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참아봐도 이건 사야겠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걸 돈 주고 사야 해?
‘구매’ 버튼을 눈앞에 두고 내적 갈등이 시작된다. 하루에도 수십 번 장바구니에 담아둔 ‘이 녀석’을 두고 살까 말까 고민한다. 요즘 트렌드에 딱 맞는 핵인싸(!?) 제품이라 ‘어머 이건 사야 해!’라는 소리가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지만, 다른 한켠에서는 “야 이거 시골 가면 널린 거 아니냐?”라며 “굳이 돈 주고 살 필요가 없는 물건”이라 이야기한다. 한마디로 내 마음속의 덕심과 우리 엄마가 싸운다.
“덕후라면 컬렉션 하나쯤은 당연한 거 아니야?”
쇼핑몰을 드나들며 ‘빈티지 컵’, ‘레트로 컵’을 검색하는 내 모습을 다른 마시즘을 보는 사람들이 본다면 뭐라고 말할까?
야… 이건 고민하는 것 자체가 굴욕적인 거 아니냐? 음료 덕후라면 당연히 사고 보는 거지! 음료 덕후라면 숙성된 와인 빈티지보다 컵에 새겨진 로고 빈티지가 훨씬 더 중요한 거라고! 썬몬드 로고가 새겨진 유리컵에 달콤한 베지밀B를 마시는 당신의 모습을 상상해봐!
아… 올드 빈티지 스웩 팍팍 풍기는 썬몬드 유리잔. 거기에 베지밀B를 마신다니 치명적이다.
확실히 요즘 빈티지 컵이 대세이긴 한가 보다. 인스타그램에서 ‘#빈티지 컵’으로 검색하면 8만 건이 넘는 게시물이 나오고, 온라인 몰에만 들어가 봐도 오래된 유리컵 하나가 5만 원에서 비싸게는 10만 원을 호가하는 제품까지 나온다. 이런 트렌드를 소개한 기사들도 작년부터 꾸준했다.
인스타그램에는 빈티지 컵을 주로 사고파는 소규모 셀러들까지 늘어났을 정도다. 이런 흐름에 맞춰 시골 할머니 집에서 득템(!)하는 사람들의 인증샷 또한 줄을 이어서 이 희귀템을 보유한 사람도, 발견한 사람도 모두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올드한 매력이 폴폴 풍기는 이 컵에 매력을 느낀 것은 희소성 때문이다. 88올림픽 기념으로 나온 음료컵이라든지, 코카-콜라의 옛 로고가 새겨진 컵, 그 옛날 판촉물로 쓰였을 것 같은 맥주컵까지 지금은 구하려야 구할 수 없는 물건들이기에 희소가치가 높다.
빈티지 컵 자체가 레어템이지만 여기에 특정 년도가 더해지면 컵은 더욱 특별해진다. 게임으로 치자면 ‘영웅템’ 정도랄까. 앞서 이야기한 ‘88년 서울올림픽 기념’이라든지 ‘○○음료 ○○주년 기념’이라든지, ‘○○브랜드 출시 기념 초판 한정’이라든지… 판매(혹은 배포)된 기간이 짧을수록 제품은 희소가치는 더욱 올라갈 수밖에.
‘영웅템’ 중에 특별한 한 가지가 더해지면 ‘전설템’이 된다. 누구도 구할 수 없고,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그야말로 ‘전설이 된 유리컵’이랄까. 전설템이 되기 위한 단 하나의 요소는 바로 ‘추억’이다.
2000년도 밀레니엄을 맞이하며 전 세계 대혼란(과 세기말)을 예언하며 친구들과 함께 마신 ‘오비맥주 밀레니엄 에디션’이랄지… 빈티지 컵 하나가 희소함과 재미, 거기에 추억까지 소환할 수 있다면 누군가의 ‘전설템’으로 남기에 충분하다.
아, 쓰고 보니 정말 그렇다. 이래서 빈티지 컵이 매력적인 것이었구나…! 역시, 이 컵은 사야 한다! 여러분도 꼭 사세요! ……라고 생각하는 순간, 등짝을 후려갈기는(듯한) 어머니의 그림자!
“그 나이 먹고 등짝을 몇 대나 맞아야 정신을 차릴래!”
뭐? 옛날 컵을 돈 주고 산다고? 아예 보리차 담아 마시는 델몬트 주스 병을 돈 주고 사지 그러냐? (엄마… 그건 이미 희귀템이에요…나에게는 아마도 전설템…) 컵 살 돈으로 집을 사고 차를 사고!
아들의 하찮은 가심비는 진주만을 공습한 전투기처럼 무참하게 갈겨진다. 역시 어머니는 현자시다. 강렬한 한 마디에 찾아온 순식간의 현타… 그래…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언제부터 이런 마니아였다고 이런 컵을 모으고 앉아있냐… 그래… 단념하자… 나는 마음으로 운다. 현타 앞에 무릎 꿇은 현실 직장인은 오늘도 구매 창을 내린다. 그리곤 생각한다.
빈티지 컵, 살 수 없다면 직접 구해야겠지… 후후… 다가오는 주말에 고향 집에서 반드시 찾아내고야 말겠어.
므흣한(?) 상상과 함께, 고향에 내려갈 에디터 코코팜의 마음은 설렌다.
원문: 마시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