가치가 줄어든 대상을 버릴 것이다.
대중을 상대하는 모든 일은 이 상관관계 아래 놓여 있고,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라고 편리하게 생각했던 이들은 하나같이 남김없이 쪽쪽 빨린 후에 사라지곤 했다. 이 게임에서 오래 이기는 방법은 딱 한 가지, 소비자에게 선택받지 않고 스스로 소비자를 선택하며 그들 멱살을 붙잡아 끌고 가는 방법뿐이다. 빨려서 죽어 나가건 빨다가 죽건, 어차피 언제 어떻게 죽어 나갈지 모른다면 빨리고 죽는 것보단 빨고 죽는 것이 언제나 낫다.
원문: 이학림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