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에서 일어난 산불을 계기로 소방관의 국가직 전환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크다. 국민청원은 사흘 만에 20만 명을 돌파했고 여론조사에서는 국민 10명 중 8명 정도가 이를 찬성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국민들의 호소에 힘입어 대선 당시 소방관 국가직 전환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대통령도 국회에 처리를 요청했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자유한국당이 소방관 국가직 전환에 대해 반대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어서다. 자유한국당 정태옥 의원은 소방관 국가직 전환이 지방분권을 거스른다고 발언하는가 하면, 나경원 원대대표 역시 소방관 국가직 전환이 경찰의 지방자치화 흐름과 반대된다면서 반대의 입장을 거들고 있다. 심지어 같은 당 이진복 의원은 “국가직이 아니면 불을 못 끄느냐”는 말까지 했다. 청원은 국민들이 했는데 소방관들을 국가직 전환을 구걸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못된 발언이다.
자유한국당이 정부와 여당의 반대 입장에 서는 것은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 자신들의 사상적 신념을 빙자해서 정부·여당이 하는 일에 반대한 일도 많고, 무슨 일인지 몰라도 일단 반대부터 하고 보자는 태도를 보인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 소방관 국가직 전환에 반대하는 것은 좀 의아하다. 국민 80% 가까이가 찬성할 뿐 아니라 자유한국당의 지지층도 65%가 찬성 의견을 낸 사안에 대해 굳이 반대하는 것을 합리적 판단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손실 회피 편향?
이렇게 국민들이 압도적인 찬성을 보이는 사안은 찬성하는 편이 낫다. ‘정무적 감각’ 같은 거창한 말을 쓰지 않아도 된다. 얻는 것이 적을 지는 몰라도 잃은 것은 거의 없는 상황인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괜히 반대 했다가는 정부의 일을 방해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 국민들 대다수가 원하는 일에도 딴지를 거냐는 욕을 먹을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뻔한 상황인데도 반대의 길을 택한 것은 혹시 찬성했을 때 생길 손해에 대해 걱정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다시 말해 ‘손실 회피 편향’이 작동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손실 회피 편향을 쉽게 설명하면 같은 가치의 것이라도 얻을 때 보다는 잃을 때 더 커 보이는 경향이다.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오면 100만 원을 얻고 뒷면이 나오면 100만 원을 잃는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전을 던지지 않는다. 돈을 얻을 확률과 잃을 확률은 50:50이지만 얻을 수 있는 100만 원 보다 잃을 수 있는 100만 원의 가치가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행동경제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동전을 던졌을 때 잃을 수 있는 돈이 100만 원이라면 얻을 수 있는 돈은 최소한 150만 원은 되어야 사람들은 동전을 던진다고 한다.
이 손실 회피 편향을 자유한국당에 대입하려면 소방관 국가직 전환을 찬성했을 때 자유한국당이 잃는 것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봐도 잃을 것이 없어 보이는 상황이지만, 굳이 잃어버릴 만한 것을 찾는다면 현 정부와 여당을 싫어하고 그들이 하는 일을 무조건 반대하는 사람들의 자유한국당에 대한 지지 정도다. 현재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이 30% 정도 된다.
그 지지층의 모든 사람이 현 정부와 여당이 하는 일을 싫어한다고 가정했을 때, 정부와 여당이 하려는 소방관 국가직 전환에 대해 자유한국당이 찬성할 경우 지지율이 떨어질 수도 있다. 자유한국당의 입장에서는 겨우 올려놓은 지지율을 깎아 먹는 일은 뼈를 두들겨 맞는 아픔이다. 여기에 손실 회피 편향을 적용하면 약간의 지지율 하락도 자유한국당은 실제보다 더 크게 느낀다.
아쉽게도 이 분석에는 무리가 따른다. 자유한국당 지지층의 65%가 소방관 국가직 전환에 찬성하기 때문이다. 지지자 ⅔와 ⅓ 중에서 어느 쪽을 만족시킬까를 고민하는 건 고민 축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물론 ⅓의 지지 철회는 손실 회피 편향이 작동해서 60~70%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⅓ 지지자 전부가 소방관 국가직 전환에 반대한다고 가정해도, 그들이 단지 이 사안만을 이유로 자유한국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찬성을 했을 때 ⅓의 지지자들이 돌아설지 모른다는 걱정을 한다면, 반대했을 때 ⅔의 지지자가 돌아설 수도 있다는 걱정도 같이 해야 한다.
자유한국당은 국민 80%가 원하는 일에, 정확히 말하면 국민 80%가 시킨 일에 반대할 정도의 뱃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그들이 지지율 숫자에 치어 다녔으면 박근혜 탄핵 정국 때 이미 공중분해 되었어야 했다. 그런 사람들이 자기 지지자 ⅔가 찬성하는 일을 나머지 ⅓ 때문에 쫄아서 반대를 할 리는 만무하다. 결국 자유한국당이 소방관 국가직 전환에 반대하는 이유는 찬성했을 때 잃을 것이 있어서가 아님은 확실하다.
