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슬프다. 때로는 그냥, 슬프다. 언제인가 싸구려 브라운관 티브이에 눈을 고정한 채, 콩나물 다듬던 국밥집 할머니 손을 봤을 때 그랬다. 시선의 자유로움과 손의 수고로움이 교차했고, 묵묵함과 능숙함이 교대했다. 쉼이 여백이 아니라, 일의 연장이었다.
음식은 감정의 진폭이 담기는 매개체다.
박찬일 셰프의 ‘음식론’이다. 박 셰프는 여성지 기자 출신으로 그의 책 『백년식당』 『노포의 장사법』은 오래된 것에 주목하는 사회적 계기가 됐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그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노포에 대한 의견을 구했다.
음식은 단순히 탐미의 대상이 아니다. 생을 지탱한다. 사회적 함의가 담겨 있다. ‘먹는’ 것 말고 ‘먹고사는’ 이야기를 하러, 이태원역 모처 요리 클래스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박찬일 ‘작가’를 찾아갔다.
‘글 쓰는 요리사’ 박찬일 셰프 인터뷰
Q. 자영업자 500만 시대, 기형적입니다. 왜 사람들이 자영업을 택할까요.
박찬일: 교육의 불평등부터 시작합니다. 공부 많이 하고, 사회적으로 사다리를 잘 탈 수 있는 사람, 좋은 지역에서 태어난 사람들 요식업 하나요? 잘 안 하죠. 대중 요식업은 대체로 우리 사회에서 불리한 조건에 놓인 사람들이 뛰어듭니다. 퇴직했다든가. 생계를 위한 생존에 내몰린 사람들이 하는 거예요.
Q. 준비 없이 뛰어들면 실패로 귀결되는 게 당연한 거 아닐까요?
박찬일: 장사 망했다고 그 사람에게만 책임을 물을 순 없습니다. 여러 변수가 있습니다. 누군가 요식업 시장에서 승자가 되는 것은 각별한 노력과, 운, 맛을 내는 비결, 또는 남들보다 우위에 있는 자본력이 뒷받침된 덕이죠. 그런 조건을 잘 갖추면 모든 식당이 잘되느냐. 꼭 그런 것도 아닙니다. 구조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Q. 구조적인 문제라면, 거시적인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건가요.
박찬일: 요식업에만 국한해 바라보는 게 아니라, 사회 구조를 따져봐야 한다는 겁니다. “당신이 맛없는 음식 팔아서 망한 거 아니냐”고 온전히 개인 책임인 양 단정 짓지 말자는 거죠. 그 이면엔 빈부 격차, 교육, 노동의 가치 문제가 결합돼 있기 때문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정치의 영역이죠. 아니, 요식업의 70~80%는 정치의 문제예요. 모든 게 얼기설기 얽혀 있죠.
Q. 개인의 책임도 분명히 해야 하지 않을까요. 백종원의 골목식당 보면, 요리하는 사람들이 바쁘다는 이유로 다른 가게 가거나, 연구하는 걸 소홀히 합니다.
박찬일: 그들도 기본적으로 근로자예요. 특별할 거 없습니다. 물론, 탐구 정신으로 여기저기 먹으러 다니면 좋죠. 선배들도 많이 하라고는 합니다. 음식도 경험의 산물이거든요. 과거에 비하면 노동시간이 짧아져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어느 시대나 잘하는 사람이 있고, 잘 못하는 사람도 있죠. 다만 돈이 없어서 못 하는 경우도 있어요. 안 한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요?
Q. 자영업자를 위한 지원이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긴 합니다.
박찬일: 대개 표면적입니다. 장사 잘되게 해주겠다. 얼마 지원해주겠다, 정도가 다예요. 그러면 민간 차원에서 뭔가 이루어지고 있느냐. 백종원 씨가 특정 가게나 골목 살린다고 영세한 식당들이 살아나나요? 그런다고 우리나라 요식업 바뀌지 않아요.
Q. 청년실업 문제도 걸려 있습니다.
박찬일: 청년들마저 요식업에 뛰어드는 건, 제대로 된 급여 생활을 하지 못 해서입니다. 고용 불안정 탓이죠. 청년들이 취직해 먹고살 수 있으면 자영업도 잘돼요. 가처분 소득이 늘면, 식당에서 밥 한 끼 더 사먹고 세탁소 가서 옷도 한 번 더 맡긴다고요. 고용이 불안정하고 취직이 된다 해도 끽해야 계약직. 그나마 안 돼 요식업으로 들어와요.
Q. 자영업자 상당 수를 정리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과격론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자영업자 500만도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박찬일: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요. 산업 구조, 빈부 격차, 정치적 이해 이런 문제들이 겹쳐 불평등이 심화합니다. 예컨대 대형마트와 소상공인이 경쟁하는 상황도 들여다봐야 합니다. 마트가 그러면 악의 축이냐. 그렇진 않죠. 국가가 나서서 산업정책 차원에서 조정해야 하는데, 기껏 도입한 게 2011년 ‘자영업자 실업급여’ 제도예요. 사후약방문입니다.
