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야근을 마치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퇴근하는 길, 지친 몸을 달래려 택시를 탔다. 내가 나온 회사 건물을 물끄러미 바라본 기사님은 목적지를 물었고, 짧게 대답한 나는 쉬고 싶어 눈을 감았다.
손님은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보이네요. 회사에서 경쟁상대가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기사님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어쩔 수 없이 눈을 떴다.
아……. 네, 이번에 입사한 동기가 30명이나 되는데요. 당장은 동기들이 제 경쟁상대가 아닐까요? 벌써부터 많이 갈리거든요. 누구는 저보다 더 멋진 부서에 들어갔고, 또 누구는 벌써부터 상사들에게 칭찬을 많이 받아요. 저는 뭐 하나 싶어 왠지 뒤처지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마치 그 질문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푸념을 늘어놨다. 피곤해서 그저 쉬고 싶었던 택시에서. 마음속 저 깊은 곳에 꾹 눌려왔던 고민과 설움을 마주하며 스스로 놀랐던 기억이 난다.
허허, 손님. 손님의 경쟁상대는 옆에 있는 동기들이 아니에요. 위를 보세요, 위를. 팀장을 보고, 상무를 보고, 사장을 보세요. 그래야 합니다. 그 사람들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겠어요? 얼마나 큰 노력을 해야겠어요?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했다. 그 택시 영수증은 오랜 기간 나의 지갑 속에 있었다. 그날의 가르침을 잊지 않기 위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사는 스프링복은 무리를 지어 힘차게 높이 뛰며 앞으로 나아 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약 35kg의 무게에 키가 1.5m인 이 영양은 놀라거나 흥분하면 다리를 뻣뻣이 세우고 연속하여 수직으로 3.5m까지 튀어 오르는데, 이것을 ‘프롱킹(Prongking)’이라 한다.
그런데 이 스프링복은 비극적인 최후를 맞곤 한다. 처음엔 발밑에 있는 풀을 뜯어먹으며 서서히 움직이지만, 수가 많아지면 점점 빠른 속도로 무리 지어 달린다. 문제는 이유도 모르고 달리기 시작한다는 것. 주위에 있는 스프링복들이 뛰기시작하니 서로가 흥분해서 ‘프롱킹’을 하게 되고 결국 낭떠러지가 나타나도 서지 못하고 그대로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시절의 난 스프링복과 비슷했다. 그저 놀라 아무것도 모르고 뛰는 스프링복처럼 몇 발자국 앞서나간 동기를 보고 흥분했다. 질투의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고,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저 옆을 바라보며 누군가 나보다 앞서면 불안하고 괴로웠다. 무엇이 중요한지, 왜 그래야 하는지 잊고는 여기저기 프롱킹을 해대는 어리석고 나약한 동물, 그게 나였다.
눈을 감은 나를 향해 말을 걸어준 그 택시 기사님에게 아직도 감사하다. 그날의 깨우침을 통해 시야가 좀 넓어졌고 생각의 틀도 바뀌었다. 동기들의 고만고만한 모습을 보며 일희일비하던 모습에서 벗어나 경쟁상대를 재설정하니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그 후 이길 수 없을 것만 같던 상대에게 작은 도전이라도 해보며 조금씩 성장하는 달콤함도 맛봤다. 지금껏 옆만 보며 감정에 휘둘리는 ‘나약한 월급쟁이’로 살아오진 않았나? 좀 더 넓은 시야를 갖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늠할 줄 아는, ‘나아지는 월급쟁이’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후배들에게 경쟁상대가 누구냐고 물어보곤 한다. 많은 후배가 “저 자신이요!”라고 대답하는 것을 보고 놀란다. 어떤 의미인지 알겠다. 나도 매 순간 내가 원하는 대로 영 움직여주지 않는 나와 씨름하니까.
그럼에도 ‘나 자신’은 경쟁상대에서 제외했으면 좋겠다. ‘나 자신’은 다른 경쟁상대를 맞이해 힘을 합쳐야 하는 대상이지 이겨 먹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남과 경쟁하기 전에, 이미 나와의 경쟁으로 지쳐 있을지도 모르는 자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