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의 불규칙성은 글 전체를 망칩니다
인터넷 검색창에 ‘강박증 유발 사진’이라고 치시면 이런 사진들이 주르륵 나옵니다. 보신 분들 많으시죠?
보고만 있어도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 같습니다. 저는 강박증을 겪어본 적 없는 평범한 사람인데 말이에요. 그런데 보고서 중에서도 이런 강박증을 일으키는 글이 많습니다. 평소에 팀장이나 사수가 우리 보고서를 빨간펜으로 난도질한다면, 보고서의 기본적인 규칙을 지키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바로 일관성입니다.
1. 규칙 일관성
개조식, 서술식의 차이 아시지요? 제가 지금까지 쓴 방식은 서술식의 방식입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소위 네모 □, 동그라미 ○ , 작대기 -, 별표 ※/* 등으로 표현하는 개조식이 흔합니다. 그런데 네모와 동그라미 등의 표식을 주는 이유는 그 표식끼리는 같은 레벨의 얘기를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런데 많은 실무자가 소위 ‘의식의 흐름’ 대로 이 부호를 사용합니다.
□ [문제점 1]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음
□ 그 이유는 세 가지로 볼 수 있음
이렇게 쓰는 사람이 많습니다. 잘못이죠. 부호를 칸 바꾸기 신호처럼 씁니다. 같은 부호 모양끼리는 레벨이 같아야 한다고 말씀드렸죠. 두 번째 네모는 첫 번째 네모의 부연 설명이기 때문에 똑같이 취급할 수 없습니다. 동그라미나 작대기로 서열을 내려줘야 합니다.
2. 표현/용어 일관성
□ 일시 : 2020년/8월. 3日 07:30~8:30
이걸 보시고 마음이 편안하시면 곤란합니다. 년, 월, 일을 표시하는데 빗금(/)으로 했다가 점으로 했다가 제멋대로입니다. 그리고 ‘07:30~8:30’을 보면 맨 처음 숫자에 영(0)을 넣었다가 빼었다가 뒤죽박죽입니다. 아, 들어가서 고쳐주고 싶습니다.
3. 영역 일관성
1번과 2번은 비교적 쉽게 고칠 수 있는 반면에, 영역 일관성은 좀 더 까다로운 문제입니다. 저명한 교수진에 의뢰한 몇억짜리 연구용역 보고서에도 종종 나오는 문제이니까요.
첫째는 그룹핑의 영역에 혼선이 있는 경우입니다. 현황, 문제점, 개선방안으로 썼다고 했는데, 객관적으로 보여야 할 현황 파트에서 문제점을 주로 얘기합니다. 개선방안을 얘기할 때는 다시 문제점의 내용을 반복합니다. 이렇게 각 파트가 혼선되면 곤란합니다.
둘째는 톤&매너(Ton & Manner)가 일관적이지 않은 경우입니다. 기껏 A 방향으로 가자고 얘기해놓고, 사실 B 방향도 있다는 식으로 슬그머니 글을 마무리하는 경우입니다. 이건 무책임한 보고서입니다.
이 세상에 딱 떨어지게 무조건 맞는 답이 어디 있겠어요. 우리는 완벽한 정답이 아니라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답을 고르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의심되는,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면 앞에 언급해야죠. 그럼에도 최선은 A라는 논리를 충실하게 보여줘야 합니다. 이런 때도 있고 저런 때도 있으니 판단은 독자가 하세요, 라는 식으로 보고서를 쓰면 곤란합니다.
이런 형식보다 콘텐츠가 중요한 것 아닌가요?
이렇게 따지시는 분이 있다면, 일단은 ‘맞다!’고 열렬히 호응하고 싶네요. 선물도 그렇잖아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니 정말 우리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할, 회사의 미래를 바꿀만한 멋진 콘텐츠가 있으신가 보군요. 영화에서나 보던 금괴 1kg짜리를 준다면 신문지에 싼들, 휴지에 싼들 무슨 상관이겠어요. 오늘 아침에 마신 아메리카노와 함께 받은 냅킨에 써주셔도 됩니다.
원문: 박소연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