Q. 손을 제대로 못 대는 건, 이미 골든타임을 지났기 때문 아닐까요.
박찬일: 그럼 말씀대로 망해서 저절로 구조조정이 일어난다면, 그건 눈앞에 보이는 것밖에 해결이 안 돼요. 만일 300만으로 줄면, 나머지 200만은 뭐 하겠어요. 그 사람들이 고용돼 회사에서 밥 벌어 먹고살 수 있으면 해결돼요. 근데 그게 가능합니까.
Q. 고용 현실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박찬일: 우리 모두에게 있어요. 예전 정부에서부터 무슨 계약직 만들어주고 고용 유연화니 재벌들 편 많이 들었잖아요. 실제로 돈 잘 벌면서 유보금 쌓아 놓고 투자는 안 하는 재벌들도 있고요. 기업은 돈 벌면 웬만하면 쌓아두려고 하죠. 세계 경제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어요. 경제가 좋아진다고 해서 고용 문제가 해결될까요? 기업이 그런다고 고용을 늘리지 않습니다.
정부와 재벌만 탓할 게 아니라, 우리도 이 구조를 구축하는 데 동참한 거예요. 선거 때 좋은 사람 뽑아야 하는데 그렇게 뽑나요? 어떤 아주머니가 ‘나라 팔아먹어도 ○○○ 뽑아 줄게’ 이런 말도 했잖아요. 그 아주머니를 탓하는 게 아니라, 현실 정치는 우리가 만든다는 거죠.
Q. 사회적 관심은 어떻게 형성됐는지, 어떤 시각으로 글을 쓰는지 궁금합니다. 글을 쓸 때, 어떤 생각을 합니까?
박찬일: 밥이 밥다워야 하고, 누구나 좋은 밥 먹을 권리가 있습니다. 밥으로 차별받지 않아야 해요. 밥 먹는 건 인권이니까요. 사람은 성장하고 교류하면서 관점이 생기고 정치적 감각도 싹트죠. 거기에 입각해, 누구를 지지하고 어떤 글을 쓰겠다는 생각이 굳어지죠. 가난한 사람을 지지한다든가, 축산업자를 지지하겠다는 정치적 의식이 생깁니다.
어떤 아이가 밥을 굶는데 요리사들이 정기적으로 밥해준다고 문제가 해결되겠어요? 나아가 ‘먹는다’가 아니라, ‘맛있게 먹는다’가 가능하려면 많은 사회 담론이 필요합니다. 그런 발언은 요리사로서보다 시민으로서 하는 거죠.
예를 들어 베트남 여성이 하는 쌀국수집이 있습니다. 그녀가 결혼 이민을 와 이미 ‘우리나라’ 사람인데 왜 천대받아야 하느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죠. 진짜 베트남 사람이 만든 음식에서는 본토의 향이 난다. 더 많이 먹어주자, 이런 이야기를 할 수도 있죠. 그러다 과거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이 불미스러운 일을 자행한 것에 대해, 국가나 민간 차원에서의 반성과 사과 문제도 제기할 수 있죠.
Q. 버킷리스트가 뭔가요.
박찬일: 외국에서 몇 달 살아보고 싶어요. 국수 공장에서 노동자로 한 달쯤 일해보고도 싶고, 그냥 아무것도 안 하면서 지내고 싶을 때도 있어요. 딱 하나 꼽으라면, 중국에 가서 중국 음식을 쭉 한 번 보고 싶어요. 여유가 생긴다면 그 넓은 땅 덩어리에서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습니다.
사실 버킷리스트는 문자 그대로 버킷리스트죠. 살다가 에너지가 소진되면 해보지도 못 하고 죽는 거고요. 거기에 대해선 큰 불만 없어요. 그냥 희망 사항이랄까요? 바람은 그렇지만 돈에 쫓기는 건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잖아요. 저도 아마 죽을 때까지 일하지 않을까 싶어요.
Q. 앞으로 어떤 책을 내고 싶으세요.
박찬일: 최불암 선생님 조수가 돼, 사라져가는 음식을 기록하고 싶어요. 한국인의 밥상이 그런 걸 조명하거든요. 보상은, 취재하면서 밥 한 술 얻어 먹는 거로 족하죠.
마치며
그는 “사라지는 것에 합당한 이유가 부여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북적북적 시끌시끌한 맛집에 갔다. 박 작가가 내뱉은 말들이 땀처럼 송골송골 이마에 맺혔다.
요리하는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그런 세상은 오지 않아요. 세상 모든 문제는 실타래처럼 꼬여있거든요.
문득 지인이 운영하는 텅 빈 가게가 떠올랐다. 죄의식이 느껴졌다. 그때, 밥은 아팠다. 아니, 여전히 밥은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