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정부, 늦어도 다음 정부 안에는 동성 커플이 부부에 준하는 법적 보호를 받게 될 겁니다.
요새 내가 주위에 자주 하고 다니는 말이다. 예언 같은 말은 아니다. 사회의 발전 속도가 빠르니까 그렇지 않겠냐는 추측도 아니다. 내가 요새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이 정부의 ‘일하는 방식’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제 만 2년을 채워가는 문재인 대통령이 초창기 냈던 잡음을 기억한다. 그는 사회 진보적 이슈에 말을 아꼈다. 중간자 흉내를 냈다. 위험을 각오하고 ‘맞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래. 그는 얄밉게도 ‘표가 되는 말’만 했다.
그리고 그가 당선됐다. 그 이후에도 그는 사회 진보적 이슈에 대해 일언반구 하지 않았다. 무탈하게 흘러갔다. 그동안 소득 주도 성장이란 이슈도 전국을 휩쓸고 지나갔고 비핵화이란 이슈도 휩쓸고 갔다. 지금도 여전히 경제가 가장 큰 이슈다. 그리고 이번 정부는 조용히 헌법재판관을 바꾸었다. 전횡한 것은 아니다. 임기가 다 되어 공석이 된 자리에 인사권을 행사했을 뿐이다.
헌법재판소에는 새 정부의 사람, 혹은 그와 관계된 사람이 차곡차곡 쌓였다. 작년에 헌법재판소는 대체복무를 입법하지 않은 현행 병역법이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고 판결했다. 지난 4월 11일에는 낙태죄가 그렇다고 했다. 헌법재판소는 구시대의 법률이 수명을 다했다고 선고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전향적 판결’에 반대하는 사람은 헌법재판소에 유감을 표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 게 없다. 그가 한 것이라곤 헌법재판관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했을 뿐이다. 그는 이 판결과 관계가 없다.
나는 이게 이번 정부의 ‘전략’이라고 확신했다. 정치적으로 해결하려면 요원한 일이었다. 각자의 찬성 이유와 반대 이유가 명확하게 갈리는 일이었다. 설득한다고 될 일도 아니었다. 옛 세대를 새로운 세대가 몇 번쯤 대체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 이슈로 에너지를 소모하다가는 다음에도 권력을 획득할 수 있을지 불투명해지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다만 헌법재판소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했을 뿐이다.
다른 결론과 마찬가지로 이번 결론에도 어떤 흠결이 있을 거다. 완벽하지는 않을 거다. 누군가는 날 선 말을 해야 한다. 그 한계를 다 알고도 비판해야 한다. 그의 속도가 충분치 않다며 재촉해야 한다. 그들의 건강한 비판을 동력 삼아 사회는 더 빨리 움직일 수 있다. 그래야 다음번에 해결해야 할 과제가 생긴다. 그렇게 또 다른 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그러나 한계가 있다고 무용한 것은 아니다. 제도정치가 타협안을 내놓거나 문재인 대통령이 ‘사이다’ 대신 인사권을 행사하는 것. 혹은 헌법재판소가 ‘불합치 의견’을 내며 정치권에 다시 공을 던지는 것 모두 의미 있는 전진이다. 상대가 옳은지 그른지는 어쩌면 두 번째 문제다.
나와 의견이 다른, 혹은 틀린 그 사람이 현존한다는 게 문제다. 사회라는 큰 덩어리 중 몇 개만 먼저 떼어서 갈 수는 없다. 그들의 보폭을 강제로 재촉하는 한이 있더라도 억지로 같이 걷게 만들 필요는 있다.
이 차이는 중요하다. 한계를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더 나은 방향을 위해 비판하는 것. 혹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고 좌절하는 것. 둘의 방향성은 다르다. 우리의 다음 과제, 더 나아가 우리가 다음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야 할 방법을 찾는 데에 있어서 그렇다. 우리는 계속 다음 과제를 찾아내고 해결해야 한다. 숙명 같은 거다.
원문: 백승호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