만약 소방관 국가직 전환에 반대했을 때 자유한국당이 얻는 것이 있다면 반대의 근거가 된다. 하지만 자당 지지층의 65%가 포함된 국민 80%가 찬성하는 사안에 반대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반대하는 15.6% 정도의 지지 밖에 없다. 물론 15.6%의 지지도 소중하겠지만 집권을 놓고 여당과 경쟁을 하고 있는 당이 겨우 15.6%를 위해 78.7%를 버리는 일은 표 계산에서 수지가 맞지 않는다. 국회의원을 100명 넘게 보유한 당에서 이런 산수 수준의 계산을 못할 리 없다.
자유한국당의 상황을 정리하면 이렇다. 소방관 국가직 전환에 찬성하면 얻는 것이 있을지 없을지는 몰라도 잃을 것은 거의 없다. 하지만 반대하면 얻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매우 적고 잃는 것은 그보다 훨씬 크다. 합리적 사고를 한다면 반대보다는 찬성을 선택하는 것이 무조건 나은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은 그다지 복잡하지도 않은 지금 상황에서 합리적 선택을 포기했다. 합리적 사고가 사라진 자리는 감정적 충동이 대신하기 마련이다.
최후 통첩 게임
자유한국당의 선택을 끌어낸 감정을 유추하는 건 어렵지 않다. “설마 제1야당이 국민이 바라고 국가가 하려는 일에 감정을 내세운 선택을 하겠어?”라는 상식적인 기대만 버리면 쉽다. 지금 자유한국당은 정부와 여당이 성과를 내는 꼴이 보기 싫은 것이다.
소방관 국가직 전환이 이루어지면 국민들은 정부와 국회에 좋은 평가를 내릴 것이다. 자유한국당 역시 국민의 의사를 적극 반영한 입법 활동에 참여했으니 호감도가 올라갈 수 있다. 따라서 자유한국당 입장에서는 찬성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은 자신들이 갖게 될 이익보다 정부와 여당이 갖게 될 이익이 더 크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의 비합리적인 선택은 ‘최후 통첩 게임’으로 설명할 수 있다. 최후 통첩 게임은 한쪽(A)이 자신이 가진 돈의 분배 비율을 다른 한쪽(B)에게 제안하여 B가 제안을 받아들였을 경우 A의 제안대로 돈을 나누어 갖는 조건을 건 실험이다. 이 실험의 포인트는 B가 A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A, B 모두 돈을 갖지 못하게 된다는 데 있다.
인간이 합리적 사고를 한다면 A가 제안한 분배 비율이 100:0이 아닌 다음에야 B는 A의 제안을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얻는 것이 이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실험에서 A가 제안한 B의 몫이 전체 금액의 20% 미만일 경우 B는 제안을 거절하는 결과가 나왔다. 이 결과는 인간이 단지 자신의 이익뿐 아니라 상대가 갖게 될 이익에도 민감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유한국당은 지금 자신들이 가질 수 있는 작은 이익보다 정부와 여당이 가지게 될 큰 이익에 민감한 상태다. 자신들은 별로 가질 것이 없고 경쟁 상대가 얻을 이익이 크다면 차라리 모두 갖지 말자는 속셈이 뻔히 보인다. 사촌이 땅을 사면 자기네 배가 아플까봐 땅을 사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어떻게 보면 자유한국당 입장에서는 이런 선택이 가장 합리적일 지도 모른다. 자신들이 10을 잃는 대신 상대가 100을 얻지 못하게 만드는 것도 성과라면 성과다.
하지만 이번 소방관 국가직 전환은 자유한국당이 그냥 뭉개고 갈만한 사안이 못 된다. 국민 대다수가 찬성하고 있다는 사실도 부담이거니와 특별히 반대할 만한 명분도 없다. 나경원 원내 대표는 경찰의 지방자치화가 진행 중인데 소방직을 국가직으로 하는 것은 그런 흐름에 어긋난다는 이유를 댔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은 자치경찰제에 대해서도 ‘무늬만 자치경찰’이라고 반대의 뜻을 표했다. 제대로 된 반대 명분이 없으니 자신들이 한 말도 먹어버리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정부와 여당을 미워하고 시샘하는 것은 자유다. 그런 감정에 기대어 정치적 행위를 하는 것도 막을 길은 없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감정은 적당히 숨기고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울 수 있어야 정치집단으로서 존재 가치가 있다. 지금처럼 감정에만 치우쳐서 “우리 당이 얻을 것이 적다면 차라리 국가에 이득이 되는 일은 모두 반대하겠다”라는 식의 의사결정을 반복하다가는 논리적 정합성을 잃어버린 대한애국당처럼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별로 넓지도 않은 이 나라에 대한애국당 하나도 벅차다. 명색이 정치집단이라면 책임도 아니고 신념도 아닌 감정에 치우쳐서 국민들 속 뒤집는 짓은 제발 그만두길 바란다.
원문: 마흔하나, 생각을 시작하다